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개인자산관리(PB)시장이 확산일로다. 증권사 PB 경쟁력도 날로 강화되고 있다. 뉴스핌은 창간 8주년을 맞아 '한국 자산가들이 찾는 증권사 명품 PB지점과 상품'을 주제로 특별기획을 마련했다.
한국의 금융 자산가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이 어떤 기준으로 증권사와 상품을 선택하는지등 증권사 VVIP 자산가과 증권사 PB활동상의 면모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뉴스핌=노희준 기자] 간만에 동창회에서 얼굴을 내민 나개미 씨(60). 10년만이다. 웬만해선 얼굴을 내밀지 않았던 그다. 그런 그가 친구들 사이에 어렵사리 나타난 이유는 뭘까.
나개미 씨는 ‘은행 해바라기’였다. 이제까지는 그게 유효했다. 열심히 돈을 모았고 은행을 찾아갔다. 그 돈으로 여유롭지는 않지만 아이들 교육에다 취업에도 성공했다. 이젠 자신과 부인의 여생을 더 챙길 때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은행예금과 국민연금만으로는 손이 가볍다. 저금리 시대에 물가는 오른다고 한다.
그렇다고 재테크와 담을 쌓아온 인생이 갑자기 변할 순 없다. 우선 믿을만한 친구를 수소문했다. 나개미 씨가 친구들 사이에서 든든한 노후설계와 자산관리로 정평이 나있는 나여유 씨를 찾은 저간의 사정이다.
이는 나개미 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나개미 씨처럼 ‘큰 손’들의 포트폴리오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 체급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자금은 몰리는 법. 나여유 씨와 같은 VVIP(초우량고객)의 움직임은 시장의 풍향계가 되기도 한다.
◆ 그래도 부동산이 1위
온라인 종합경제매체 뉴스핌이 창간 8주년을 맞아 VVIP의 포트폴리오를 들여다봤다.
증권사 130명의 PB(개인자산 관리자)를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했다. PB들이 평균적으로 담당하는 VVIP의 자산 가운데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여전히 부동산(77%)이었다. 주식(19%), 채권(3%), 예금(1%) 등이 뒤를 이었다.
부동산이 대세하락기에 접어들었다는데, 나여유 씨만 특별한 경우일까. VVIP들의 포트폴리오는 무풍지대인 것일까.
이에 대한 PB들의 목소리는 한결 같다. 자산가들 부동산 선호도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주춤거리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부동산을 청산하고 금융자산으로 선회하는 비율은 높지 않다는 지적이다.
“부동산에 추가적으로 투자하는 비율은 상당히 낮아졌지만, 그렇다고 부동산을 포함한 전체적인 자산배분 비율을 조정하고 있지는 않다” A 증권사 한 PB의 말이다.
이유는 이렇다. 우선 VVIP는 기본적으로 장기 투자를 한다. 부동산, 주식, 채권, 예금 등 자산간의 일정한 포트폴리오 비율을 갖고 있다. 특히 단기적인 시장 변화에 따른 추가 투자자금은 부동산의 임대료 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부동산 유동화에 나설 때 자산가들도 고충을 받는다. 가격 하락에 따른 처분 부담이 걸림돌이다. 가격은 떨어져 저가로 내놓을 수도 없고 팔려고 해도 매매자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PB 고객 가운데 최다 금융자산을 투자하는 '큰 손‘의 포트폴리오는 조금 다르다.
부동산과 주식의 비중 차이가 훨씬 줄어든다. 가장 ‘큰 손’인 이들의 포트폴리오에서도 부동산은 41%로 1위를 고수했지만, 2위인 주식(27%)과의 격차는 14%포인트 차로 좁혀진다. 평균적인 VVIP보다 주식, 채권, 예금, 파생상품 등 부동산을 제외한 모든 자산의 비율이 증가했다. 전체 비율로는 채권(13%), 예금(11%), 파생상품(5%), 기타(3%) 순이었다. 극소수의 VVIP는 자산을 좀더 다변화하는 가운데 현금과 채권 등 안전자산을 늘리는 동시에 주식과 파생상품 등의 위험자산 투자도 확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 지수 2000시대 ‘주식’ 부상
B 증권사 한 PB는 이렇게 상황을 전했다.
