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NCR 규제로 자본 활용 제약"
[뉴스핌=홍승훈 기자] 증권사 NCR(영업용순자본비율)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업계 목소리가 높다. 주식 거래대금이 쪼그라들면서 위탁매매수입이 급감하자 자기자본을 활용해서라도 돈을 벌어보려 하지만 NCR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협회도 나섰다. 박종수 금융투자협회장은 올 하반기 NCR 규제 완화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날을 세웠다. 더욱이 최근 증권사 정책세미나 등에서 NCR 기준 완화 이슈가 부각되며 업계 기대감도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요지부동이다.
NCR이란 증권사의 유동성 자기자본(영업용 순자본)을 총위험액으로 나눠 얻어진 비율로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른바 '증권사 BIS비율'인데 쉽게 말하면 증권사가 부도를 내더라도 고객에게 줄 돈을 갖고 있느냐를 판단하는 잣대다.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는 지난 6일 기자와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NCR 기준이 불합리한 요소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지만 완화 등 방향이 정해진 것은 없다"며 "다만 지금 NCR 하한선이 150%인데 업계 평균은 500%로 지나치게 높은 것을 보면 규제의 문제라기 보단 증권사 자체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결국 금융당국의 기준 150%를 3배 이상 웃도는 업계 평균 NCR 수준을 감안할 때 증권사 스스로가 자본 활용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한 발 더 내딛는다. 그는 "증권사 건전성 지표의 하나로 자본적정성을 보는데 NCR은 주된 기준이다. 회사 입장에선 어떤지 몰라도 고객입장에선 (NCR 수준이 가장 높은) 유화증권이 가장 안전하고 건전한 회사가 맞다"고 방점을 찍었다.
과연 금융당국 시각대로 유화증권이 국내사 중 가장 안전하고 건전한 회사일까. 금융시장 불안감이 팽배해지는 요즘 여타 증권사들은 유화증권이라도 벤치마킹하라는 얘기인가.
현재 국내외 증권사들의 NCR 수준을 살펴보면 외국계가 압도적으로 높다. 메릴린치증권이 2110%로 독보적이다. UBS, SC, 크레딧스위스, SG, 비오에스,BNP파리바, 씨티, 모건스탠리, 도이치, JP모간증권 등 대부분 외국계증권사들이 NCR수준 1000%대로 뒤를 잇는다.
상위 15개사 중 외국계가 무려 13개사다. 법인영업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하고 본사 상품만을 팔다보니 높을 수 밖에 없다.
국내사도 없진 않다. 유화증권이 NCR 1250%로 당당히 8위에 올라있다. 국내사 NCR 평균이 500% 남짓인 것을 감안하면 유화증권의 자본건전성이 두드러진다.
대형사 중에선 삼성이 700%대로 높은 편이고 신한, 현대, 우리, 대우증권이 500%대다. 리딩투자증권 등 중소형사들은 200%~300%대를 겨우 맞추고 있다.
감독당국은 증권사에 대해선 NCR로, 은행은 BIS비율로, 카드사는 레버리지비율로 자본 적정성을 평가한다. 다만 업권간 갭이 발생한다. 흔히 은행의 적정 BIS비율 한도인 8% 수준을 증권사 NCR로 환산하면 100% 수준이란 게 전문가들의 계산이다. 현재 금융당국의 증권사 NCR 규제 기준이 150%선이니 50%정도 높은 셈이다.
하지만 증권사들이 ELW(주식워런트증권) 상장이나 유동성공급, 국고채 전문딜러, 국민연금 거래증권사 선정 조건을 갖추려면 NCR 250~400%를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150%가 규제 기준이지만 증권사들이 500% 안팎의 NCR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증자를 해 자본을 늘리거나 만기 5년 이상 고금리 후순위채를 찍는 방법 등으로 당국 등의 NCR 수준을 충족시키고 있다. 쓸데 없이 드는 비용인 셈이다.
증권사 한 CEO는 "현행 150% NCR 기준만을 보면 견딜 만하다. 150%를 100%로 낮춘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문제는 국민연금 거래증권사 등 부문별한 NCR 요구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국민연금 등 공공기관들로 하여금 특정업무 평가시 NCR 기준을 턱없이 높이는 것을 금융당국이 완화하게끔 유도해달라는 것이 업계의 NCR 규제 완화 요구의 핵심이다.
또 다른 CEO는 이렇게 말한다.
"증권과 보험, 은행 중 도산 위험이 큰 곳이 어느 곳일까. 외환위기때도 동서증권과 고려증권 등이 망했지만 지급불능 등 고객 피해는 없었다. 카드사는 자기자본의 10배씩 회사채를 찍어도 잘 팔리는데 증권사는 근처에도 못간다. 결국 증권사는 위험하다는 당국의 잘못된 인식이 바뀌지 않고는 해결이 안되는 문제다"
예컨대 A고객이 B증권사를 통해 1억원 어치의 주식을 샀을 때 B증권사가 부도가 나면 어떻게 될까. 주식 자체는 증권사를 통해 거래를 하지만 실제 유가증권은 예탁결제원에 보관된다. 결국 증권사가 망해도 주식은 보호받는다. 거래 증권사만 옮기면 된다. 증권사는 고객예탁금은 증권금융에, 유가증권은 예탁결제원에 예치하고 있어 실제 증권사의 부도 리스크가 투자자들에게 전이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금투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의 본질은 리스크를 테이킹하는 것"이라며 "자본을 적절히 활용해서 수익을 내야하는 증권사의 본질이 현행 NCR 규제, 특히 공공기관 등의 과도한 NCR 수준으로 발목이 잡힌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잣대를 들이대 수년째 같은 말만 반복한다. 편이성만 생각한 감독관행의 대표적 사례다.
결국 외국계처럼 법인영업 중심으로 하든가, 아니면 유화증권 등 일부 소형사처럼 리스크 자체를 배제한 채 먹고 살라는 얘기다. 이는 '한국판 골드만삭스 탄생'을 부르짖던 금융당국의 기존 정책방향과도 표리부동한 태도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