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핵심 요약
beta- 국가보훈부는 31일 김종기 대령·쇼 대위를 영웅으로 선정했다.
- 김 대령은 인천상륙·서울수복과 재인천수복에 공을 세웠다.
- 쇼 대위는 한국 태생 미군으로 정찰 중 전사해 훈장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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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생 미 해군 장교 쇼 대위, 맥아더 보좌 후 녹번동 정찰 중 전사
국가보훈부 "한·미 장병의 헌신, 자유와 평화 지킨 역사"
[서울=뉴스핌] 오동룡 군사방산전문기자 = 국가보훈부는 31일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작전에서 공을 세운 김종기 해군 대령과, 한국에서 태어나 6·25전쟁 발발 후 미 해군에 자원해 참전한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미국 해군 대위를 '2026년 9월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작전의 현장에서 각각 대한민국 해병대 지휘관과 미군 정보장교로 활약했다.

김종기 대령은 해군사관학교 1기를 졸업한 뒤 소위로 임관했다. 6·25전쟁 당시 해병대 제2대대장으로 복무하던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김 대령은 인천 상륙 직후 시가지 소탕작전에 나섰고, 같은 달 20일 한강을 건너 서울수복작전에 투입됐다. 24일 서울에 진입한 뒤 동국대·동대문·안암동·미아리 방면으로 진격해 당시 중앙청을 확보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북한강 일대까지 진출해 10월 8일까지 작전을 수행했다.
김 대령은 해군으로 복귀한 뒤 덕적도 주둔대장으로 근무하던 1951년 2월 10일 제2차 인천상륙작전에도 참가했다. 인천 해안 상륙과 재수복에 공을 세운 이 작전은 서울 재수복과 국군·유엔군의 38도선 진격을 위한 발판이 됐다고 보훈부는 설명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54년 을지무공훈장을 수여했다. 김 대령은 1926년 3월 6일 태어나 2007년 9월 15일 별세했다.

쇼 대위는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가진 미 해군 장교였다. 미국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1922년 한국에서 태어났으며, 한국 이름은 서위렴(徐偉廉) 2세다. 미국에서 대학을 마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이후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쇼 대위는 1950년 6·25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미 해군에 자원입대했다. 한국어에 능통하고 한반도 지리에 익숙했던 그는 미 극동군사령부 해군정보장교로 임명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을 보좌했으며, 인천상륙작전 성공에도 기여했다.
쇼 대위는 이후 미 해병대 제5연대에 배속돼 서울수복작전에 참전했다. 그러나 1950년 9월 22일 후방 정찰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서울 녹번동에 접근하던 중 매복한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전사했다. 서울이 수복되기 일주일 전이었다. 그의 유해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안장됐으며, 정부는 1956년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보훈부는 김 대령과 쇼 대위의 공적이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이라는 6·25전쟁의 결정적 전환점에서 한·미 장병이 함께 싸운 역사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김 대령은 1950년과 1951년 두 차례 인천 상륙 및 재수복 작전에 참여했고, 쇼 대위는 한국에서 태어난 미국 장교로서 정보·정찰 임무를 수행하다 전사했다. 두 사람의 헌신은 오늘날 한미동맹의 역사적 뿌리와도 맞닿아 있다.
goms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