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잠식률 20%이상, M&A 입질도 주춤
[뉴스핌=홍승훈 기자] 적자가 누적돼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상당수 중소형 증권사들이 잇따라 소액 증자를 하고 있다. 영업으로 돈을 벌지 못하자 주주들에게 손을 벌려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모양새다.
증권업 라이선스(면허) 유지와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일년에 2~3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버티고 있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업황 호전이 불투명한데다 증권업의 수익성이 구조적인 한계에 봉착해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위기에 내몰린 증권사들은 M&A(인수 합병)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거나 잠재매물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증권사를 사겠다는 수요는 자취를 감춰, 매각 기대감도 위축되는 분위기다.
6일 금융감독원과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현재 자본잠식 상태에 놓인 증권사는 코리아RB증권 등 총 9개사에 달한다.
<자료 : 금융투자협회, 금융감독원> |
코리아RB증권과 비오에스증권이 자본잠식률 50%를 넘어섰고 알비에스아시아증권, 애플투자증권, 바클레이즈캐피탈증권, 한맥투자증권은 20%대 자본잠식률을 기록중이다.<표참조>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과 토러스투자증권, IBK투자증권도 소폭이긴 하지만 자본잠식 상태에 진입했다.
아직 자본금을 까먹을 정도는 아니지만 자본잠식을 목전에 둔 증권사들도 여럿. BS투자증권과 LIG투자증권, 바로투자증권, 비엔피파리바증권들의 경우 자본금을 살짝 넘어서는 수준의 재무 상태로 언제든 자본잠식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이같은 상황에 처한 곳들이 주로 활용하는 방법은 유상증자다.
중소형사 중 지난해 유상증자를 단행한 곳으로는 바클레이즈캐피탈증권, 비오에스증권, 애플투자증권, 코리아RB증권, 한맥투자증권 등 5곳. 이 가운데 바클레이즈는 지난해 6월과 12월 두 차례 각각 108억원, 121억원을 단행하며 총 230여억원을 증자했다. 주식위탁영업 영위를 위한 시스템 구축 등 제반비용 충당을 위해서다.
바클레이즈 관계자는 "이 외에 지난해 말 사무실 이전에도 상당부분 비용이 들어갔다"고 덧붙였다.
애플투자증권은 지난해 3월, 7월, 12월 총 세 차례에 걸쳐 총 37억원 유상증자를 결행했다. 애플의 경우 2월 300억원 주주배정 증자를 계획했다 주주들이 자진 철회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 외에 코리아RB증권이 지난해 3월 10억원 규모의 증자를 단행했고, 비오에스증권이 2월과 6월 각각 40억원, 45억원씩 증자를 단행했다.
한맥투자증권의 경우 우선주 증자를 통해 자본을 늘린 케이스. 지난해 9월과 10월 세 차례 30억원을 3자배정 방식으로 증자에 나섰다.
이같은 소액 증자 추세는 올해 역시 증권업 불황이 이어지며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자본잠식에 들어간 증권사 한 자금당당 임원은 "아직까지 증자 규모나 시기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올해 역시 시장이 안좋아 증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상황은 이처럼 악화되자 중소형사 오너들도 고민이 많아졌다. 계속 증자를 하자니 주주들 원성이 높아지고 매수자를 찾아 회사를 팔자니 가격이 맞지 않는다.
중소형사 한 CEO는 "요즘은 뜸한데 작년 말까지 회사를 팔라는 오퍼가 상당히 많이 들어오면서 갈등을 많이 했다"며 "지금이야 유지하기로 결정했지만 증자도 쉽지않고 업황도 여의치 않아 힘든게 사실"이라고 전해왔다.
지난해 하반기까지 들썩이던 M&A 기대감도 최근 위축되고 있다. M&A 시장 매물로 나와 있는 이트레이드, 아이엠, 리딩투자증권 등도 매수 매도자간 입질만 있을 뿐 가시적인 결과물은 나오지 않는 상황.
국내 증권업 진출을 위해 중소형사들을 상대로 접촉중인 한 외국계IB 관계자는 "매물로 나온 증권사들과 계속 접촉중이긴 하다"면서 "다만 대부분 회사 인력을 그대로 승계해야 하는 것 등 부담요인이 많다"고 전해왔다.
한편 증권가에선 이트레이드, 아이엠, 리딩 등 기존 매물 외에도 중소형급으로 애플투자증권, 토러스투자증권, 골든브릿지투자증권, 한맥투자증권, 동양증권, 코리아RB증권 등을 잠재 매물로 꼽는다. 이트레이드와 리딩, 아이엠투자증권은 PEF가 대주주라는 지배구조 리스크, 코리아RB, 애플, 한맥, 골든브릿지증권 등은 적자 지속에 따른 실적부진이 이유다.
증권업계 한 임원은 "자본잠식 상태가 되면 활용할 수 있는 자본여력이 줄어들지만 자본잠식 자체가 퇴출 등의 기준은 아니기 때문에 당장 문제는 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국내 증권사들의 ROE 평균이 3%에 불과하고, 규제로 발목 잡힌 국내 자본시장 여건 속에서 어느 누가 제값을 주고 사갈 지 걱정스럽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홍승훈 기자 (deerbear@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