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시장에 당국 개입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신용카드론’이 제기되고 있다. 외환당국의 최근 개입 형태와 관련, 향후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는 것. 당국의 환율 방어를 위한 실탄이 소진되고 있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 가운데 당국의 최근 개입 행태가 종전과 달라졌다. 현물환 시장은 기본으로 역외선물환(NDF)시장, 스왑시장, 옵션시장 등 환율 방어를 위해 영향을 가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발을 뻗고 있다는 것이 시장의 전언이다. 일각에서는 향후 환율의 급락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으며 ‘소방수’로 그쳐야할 당국의 역할이 ‘오버슈팅’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 당국, “신용카드 남발(?)” 당국의 ‘문어발식’ 시장 개입이 과연 기회비용 측면에서 얼마나 실효를 거두고 있는 지 제고해야 한다는 발언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은 당국의 최근 개입 패턴이 달라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물환시장 중심의 개입에서 NDF시장에도 본격적인 모습을 드러내면서 밤낮 할 것없이 원화강세를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는 것. 최근처럼 역외를 활용한 개입이 활발했던 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최근 당국의 개입이 NDF시장의 1개월물 환율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며 “실탄이 부족해서인지, 만기까지 시간을 지연하자는 효과를 노리는 것인지 그 의미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NDF거래는 만기에 다다랐을 때 약정환율과 실제환율과의 차액을 정산하기 때문에 당장의 현금부담이 없을뿐더러 만기에 포지션을 정리하기 전까지는 실제 매매가 없어 개입에 따른 눈앞의 외환보유액 증가를 피할 수 있다. 최근 외환보유액 유지비용에 대한 우려를 덜고 급격하게 늘고 있는 외환보유액 증가에 따른 개입의 물증을 ‘눈가리고 아웅할’ 수 있다.최근 시티은행은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차입비용을 낮추고자 하는 기대에서 이를 늘렸다고 해도 지나치다”며 “ 최근 시장개입이 외환보유고의 축적으로 이어졌다면 향후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국내총생산(GDP)의 1.5%의 비용을 감안해 얼마나 높은 성장을 할 수 있을지, 다른 저비용의 형태로 유사한 정책결과를 낼 수 있는 다른 정책 대안이 없는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 역외시장을 통한 개입성 매수에 대해 매도한 세력들이 현물환시장에서 포지션 정리를 위해 매수에 나서기 때문에 전방위의 개입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외국계은행의 한 딜러는 “당장 총알이 없다는 얘기가 돌고 있는 가운데 당국에서 1개월물 NDF를 통한 개입이 효율적이나 판단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한달 뒤 롤오버 시점에서 다른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국에서 롤오버 하지 않을 경우 1개월 뒤 매물 부담으로 다시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것. 다른 은행의 딜러는 “당국이 NDF를 통해 역내 달러매수를 유도하고 있다”며 “꼭 놀림을 당하는 기분이며 지난 2000년에 1,100원을 막을 때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는데 꼭 이래야 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당국은 그렇다면 한달여동안 일단 시간을 번 뒤 외생변수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는 관측도 가능하다. 현재로선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동안 달러매도(숏)심리가 뒤집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 정책적인 대안으로서의 선택보다는 요수를 바라는 심리가 잠재해 있다는 지적이다. 외국계은행의 다른 딜러는 “NDF를 통한 개입은 당장의 현금부담이 없다는 이유로 신용카드 쓰듯이 개입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라며 “나중에 신용불량 상태로 갈 수도 있는데 당국으로서는 위험한 베팅이다”고 말했다. 신용카드가 편하다고 남발하면서 미래의 후환을 고려하지 않는 형태가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태에 대한 경각심을 깨워주는 목소리다. 한편 파생시장도 이미 당국의 입김이 불어닥쳤다. 달러매수를 위한 원화를 위해 외국환평형기금이나 통안증권 발행 등을 통하지 않고 스왑시장에서 확보하거나 옵션시장에서 환리스크 관리를 위한 매도헤지가 일부 저지를 받는 등 당국의 문어발식 개입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진단된다. ◆ "당국의 유연한 시장대응 필요" - 시장개입에 따른 비용의 부담은 국민의 세금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게 마련인데 당국에서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친 대처를 하는 것은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시장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시장 대세에 역행하면 안 될 텐데 고집불통처럼 억지로 레벨을 방어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다”며 “왜 이럴까하는 의구심이 계속 든다”고 전했다. 