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반도체 철강등 경쟁분야 예의주시
[뉴스핌=이강혁 기자] "엔저(円低)현상은 우리 산업계에게 호재와 악재가 모두가 상존하는 문제입니다. 발빠른 대응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죠. 최근 몇년 간 엔화 강세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세계시장의 경쟁력을 높였던 만큼 약세에 따른 여파는 분명히 있을 겁니다."
4대 그룹의 한 임원은 "아직 수출전선에 엔화 약세 현상이 크게 데미지(피해)를 주지는 않고 있다"면서도 "하지만 약세가 생각보다 빠르고, 그러면서 장기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이 같이 말했다.
일본의 엔화 가치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달러당 80엔대가 현실화됐고, 연내 달러당 100엔대 전망도 나오는 상황이다. 이미 일본 내부에서는 본격적인 '엔저(円低) 시대'를 맞이했다는 분석이 잇따라고 있다.
우리 산업계는 이런 엔저현상에 대한 대비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일각에서는 엔화 약세가 그다지 빠르게 않게 진행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기도 하지만 산업계가 체감하는 흐름은 점점 빨라지는 분위기다. 원화는 강세 혹은 현상유지 수준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은 엔저현상으로 수출 경쟁력 약화를 가장 크게 우려하는 상황이다. 일본 기업들이 수출 가격을 떨어뜨리면 그만큼 우리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을 약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산업 포트폴리오가 자동차,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 우리 기업들의 포트폴리오와 비슷해 여러 분야의 경쟁은 불가피한 대목이다.
대표적인 것이 자동차 업종의 우려다. 미국, 유럽 등에서 일본의 토요타자동차, 혼다자동차 등과 치열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현대·기아차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이미 토요타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엔저현상을 반영해 판매가격 내리기를 본격화하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한 관계자는 "엔저현상에 따라 일본차 업체의 공세가 예상된다"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가지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관계자도 "국내 경제 및 자동차산업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큰 만큼 이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 강화와 대외 충격 발생 시, 즉각적으로 대응 가능한 시나리오별 경영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기계 업종처럼 일본으로부터 부품을 수입하는 기업들은 엔저현상이 싫지 않다. 특히 일본산 부품 비중이 높은 하이닉스나 LG디스플레이 등 전자업계는 이번 기회가 실적 향상에 크게 도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대일무역에서 엔저현상은 호재"라면서 "부품소재 등에서는 상당한 실적개선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자업계 전반적으로 본다면 엔저현상의 장기화는 세계시장 경쟁력에 좋지 않은 신호다. 단적으로 가전의 경우 현재까지 소니, 파나소닉 등 일본업체들은 자국 제품 점유율이 높기는 하지만 가격 경쟁력에 따라 세계시장 공세는 필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적정한 수준의 계획환율 이상으로만 하락세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크게 데미지를 입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다만 해외시장에서 일본업체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한다는 차원에서는 일정부분 여파는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국내 가전업체들의 경우 B2B는 아예 시장이 형성되지 않아 엔화에 비교적 덜 민감하다"면서도 "엔화 영향을 미미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일본업체들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건 장기적으로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이 같은 맥락의 대비책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현재의 엔저 흐름은 물론 급격한 엔고로의 전환에도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엔저의 진행이 한정되고 있지만 앞으로의 상황 변화도 고려하면서 경쟁력 유지가 필요하다"면서 "삼성, LG 등은 해외시장의 선점에 주력하고, 일본산 부품업체는 엔저를 고려한 가격 인하 교섭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저금리 엔화 차입 움직임이 확대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한일간의 물가상승률 격차를 반영해 원화에 대한 엔화 강세 추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엔화 금융상품이나 부채를 보유한 우리 기업들은 단기적인 재무전략으로 이번 현상을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윤식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위원도 "엔화 약세 추세와 유가 급등으로 인한 불가 불안 등 원화 강세 요인도 있다"면서 "자동차산업의 경우 자동차 수출 및 가격을 결정하는데 불확실성을 확대시키고 중장기적으로 수익성을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일본 경제계는 이미 엔화 약세를 발판으로 글로벌 무대의 경쟁력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유력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엔저 현상으로 자동차나 반도체 등에서 일본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엔고시대를 마감하고 엔저시대를 맞이하는 것 아니냐"며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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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이강혁 기자 (i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