[뉴스핌=김사헌 기자] 마크 카니 신임 영란은행(BOE) 총재 지명자가 그 동안 영국 중앙은행이 자부심을 가졌던 "물가안정목표제'를 폐기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신속한 논의를 제안했다.
앞서 캐나다중앙은행(BOC)을 이끌면서 심각한 금융위기의 피해를 억제하고 경기 회복을 잘 이끈 것으로 평가받았던 카니 총재는 7일(현지시각) 영국 의회 재무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이 같은 소신을 피력했다.
그 동안 카니 지명자는 영국이 물가 안정을 잘 달성해왔지만 미국처럼 경제성장에도 좀 더 무게를 두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언급해 오는 7월 총재직을 맡게 되면 BOE의 정책 운용방식을 전면 재검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일었다.
이날 카니 지명자는 자신도 유연한 물가안정 목표제(flexible inflation targeting)가 경제를 지원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 수단이라고 평가한다고 말한 뒤, 이 때문에 정책 운용방식 변경 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매우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최선의 정책 운용방안에 대한 빠른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2월 7일 영국 의회 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는 마크 카니 영란은행(BOE) 총재 지명자 화면 캡쳐 사진 [사진=AP/뉴시스] |
그는 통화정책의 운용체계는 주기적으로 재평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캐나다의 경우 매 5년마다 이러한 재평가를 실시한다고 소개했다.
앞서 명목 국내총생산(GDP) 목표제를 제시했던 카니 지명자는 이번 청문회에서는 이 같은 명목 GDP 목표제가 지니는 위험에 대해 시인하면서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명시적인 정책 가이던스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에 동조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실적으로 중앙은행이 명시적인 통화정책 가이던스를 제시하는 것이 부가적인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며, 특히 통화정책이 제로 부근의 명목 금리 유도 목표를 이용할 때는 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카니 지명자는 명목 GDP 목표제는 부정적인 '공급 충격'에 대응하는데 효과적이지만 단점들도 있다면서, 물가와 실질 경제활동이 서로 같은 양만큼 움직여야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가는 제약이 있고 또한, 사람들이 중앙은행의 정책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1992년에 머빈 킹 영란은행 당시 총재의 주도 하에 도입된 물가안정 목표제는 최근까지 전 세계 주요은행의 통화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제도로 여겨졌다. 한국은행 역시 BOE의 물가안정목표제를 도입해 한국 경제 현실에 맞게 운용하고 있다. 물가안정목표제의 가장 성공적이라고 평가되는 부분은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안정시킨 것이며, 이런 면에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문제는 2008년 금융 위기 발생을 사전에 막지 못한 데다, 위기 이후에도 강력한 경기 회복을 이끌어 내는데 무력한 모습을 보인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물가안정목표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물가안정목표제가 초저금리 여건 하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해 평가할 필요가 있으며, 이례적인 시기에 도입되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인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를 어떤 식으로 정책위원회에서 수용할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금리결정 방식의 투명화와 함께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도입한 실업률목표제 외에도 지표의 오도 가능성이 제기되는 소비자물가보다는 임금상승률을 물가압력 지표로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나아가 금융감독청을 떠나는 어데어 터너 청장과 같이 "중앙은행의 정부 재정적자의 화폐화 지원" 방식이 초저금리 여건에서는 효과적이라고 공개적으로 이전까지는 불가능했던 사고방식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이날 카니 지명자는 강력한 경기회복이 쉽지 않을 때는 물가안정 목표를 무시할 필요가 있다는 자신의 지난해 12월 발언에 대한 격렬한 반응을 감안한 듯, 당장은 현재 영국의 통화정책의 틀이 적절한지 여부에 대해 평가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만을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유연한 물가안정목표제가 좋기는 하지만 이전과는 차별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질 필요도 있다"면서, "어떤 정책적인 운용방식의 변경이 지니는 장점을 고려하면서, 그것이 가지는 위험 외에도 예외적인 상황에서 이례적인 통화정책 수단을 활용하는 것이 지니는 효과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