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현실모르는 무리수 평가속에 내심 긴장
[뉴스핌=노종빈 기자]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의 주유소 휘발유 판매가격 상위 500개 업체에 대한 회계장부 조사 의향 발언에 대해 주유소 업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불똥이 튀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500개 업체 리스트에 선정되는 것을 꺼리고 있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최 장관의 발언이 시장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무리수에 불과하다고 일축한다.
실제로 이들 500개사의 휘발유 판매가격을 살펴본다면 불과 10원 이내의 차이로 매우 촘촘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주유소 업계 입장에서는 불과 판매가 1원 차이로 500개의 블랙리스트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라며 장관의 발언이 과도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 전문가들, 최장관 발언은 "구두개입 불과" 일축
여의도 증권가의 애널리스트는 최장관의 발언을 "구두개입적 발언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하며 "주유소 입장에서 시장에서 경쟁을 이익을 내는 것으로 유통마진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규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상황은 일부 과도한 부분은 있지만 폭리를 취하는 수준은 아닌 것 같다"며 "다만 휘발유 가격은 서민들에게 민감한 부분이어서 물가를 잡겠다는 정책적 관점에서 주유소들이 조심하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의 한 전문가는 "국제석유시장이 타이트하기 때문에 원유 도입가격과 국내 휘발유가격은 타이트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휘발유 공급을 하고 있는 국내 정유업계에서는 아시아의 시장가격을 준용하고 있다"며 "수출을 통해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가격도 고려해서 국내 공급가격을 매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정유사들이 4개 있고 조금이라도 가격이 비쌀 경우 수입업자들이 들어올 여지는 있다"며 "따라서 국내 휘발유 공급시장은 완전경쟁은 아니지만 그런대로 안정된 시장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 휘발유가는 세금이 절반. 주유소 "남는 거 없다"
20일 현재 한국석유공사 석유정보센터의 국내 휘발유 가격 동향에 따르면 제품별 가격 구성 비율은 휘발유 1리터당 정유사 공급가 45%, 세금 48%, 유통비용 및 마진이 7%인 수준이다.
따라서 이를 대략 1리터당 판매가격인 2000원으로 환산할 경우 정유사 공급가는 900원, 세금은 960원이며 주유소 유통비용 및 마진 140원인 상황이다.
주유소가 가져가는 140원 가운데서 판촉비, 결제수수료, 전기료, 인건비, 경비 등을 제외하면 순 마진은 불과 몇십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10원의 가격차를 놓고도 수많은 주유소들이 경쟁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다.
주유소 업계 종사자도 휘발유 리터당 판매가격 2000원을 전후해 불과 10원 차이로 수백개의 업체가 난립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결국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과도한 지역적 담합이 문제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일부 지역의 과도한 가격 담합을 주유소 업계 전체에 대한 불신과 무질서로 몰아가는 최 장관의 발언 자체에는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이번 조치에 대해 한국 주유소 협회 관계자는 이렇다할 협회 차원의 공식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 주유소 업계 "정부는 업계 현실 직시해야"
강남의 한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역설적으로 "이번 조사를 계기로 주유소가 어떤 상황이라는 것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겠느냐"며 "정부는 업계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강남지역도 1900원대에 판매하는 주유소가 얼마든지 있다"며 "일부 지역에서는 출혈경쟁을 해서 월별로 마이너스를 보면서 판촉비를 지급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한 주유소 관계자는 현재 카드수수료율 1.5% 가운데 소비자가 내는 유류세 부분에 대해서도 카드수수료를 부담하고 있어 결국 판매비용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판매비용의 증가는 결국 휘발유 가격의 상승을 불러올 수 있고 고스란히 소비자의 부담으로 직결될 수 있다.
따라서 최 장관이 휘발유 소매가격을 낮추고 싶다면 세금을 소비자에게 직접과세하도록 해서 카드수수료 비용을 절반 수준으로 낮춰줬으면 한다고 건의했다.
또다른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회계 장부 공개 자체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발상일 것"이라며 "아무리 (의심을 받는) 일반 기업들도 회계 장부를 공개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 지경부 "직권조사 권한 갖고있다" vs 전문가들 "비정상적 상황에만 적용돼야"
지경부는 석유사업법에 근거해서 석유제품에 대한 제조 수입 저장 운송 보관 또는 판매에 대한 감독 및 규제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지경부는 주유소 인허가권자로 유통질서를 어지럽히는 경우에는 직권 조사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주유소 업계에 대한 감독 권한을 근거로 회계장부 조사가 이뤄질 경우 이는 수급이나 가격 시장 기능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과연 현재 주유소 업계 상황이 비정상적인 수준인가에 대해서는 업계와 전문가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조사가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지경부 내에서도 이를 전담해 회계 장부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인력 자체는 부족한 실정이다.
◆ 최 장관, 현실 파악 미흡. '아이디어' 수준 발언?
최 장관은 과거 기획재정부 시절 고환율 정책 등과 관련해 '구두개입' 효과로 재미를 봤을 것으로 풀이되고 이같은 개념을 확장해 국내 휘발유 시장에도 도입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발언은 최 장관식의 또 하나의 아이디어 발언으로는 그럴 듯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따라서 휘발유 판매가 상위 500개 주유소 회계장부 열람 발언은 주유소 업계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채 일시적인 정책적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최 장관의 정책 의지가 강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 구두개입 발언 차원인지는 향후에도 지켜볼 부분이다.
하지만 이같은 장관의 발언이 재료가 매일 분출하고 소멸하는 환율시장과 달리 실물경제인 주유소 업계 종사자들에는 또다른 파장과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