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종빈 기자] 유로존 주변국들의 소버린 채무위기에 대해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 지원을 가능케 하고 추가적인 파장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지난 10월 '도빌 협정' 때문이었으며 이로 인해 유럽 국가들의 단결력이 더욱 강해졌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7일 보도했다.
'도빌 협정'은 지난 10월 18일 프랑스 휴양도시 도빌에서 맺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간 협정으로, 유로존 주변국 소버린 채권의 디폴트시 이를 보유한 민간투자자도 오는 2013년부터 손실을 떠안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유럽 금융시장을 크게 뒤흔들 수 있는 수 있는 결정이었고, 이로 인해 유로존 자체가 극도의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같은 협정으로 인해 유럽 국가들의 경제적 정치적 단결력이 더욱 강해졌다.
지난 5월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 지원 조치 이후 시장에서 유로존 채무 위기에 대한 우려는 다소 완화되는 듯했다.
여름 내내 유로화는 달러 대비 강세를 보였고, 지난 7월과 8월에 메르켈 총리는 유로존 내 재정적자 규정을 강화하는 등의 긴축 조치를 강조하면서 재정상태가 취약한 주변국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일랜드 금융권이 붕괴하면서 새로운 위기국면을 맞게 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8월말까지 아일랜드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600억 유로를 대출해준 상태였다.
또한 8월과 9월에는 아일랜드 금융권에서 예금자와 투자자들이 현금을 인출하면서 은행들은 자금난에 빠지게 됐다.
아일랜드 은행권이 급속한 위기로 치닫게 되자 10월 중순에는 유럽 각국도 결국 아일랜드에 구제금융이 지원될 수 밖에 없다는 쪽으로 결론나게 됐다.
지난 5월 그리스 구제금융 출연당시 최대 금액을 지원했던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과도한 재정적자를 보유한 국가들은 자동적인 제제와 벌금을 물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EU 조약의 수정이 불가피하고 이에 따라 메르켈 총리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유로존 내에서는 핀란드와 네덜란드 만이 메르켈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물론 ECB도 자동적인 제제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쪽이었다.
프랑스는 대부분의 자동적인 제제안에 대해 반대했으나 메르켈 총리는 자동 제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2013년 이후에는 그리스 지원시 창설된 유럽 금융안전망에 대한 기한 연장은 없을 것이라며 사르코지를 압박했다.
메르켈 총리는 결국 프랑스 측과의 협상을 통해 과도한 재정적자 보유국에 대한 자동 제제안을 완화하고 2013년 이후 소버린 위기시 민간 채권자가 이른 바 '헤어컷'이라고 불리는 소버린 국채가격 손실을 떠안게 하는 방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협정을 마무리했다.
사르코지로서는 소버린 국채에 대한 헤어컷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독일은 유로존 주변국들에 대한 추가지원 자체를 반대할 것임이 명백했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프랑스의 고위 관리는 "독일이 유럽에 등을 돌릴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당시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를 위해 룩셈부르크에 모여있던 각국 재무장관들은 도빌 협정 내용이 독일 재무부를 통해 전해지자 마치 폭격을 맞은 듯한 참담한 심정이었다.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도 "유로화를 파괴시키려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열흘 뒤 열린 유로존 정상회담에서도 그는 화를 풀지 못하고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다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지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르코지는 이에 대해 "은행가들과 얘기해 보라"고 맞받아 친 뒤 "우리는 선량한 시민들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메르켈과 사르코지는 전쟁을 치렀지만 유럽 주요국 지도자들은 이들의 결정에 순순히 수긍하면서 EU는 재정적 화합을 향해 순항했고 결국 유럽은 이후 항구적인 구제금융 기금을 마련하는데 속도를 내게 된다.
'도빌 협정'의 의미는 모든 유로존 국가들이 재정상태가 취약한 주변국들에 대한 부분적인 책임을 떠안게 하고 이와 동시에 이들 국가의 재정적 긴축 정책도 유도함으로써 유로존 내 항구적인 구제금융 기금을 출범시키는 쪽으로 이끌었다는 데 있다.
향후에도 항구적 구제금융 기금과 관련한 찬반 양론은 제기될 것이나 이에 대한 유로존 각국의 공조 노력도 지속될 것으로 관측된다.
메르켈 총리는 최근 의회 연설에서 "유로화는 공동의 운명이며 유럽은 공통의 미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