“부동산이 마음대로 매각해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집을 3~4채씩 갖고 있는 게 좋은 재테크라고 생각하는 VVIP들은 많지 않다”
B 증권사 또다른 PB도 이런 시각에 힘을 실어준다. “VVIP는 전통적으로 부동산에서 돈을 많이 벌어서 비율 면에서 높을 뿐이지 금융자산에 예전보다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부동산에서 멀어진 VVIP의 관심은 주식 시장으로 옮겨가고 있다. 130명의 PB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코스피 2000시대에 VVIP들이 관심을 갖는 분야는 단연 주식이다.
전체 답변의 72%가 주식을 꼽았다. 이어 채권(8%), 파생상품(6%), 예금(6%), 부동산(4%), 기타(4%)가 뒤를 따랐다. 채권은 VVIP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상태다. 그나마 단기 채권 정도가 눈길을 받는 수준. 금리 인상기에 수익률이 좋지 않은 탓이다.
반면 주식은 지난 1일 코스피가 2121.01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연일 상승랠리도 이어가고 있다. VVIP들이 주식 시장을 주목하는 이유다.
◆ VVIP의 투자 패턴
VVIP들의 투자 패턴은 주로 톱다운(top down) 방식이 대세였다. 개별 기업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해 종목을 선정하기보다는 매크로쪽부터 큰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C 증권사 한 PB는 “VVIP들은 그냥 종목을 보지 않는다”며 “국제경제, 전체 시장 등의 큰 그림을 그린 후에 대형주 위주로 선택을 한다”고 전했다.
막연한 기대보다는 투자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의사결정이 빠르고 합리적 면이 많다고 덧붙였다.
VVIP들이 보수적이라 큰 수익률보다는 ‘시장수익률+ 알파’를 추구한다는 통념에 대해서는 다소 시각이 엇갈렸다. 일단 자산이 많을수록 돈을 늘리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이용하기를 원한다는 시각도 있지만, 그럴수록 공격적인 투자를 선호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관건은 알파에 대한 생각이다. 알파에 대한 시각이 VVIP의 성향을 결정짓는 것으로 보인다.
A 증권사 증권사 PB는 “관심이 워낙 많은 편이라 호황장일 때 남들보다 많이 벌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도 있다”면서 “위기를 기회로 살리려는 분들도 있어 일본 사태가 터졌을 때는 일본 국내에 투자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더라”고 소개했다.
전반적으로 VVIP들은 투자에 대한 자기 주장이 뚜렷한 것으로 파악됐다. 절반 정도는 PB와 상의하면서 투자결정을 하는 반면, 이미 투자에 대한 결정을 하고 와서는 PB를 검토, 확인하는 차원에서 이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 주식시장 전망
VVIP들은 주식시장의 추가적인 상승을 예상했다. 외국인 매수세는 이어지고 있고 자금 성격 역시 연속성을 띠고 있다고 파악해서다. 단기적으로 일본발 충격에 빠졌다가 올라와 시장에 어느 정도 내성도 생긴 것으로도 보고 있다.
C 증권사 여성 PB의 전망이다. “기술적 조정이나 단기적인 숨고르기는 있을지라도 단기급락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다. 하반기로 갈수록 더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올해 코스피 지수 밴드로는 2200~2400 전망이 주를 이뤘다.
다만, 코스피가 최고치 기록을 갈아엎은데 이어 중동이나 일본 등 악재들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접근을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C 증권사 또다른 PB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지수대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호황쪽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고 있다”며 “거래세가 없는 ELF쪽을 선호하는 분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편, 내년보다는 올해 증시가 좋은 장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총선, 대선 등 정치적 이벤트가 내년에 많은 탓에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계에서다.
◆ VVIP의 선호섹터
VVIP들이 선호하는 섹터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우량주가 가장 많은 VVIP의 러브콜을 받았다. 대표적으로는 전기전자, 자동차, 철강 등이 VVIP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종목이다.
최근 가장 선호했던 종목들은 화학, 정유, 자동차 업종이 주로 꼽혔다. 대부분 일본 대지진이나 리비아 산태로 수혜를 본 업종들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이들 종목들을 오른 후에도 매입한다는 것이다. 보통 투자자들이 상승장에 들어가기 주저하는 것과 다른 점이다. 돈이 돈을 번다는 지적과 맞닿아 있는 설명이다.
다만, 화학과 정유 섹터에서 은행과 증권, IT쪽으로 넘어가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A 증권사 PB의 설명이다. “화학, 정유쪽은 많이 올라서 VVIP들이 차익실현을 생각하고 있다. 대신 대형주가 쉬어가는 타이밍에 그동안 상대적으로 오르지 못한 증권과 은행 등 금융계통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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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 Newspim]노희준 기자 (gurazi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