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연한 비밀…발각된 것은 '빙산의 일각'
[뉴스핌=노종빈 기자] 내가 가입한 잘 나가던 펀드가 갑자기 수익률이 고꾸라진다면 어떨까? 대부분 "한번 쯤 그럴 수도 있지"하고 무심코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수익률 조작을 통해 잘 나가는 펀드가 같은 회사의 다른 못난이 펀드를 지원하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 펀드 수익률 조작 "공공연한 비밀"
18일 여의도 금융가에 따르면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 펀드의 수익률 조작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돼 있다.
이들이 수익률을 조작하는 이유는 보통 두세 가지 정도로 요약되지만, 그 공통점은 결국 눈 앞의 이익을 챙기거나 스스로 불이익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다.
하지만 적발되는 경우는 빙산의 일각일 정도로 거의 드문 상황이다.
주된 거래 수법은 예컨대 A펀드가 손실을 보고 있는 주식이나 채권을 B펀드가 떠안거나 비싸게 사주는 방식이다.
이를 전문용어로 '자전을 돌린다'라고 한다. '자전을 돌린다'는 말의 원래 의미는 공정시장 가격으로 계좌를 옮기는 것을 뜻하고, 이같은 자전거래로 인한 차익은 발생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전을 돌리는 경우에 차익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 차익을 누군가가 챙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거래는 주식이나 채권, ELS 등 거의 모든 금융상품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매도와 매수 간 호가차이가 크게 벌어진 경우에 더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 경우 A펀드의 수익률은 높아지는 만큼 B펀드의 손실 폭은 늘어나지만 이를 막을 제도적 근거나 장치는 미약하거나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 싸게 팔고 비싸게 사줘…평가차익 '30억'
이같은 불공정 거래가 많이 드러나는 경우는 국민연금 등 큰 손들의 운용수익률 평가에서 뒤떨어져 자산운용액을 회수당하지 않기 위해서 자전을 돌린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모 투신운용사의 경우 국민연금으로부터 받는 수백억원 대의 위탁자금을 보존하기 위해 이같은 거래를 했다 적발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10월 국민연금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당시 한나라당 유재중 의원은 "국민연금 위탁운용사의 실적저조에 따른 펀드회수 조치를 모면하기 위해 펀드 간 자전 거래행위를 통해 수익률을 조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거래로 국민연금은 30억원의 평가차익을 거뒀다. 하지만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펀드가입자들에게 전가됐다.
당시 투신운용사는 정기등급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인 C등급을 받아, 국민연금 위탁금액 1037억원 중 259억원을 이미 회수당한 상태였다. 이 때문에 추가로 C등급을 받게 된다면 전액을 회수당할 위기에 놓이게 됐다.
이에 따라 이 운용사는 약 6개월 여간 562억원대 자전거래를 통해 30억여원의 평가차익을 인위적으로 발생시켰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회사가 기존 운용중인 펀드를 국민연금 운용 펀드로 직전체결가보다 3.0%에서 12.2%포인트 낮은 가격에 대량매도했다. 또한 반대로 3.9%포인트에서 9.5%포인트 까지 높은 가격에 장중 대량으로 사들이는 수법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 '팀워크' 강조…같은 종목 공동운용
이처럼 원리 자체는 싸게 팔고 비싸게 사줘서 그 차액을 먹는 방식으로 대동소이하다.
특히 최근에는 펀드들이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전체 회사 내부의 팀워크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애널리스트들이나 펀드매니저들이 종목을 공동으로 선정하고 공동으로 투자, 관리하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A 자산운용사의 경우 애널리스트들이 선정한 주식들을 나눠서 관리하고 있다. 이 회사 펀드매니저의 경우 개인의 능력은 30%이고 공동의 전략이 70%를 차지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 경우 매니저는 단순히 매도매수 주문을 내고 주식을 사고 파는 매니저에 불과할 뿐이고, 예전처럼 커다란 스타도 없지만 크게 욕먹는 사람도 없다.
최근 스타 펀드매니저가 많지 않은 것도 이같은 공동관리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즉 주된 원인은 계열사별로 거의 같은 전략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럴 경우 같은 종목을 중복해서 사고 팔게 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또한 어느 한 쪽에서 수익률에 따른 보너스 등을 독점하지 않으므로, 적더라도 똑같이 나눠가지게 돼 큰 불만은 없다. 이는 시장 침체시 살아남기 위한 펀드매니저들 간의 일종의 진화된 생존방식인 셈이다.
◆ 당국 "적발 쉽지않아…명백한 증거없다면"
마지막으로는 자산운용사(또는 증권사)가 고객들에게 돌아갈 이익을 개인적으로 빼돌리는 경우로, 이는 거의 범죄 수준이다. 이 경우 펀드의 대량매매 정보나 내부정보를 활용하기도 한다.
이 같은 거래시 대부분의 금융회사들은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 규정을 통해 도덕적 해이나 부당 거래의 발생을 방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거래하는 계좌만 본인 또는 특수관계인 명의가 아니면 실질적으로 노출될 위험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융당국에서는 이 같은 거래에 대해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사실상 적발하기 쉽지 않다"고 말하지만 특별히 조사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까지 수익률 조작을 통한 실적 부풀리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한 사람의 스타보다는 모두가 안정적으로 수익을 올리는 시스템에 대해 큰 불만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수익률 조작은)업계 전체에 민감한 사안"이라며 "건전한 시장 참여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시장 전체를 해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투자시대의 프리미엄 마켓정보 “뉴스핌 골드 클럽”
[뉴스핌] 노종빈 기자 (unti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