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조선은 '도전과 뚝심의 산업'으로 통한다. 고(故) 정주영 회장의 500원짜리 지폐 신화는 잘 알려져 있다. 맨주먹으로 출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산업이 바로 '조선'이다.
실제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내로라하는 중공업들이 세계 '빅3'다. 글로벌 '톱 10' 에 자그마치 7개사(社)나 되는 국내 업체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런 조선업계가 2년여 전부터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세계경기가 위축되면서 물동량이 줄며 선박 발주량 이 준 탓이다. 일감이 없다보니, 도크 현장엔 인력이 남아돌고 결국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업체들도 눈 에 띈다.
최근엔 중국조선에 역전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영영 밀리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마저 든다. 지난 200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정상에 오른지 10년만의 일이다.
올들어(1월~8월) 수주량, 수주잔량(일감), 건조량 등 주요 지표에서 중국이 우리를 앞서가고 있다. 일단 이 흐름을 뒤집을 '카드'는 별반 없어보인다. 중국은 자국물량을 소화하는 것 만으로 충분한 반면 우리는 해외시장에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전망이 여전히 어두운 상황이다.
조선산업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특징이 있다. 사이클은 대략 6~8년이다. 때문에 오는 3~4년 뒤에나 불 황탈출이 가능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않다. 조선업은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글로벌 경기둔화로 시황이 악화되며 고전중이다.
때문에 글로벌 경기가 호전되지 않는다면, 2013년에나 조선산업의 턴어라운드를 기대할 수 있다. 그 때까지 한국 조선은 중국에 잠시 역전당했다는 굴욕(?)을 감내해야 한다. 각종 데이터에서 중국의 선두질 주가 예상된다.
그럼에도 내용면에서는 한국 조선은 여전히 중국에 앞설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력의 격차가 5년이상 되는 데다, 중국 조선업체들은 벌크선 같은 저가-저부가가치 선종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방심만 하지않고 기술 유출 등을 제대로 막는다면 중국 조선은 언제든지 압도할 수 있는 게 우리의 조선산업이다.
과거 우리에게 세계정상을 빼앗긴 '일본'의 전철만 답습하지 않는다면, 정상회복은 언제든 가능하다.
일본은 70~80년대 불황이 닥쳤을때, 공급과잉을 우려해 설비투자를 게을리했다. 게다가 자국 수요가 많은 표준형 선박에 집중했다. 해외 선주들의 까탈스런 입맛을 맞춰주는 것보다는 표준화된 선박을 건조하 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렇다보니, 조선 관련기술은 정체를 면치못했고 결국 도크 수를 늘려가며 첨단공법으로 생산성을 높인 우리 조선업체들을 당해낼수 없었다. 특히 한국의 조선업체들 은 유럽의 까다로운 선주들의 다양한 눈높이를 맞춰 주기위해 R&D 투자를 빼놓지 않았다. 올들어서도 현대 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STX조선 등은 불황속에서도 순항중이다. 일감(수주잔량)을 까먹고 있 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으나, 해외 영업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조선업계는 불황 외에도 '국제회계기준(IFRS)'이라는 파고에 직면해서도 꿋꿋하다. 조선협회는 정부당국을 무관심을 탓하기보다는 2~3년전부터 몇몇 회계학의 전문교수(한종수교수,정도진교수)들과 함께 '한국조선' 을 지켜낼 방안을 강구해왔다. 며칠전에는 파생상품의 총거래량을 표시함으로써 총위험의 정도를 쉽게 알 아볼 수 있는 IFRS 수정안을 정부당국을 통해 데이비드 트위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SAB)위원장에게 전달 하는 등 '조선산업 지키기'에 총력을 쏟고있다.
한장섭 조선협회 부회장은 최근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조선산업은 늘 새로운 도전과 파고를 넘는 과정을 겪어왔다. 중국이 앞선다고는 하나, 걱정없다. 경쟁력은 10년이상이나 차이난다. 자만하지않고 치고 나가겠다."
조선산업은 우리 경제의 고민인 '일자리창출'에 가장 어울리는 산업섹터다. 특히 국내총생산(GDP)의 5%가 량 차지할 정도로 한국경제 기여도는 막강하다.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조선산업이 안팎의 도전을 뿌리치고 재도약하기를 기대해 본다. /산업부장 이규석
[뉴스핌 Newspim] 이규석 부장 (newspim200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