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사모펀드를 더 이상 투자회사로 보지 말라.’
사모펀드가 기업 인수합병(M&A)을 중심으로 한 투자회사라는 것은 옛말이다. 과거와 같이 금융업체 본연의 비즈니스 구조와 특성을 유지한 동시에 제조업과 헬스케어, 필수 소비재, 건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업종에서 강력한 경영 실체이자 소비 주체로 급부상해 주목된다.
12일(현지시각) 주요 외신에 따르면, 리서치 업체 스펜드 매터스의 제이슨 부쉬 매니징 디렉터는 “역사적으로 사모펀드의 역할과 영향력은 금융 측면에 국한됐지만 최근 들어 지분을 인수한 기업 포트폴리오를 앞세워 다양한 산업에서 제품 가격 결정력과 구매력을 과시하는 등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현상은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변화로 풀이된다. 과거 사모펀드는 인수한 기업에 대해 인력 감축 등 재무적인 부문에 한해서만 관여했지만 금융위기 이후 실질적인 경영 전반에 뛰어들었다.
이 때문에 이들 대형 사모펀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게 부각되는 모습이다. 막강한 자금력을 앞세워 인수한 기업이 주요 업종에 걸쳐 수십개에 이르고, 전체 인수 기업 포트폴리오의 매출액과 이익 규모를 기준으로 볼 때 글로벌 다국적 기업과 맞먹기 때문이다.
블랙스톤은 지분 전체 또는 일부분을 인수한 기업이 74개 업체에 이르고, 이들 기업의 고용 규모는 70만에 달한다. 연간 매출액은 1170억달러.
매출액을 기준으로 볼 때 블랙스톤은 미국 13위 기업에 해당하며, 월가 공룡 은행인 JP모건과 IBM, P&G를 앞지른다는 분석이다.
콜버그 크래비스 로버츠(KKR)도 마찬가지다. KKR이 보유한 74개 기업은 연간 총 210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집계됐다.
칼라일 그룹은 던킨 브랜즈를 포함한 200개 기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으며, 이들 인수 기업의 고용 규모는 67만5000명에 달한다. 이는 제너럴 모터스(GM)이나 제너럴 일렉트릭(GE)을 앞지르는 수치다.
이들 사모펀드의 영향력이 두드러지는 곳은 다름 아닌 가격 결정력과 구매력이다. 대량 구매와 인터넷 역경매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경영 비용을 대폭 떨어뜨리는 한편 매출을 늘리는 형태다.
이들의 대량 구매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례로 지난해 블랙스톤은 다른 사모펀드 및 기업과 그룹을 이루고 페덱스 택배 3500만건과 에이비스 자동차 렌트 90만일 등을 구매했다.
블랙스톤은 2006년 이후 이른바 코어트러스트로 불리는 대량 구매를 통해 6억달러의 비용을 감축했고 KKR 역시 8억달러에 가까운 비용 절감 효과를 봤다.
BB&T 캐피탈 마켓의 앤서니 척쿰바 애널리스트는 “사모펀드의 구매력이 일정 부분 기업의 매출 증가에 일조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의 가격 결정력은 이익률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