그는 원-엔 디커플링(차별화)과 관련, “엔화 대출기업이나 일본 수출업체들은 큰 일났다”며 “당국에서 거시적인 안목으로 보겠다는 심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냥 방치할 수만도 없다”고 덧붙였다. 다른 은행 딜러는 “당국에서 이상하게 아집아닌 아집을 부리는 것 같아 어이가 없고 무섭다는 느낌까지 든다”며 “개입에 따른 부작용이나 역효과 가능성을 간과한 것인지 몰라도 그 부담을 과연 누구한테 떠넘길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절대 방어선을 쳐놓고 있는 ‘1,150원’에 대한 의미가 무엇인지도 시장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한 외국계은행의 딜러는 “1,150원이 과연 의미가 있는 지 묻고 싶다”며 “놔두면 1,140원대에서 노닐다가 자연스럽게 반등할 때가 되면 올라갈 텐데 당국이 체면을 구기면서까지 스스로 함정을 파고 있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대세를 역행하지 않고 조금씩 내려오는 것이 당국이나 시장 모두 'win-win' 게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역외에서 펀드가 붙었다는 루머 등 달러매도초과(숏)포지션이 너무 깊어 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환율 하락, 일방향에 치우친 시장 심리를 당국에서 제어할 당위성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 ◆ 외환당국의 ‘오버슈팅’(?)전반적으로 최근 당국의 시장 개입 형태는 ‘시장의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시장이 오버슈팅을 하게 되면 의당 자율 조정을 통해 제자리로 복귀하는 것이 시장의 생리다. 그럼에도 당국의 최근 개입은 정도를 벗어나 ‘시장은 우리가 관리한다’는 식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 이미 지난달 하순 ‘1,170원’을 놓고 공방전이 펼쳐질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당국의 레벨방어가 도를 지나칠 즈음, 두바이발 선진7개국(G7) 폭풍이 휘몰아치면서 환율은 20원 가량 급락을 경험했다. 물론 달러/엔의 급락이 직접적인 영향을 가했으나 당국에서 충분히 이를 인지하고 시장 자율성을 존중했더라면 그같은 급락은 없었을 것으로 시장은 읽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1,150원’에서도 똑같이 재연됐다. 외환당국의 손아귀 힘은 시장을 꽉 틀어쥔 채 시장 발전의 공동조력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지게끔 비쳐졌다. 원론에 불과하지만 당국은 비상시국에서 변신을 한다. 국가 경제의 위기 상황이나 환율의 오버슈팅이 확연하게 드러날 경우 당국은 소방수 역할을 하면서 전면에 나선다. 시장의 불길을 잡아 시장을 제자리로 돌려다 놓는 것이 그 역할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상황은 다소 무리수가 엿보인다. 당국이 시장 관리를 일임하고 나선 모양새다. “현재는 비상시국?”이라는 물음에 대해 대부분 시장 전문가들의 답변은 그렇지 않다. 당국 나름대로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그 명분이라는 것이 다소 궁하다. 한국 경기회복의 유일한 버팀목인 수출의 힘이 떨어지는 것을 막자는 것이 그 의도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당국은 일본과의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 차이를 들어 원화와 엔화의 디커플링(차별화)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당국의 이같은 의도는 어느 정도 시장에 먹히고 있다. 방어를 넘어 지배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그러나 수출은 여전히 호조세를 잇고 있다. 환율 하락이 수출에 아직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증거는 없다. 9월 수출은 환율 하락 등에도 불구, 4개월째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했으며 지난해 같은 달보다 23.8% 증가한 172억1,500만달러로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를 가리켰다. 무역수지도 4월부터 흑자 행진을 계속, 9월중 26억2,200만달러의 흑자를 나타냈으며 월간 기준으로 57개월만에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그렇다면 김진표 부총리가 강한 뉘앙스로 얘기한 투기세력에 대한 ‘응징’은 어떤가. 당국은 투기세력의 외환시장 공략에 대한 물증이나 흐름을 설명하기보다 ‘투기세력의 교란이 있다’는 ‘립서비스’로 일관하고 있다. 외환위기 때와 같이 명명백백한 투기세력이나 헤지펀드의 공격이 감지되는 것도 아니고 이들이 한국 원화만을 타겟으로 하는 것도 아니다. 시장내 엄연히 투기가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당국도 뻔히 알면서도 투기 운운하는 것은 명분을 위한 명분일 수 있다. 글로벌 달러화 약세에 따라 국제 투자자들은 달러에 대해 매도초과(숏)포지션을 가져가고 있다. 해외 펀드나 투자은행들이 위안화 절상을 예상해 옵션시장에서 원화 강세로 베팅을 하고 역외선물환(NDF)시장 등지에서 숏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국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일각에서는 역외세력의 투기화를 더욱 북돋우는 역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뉴스핌 Newspim] 이김준수 기자 jslyd01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