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 변화로 시장조성자 줄어 유동성 '위축'
[뉴스핌=김사헌 기자] 최근 전 세계 회사채 시장은 수익률을 찾아 몰려든 투자자들로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규제 변화에 따라 은행들이 점차 시장조성자 역할에서 발을 빼고 있어 유통이나 매물 수용에 한계가 발생하고 있어 주의가 요망된다.
앞서 신나게 달리는 상승 대열에 올라타기는 쉬웠을지 몰라도, 분위기가 변해서 가격이 급락할 때 빠져나오기는 간단치 않은 일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21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5월 미국 다수 자산운용사들이 9개 상위 은행 관계자들과 긴급 회동해 회사채시장의 유동성 고갈 문제를 논의했으며, 이 자리에서 회사채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질 경우 채권 가격이 급락하고 기업 채권발행이 어려워지는 등 실물 경제에 미칠 충격이 클 것이란 경고를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금융 위기 발전 전까지만 해도 유럽과 미국의 프라이머리딜러(PD) 기관들은 대규모 회사채 물량을 안고서 시장조성자 역할을 충실하게 했으며, 이들 때문에 채권 유통시장의 유동성이 담보됐다.
하지만 위기 이후 '바젤III' 하의 강한 자본건전성 기준이 도입되면서 금융회사들이 더이상 회사채를 많이 보유하기 힘들게 됐다. 미국의 금융시스템 안정화 및 개혁을 위한 '볼커룰'은 아예 미국 은행들이 자기계정 매매를 하지 못하게 금지하고 있어 관련 기능이 급격히 축소되는 양상이다.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의 통계로 보면 미국시장에서 프라이머리딜러가 보유한 만기 1년 이상의 회사채 규모는 지난해 초 950억 달러에서 올해 370억 달러 수준까지 급감, 10년 만에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 금융 위기 전 PD의 회사채 보유잔고는 최고 2300억 달러에 달했다.
또 딜로직(DeaLogic) 자료에 따르면 미국 회사채 시장 규모가 2조 5000억 달러에서 3조 7000억 달러로 성장했지만, PD의 평균 주간 매매 규모는 2007년에 2660억 달러로 고점을 지난 뒤 올해는 평균 900억 달러까지 줄어들었다. 참고로 전 세계 회사채시장 규모는 2008년에 5조 달러 수준에서 9조 2000억 달러까지 늘어났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회사채 분석 담당 폴 워터는 최근 변화에 대해 "시장조성 체체의 자본이 줄어들면 전반적인 시장의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유럽 고수익 회사채와 같은 취약한 채권시장의 경우 주기적으로 작동을 멈추게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채권운용업체 GLG파트너스의 크리스 허긴스 운용역은 "최근 회사채펀드로 유입된 정도의 자금이 빠져나갈 경우 시장은 이를 제대로 흡수할 수 없게 된 상태"라고 인정했다.
채권시장이 왕성할 때는 거래량이 줄어드는 것이 매매비용이 높아지게 하는 요인 정도지만, 금융시장 스트레스 상황이 발생한 경우 물량을 처분해도 받아줄 딜러가 없으면 투자자들이 '떨어지는 칼'을 안고서 큰 손해를 입을 수 있다. 채권 스프레드가 확대되고 시장에 매물이 쏟아질 때 일종의 '유동성 위기'가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된 셈이다.
한편, 투자자들의 열광 속에 최근 회사채시장의 투자수익률은 3년래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시장의 분위기가 전환되면 '아비규환' 속에 가격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유동성 위험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지난주 미국 대형 펀드운용사인 블랙록의 회사채 상장지수펀드(ETF)에서는 일일 최대 환매사태가 발생하고 최고치를 경신하던 가격이 추락해 주목 받았다고 FT는 전했다..
바클레이즈의 글로벌 회사채지수에 따르면, 최근 2주 동안 투기등급 회사채 중에서는 그나마 등급이 가장 좋은 고수익 회사채 수익률이 5.4%로 17bp 상승했다. 앞서 한 달 동안 25bp 하락한 뒤 반등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럽과 미국에서 채무자에게 유리한 약식 대출 채권(covenant-lite) 발행이나 이자현물지급(PIK) 채권발행이 잘 되던 때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채권시장은 최근 석 달 동안 유럽과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해 회사채 평균 수익률이 3.3%까지 하락하는 활황 장세를 거쳤다는 점에서 앞으로 가격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뉴스핌 Newspim] 김사헌 기자 (herra7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