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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계약한 아파트 입주를 불과 한달여 남짓 남겨놓은 분양계약자 김모씨(46세)는 인터뷰 중에도 답답한 가슴을 씻어내기라도 하듯 얼음물을 단숨에 들이키며 말했다.
국내 부동산시장 침체가 3년째 지속되면서 아파트 분양 계약자들의 불안감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잇따른 집값 하락에 거래부진까지 겹치면서 재태크를 위해 분양 받은 신규 아파트가 애물단지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경기도 일산으로 직장을 옮겨오면서 현재 집보다 조금 넓은 평수로 갈아타기 위해 고양 인근에 신규 아파트를 분양 받은 채모씨(43세) 역시 밤잠을 설치기는 김씨와 마찬가지다.
채씨의 경우 서울 강북구에 27평형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지난 2008년 초 일산지역으로 직장을 옮기면서 고양 인근에 분양 중이던 아파트를 평수를 넓혀 갈아타기 목적으로 계약한 게 화근이 됐다.
아내와 딸을 비롯해 세 식구로 구성된 채씨 가족은 자금력이 녹록치 못해 은행권으로부터 중도금 전액 대출을 받은 상태다. 하지만 주택시장 불황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기존주택 거래가 되지 않고 설상가상 집값 하락까지 잇따르면서 입주를 앞두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입주를 불과 보름 앞둔 채씨는"과거 같으면 새 아파트 입주날을 위해 기대에 부풀어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렸을 텐데 요즘은 입주날이 다가올수록 없던 홧병까지 생길 것 같아 불안하다"고 토로했다.
채씨는 또"기존 주택은 전혀 거래가 될 미동도 보이지 않고 있는데다 가격마저 뚝뚝 떨어지고 있고 입주 잔금마련도 해야 하는데 중도금 대출까지 받아 놓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이러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 실물경기 호전됐는데 부동산시장 악재는 왜?
부동산정보업계에 따르면, 8월 현재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달 대비 0.33%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2008년 12월 금융위기 당시 -0.91% 이후 최대 하락률을 기록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0.48%로 가장 높은 하락률을 보였고 뒤를 이어 신도시 0.66%, 경기도 0.56%, 인천 0.27%로 수도권지역 하락률이 두드러졌다.
이 같은 하락률은 본격적인 계절적 비수기가 대표적인 원인이겠지만 무엇보다 정부의 거래활성화대책이 시장 혼선을 가중하면서 주택시장의 가격조정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불확실성 때문에 매수심리가 더욱 얼어붙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국내 실물경기가 호전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수요자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그다지 녹록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하다. 일반 산업경제에 비해 부동산경기는 과거 그 어느 때 보다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악재가 잇따르면서 상황은 더욱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특히, 수도권 부동산시장은 지난 2007년 말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민간건설업체들이 무더기로 쏟아냈던 물량들이 올해 본격적인 입주에 나서면서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부동산써브 함영진 실장은"수도권 주요 지역들의 주택가격 하락이 거래감소나 구매수요의 급감으로 연결되면서 매수세 찾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무엇보다 금리인상, 신축주택의 양도소득세 감면과 같은 정부지원책이 종료되면서 부동산경기 침체는 가속화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주택 팔려야 잔금내고 입주하는데...
올 하반기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지역에서 입주를 앞두고 있는 신규물량은 약 8만가구로 예상된다. 이들 물량은 서울 은평, 강북, 경기 용인, 고양, 파주, 인천지역으로 집중되면서 대규모 입주대란에 따른 가격하락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기존주택 거래가 막히면서 신규 입주아파트로 갈아타기를 시도하고자 했던 수요자들의 경우 때 아닌 하우스 푸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부터 본격적인 입주에 나서고 있는 용인 성복지구의 A아파트 계약자 김모(37세)씨는 10년이 훨씬 넘은 노후 아파트에서 신규 아파트로 갈아타기 위해 기존 주택을 담보로 중도금 전액을 대출 받았지만 주택거래 정체 심화에 따른 기존주택 매매가 어려워 담보대출 중도금 이자 납부조차 힘겨워 하고 있다.
"잔금 납부를 해야 입주를 할텐데 기존 주택이 팔려야 말이죠...인근 부동산중개업소 다수에 팔려고 내놨는데 오히려 가격만 떨어지니 미칠 지경"이라며"주택담보대출로 받은 중도금 대출 이자도 버거운데 달리 방법이 없어 이러다가 뉴스에 나오는 '집 있는 거지'(하우스 푸어)로 전락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용인 성복지구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주택 거래요? 말 그대로 씨가 말랐다"면서"본격적인 입주시기가 임박해지면서 매수문의는 하늘의 별따기만큼 찾기 어려운데 입주를 위해 잔금 마련을 해야 한다며 기존 주택을 팔아달라는 매도 문의는 하루에도 수 십통씩 걸려온다"고 설명했다.
비단 성복지구 뿐 아니라 인근 신봉, 동천 역시 사정은 별반 차이가 없다. 성복지구와 비슷한 시기에 분양을 시작했던 신봉지구와 동천 역시 미분양 털기를 위해 분양가 할인 등 다양한 조건을 내걸어 어렵사리 분양률을 채웠지만 정작 입주율은 크게 밑돌고 있다.
신봉지구 인근 중개업소 관계자는"갈아타기 수요자들이 신규 입주를 위해 시장에 매물을 내놓았지만 거래가 쉽지 않다"면서"무엇보다 시장 침체로 하루가 다르게 가격이 폭락하면서 종전 4억~5억원대 매물이 반토막 가격으로 하락해도 매수세는 전무한 상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