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늑장공시 & 대기업엔 유리하게 적용
[뉴스핌=문형민 기자] 한화가 지난 3일 저녁 김승연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됐다고 공시하면서 상장폐지 논란은 시작됐다. 검찰이 김 회장에게 징역 9년, 벌금 1500억원을 구형한 다음날에야 공시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검찰의 기소는 약 1년 전인 지난해 1월29일이었고, 한화가 공소장을 통해 확인한 것은 2월10일이었다. 이 사건의 첫 공판도 지난해 9월1일 시작됐다.
한국거래소가 경영진의 배임 또는 횡령 금액이 자기자본 대비 5% 이상, 대기업은 2.5% 이상인 경우에 상장폐지 실질심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을 고친 것은 지난해 4월.
지난해 4월부터 8개월 동안 거래소와 한화는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시장에 떠도는 풍문에도 조회공시를 요구하면서 경영진의 배임과 같은 중대한 사실을 거래소는 지켜보고만 있었느냐는 지적이다.
◆ 한화 늑장공시, 거래소는 뭐하고 있었나
실제 거래소는 지난해 태광산업과 아인스 등 기업에 대한 배임·횡령 보도가 나오자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특히 태광산업은 거래소 규정 변경이 있기 전인 1월에 조회공시를 요구받았다.
거래소 관계자는 "작년에 한화그룹의 배임 횡령 사실이 보도됐지만 어느 회사에 어느 정도 규모로 발생했는지 확정되지 않았다"며 "모든 계열사에 이에 대해 조회공시를 요구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해명했다.
거래소의 이같은 설명은 소극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김 회장이 등기 임원으로 올라있거나 핵심 계열사에 대해서는 충분히 조회공시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영진들의 책임경영을 강조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을 확대한 취지에 비춰보아도 거래소의 대응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한편, 한화측은 "뒤늦게 바뀐 규정을 확인하지 못했다"며 "담당자의 업무 착오"라고 발뺌했다. 이어 공시업무 조직 확대 및 업무역량 강화, 내부거래위원회 운영 강화, 준법지원인제도 도입 및 실질적 운영 등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전형적인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행태다.
◆ 대기업에 유리하게 적용되는 잣대
한화의 늑장 공시와 거래소 안이함 외에 또다른 지적은 실질심사에서 너무 쉽게 판단했다는 것.
지난해 보해양조와 마니커는 횡령 및 배임으로 인해 상장폐지 직전까지 갔다 실질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결정을 받았다. 이 결정까지 보해양조는 두 달여 동안, 마니커는 2주간 각각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반면 한화에 대해서는 주말을 포함해 채 이틀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 1년간 유가증권시장에서 상장폐지 심사 대상까지 올랐다가 거래정지 없이 심사 대상에서 제외된 사례는 한화가 처음이다.
조재두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보(상무)는 전날 브리핑을 통해 "투자자 보호와 시장충격 최소화를 위해 신속하게 진행했다"며 "한화 측 자료에 개선 의지가 담겼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른 거래소 관계자는 "실질심사는 일종의 건강검진"이라며 "법원이 최종적으로 (배임 횡령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린다 할지라도 해당 기업의 영속성, 안정성이 있느냐를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거래소의 실질심사는 해당 기업의 재무조건, 영업상황, 영업투명성 등을 감안해 항구적으로 지속할 수 있느냐를 보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곧 대기업에게 유리하게 적용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셈이다.
한 증권사 IB부서 관계자는 "중소 상장사 및 코스닥기업에 적용하는 기준과 대기업에 적용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게 드러났다"며 "형평성을 스스로 훼손한 거래소는 앞으로 투자자들의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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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 문형민 기자 (hyung1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