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억제 방향성 옳지만, 정책 정밀성 높여야
대출 규제 기준과 예외적용 분명히, 서민층 지원도 필요
[서울=뉴스핌] 채송무 기자 = 정부가 가계부채 억제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부동산 중심의 자산 쏠림을 주식시장으로 분산하는 '자산 재편' 정책과 맞물려 가계부채 관리는 현 정부 금융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자리 잡았다. 금융당국 수장들은 가계부채 총량 관리 목표가 기존보다 훨씬 낮은 수준으로 관리될 가능성이 높다고 공언했다.

방향성 자체는 옳다. 가계부채가 GDP 대비 89%에 달하는 현실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점이며, 이를 2030년까지 80%대로 낮추겠다는 목표는 거시 건전성 측면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책의 정밀도다. 당초 2월 중 발표될 예정이었던 금융권의 대출총량 목표는 3월이 다 지나도록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다보니 시중은행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혼란을 겪고 있다. 정책의 방향은 긴축을 가리키는데 구체적인 기준선은 부재한 상황이다. 이 공백이 만들어내는 혼란은 고스란히 시장과 가계가 떠안고 있다.
정책 공백 속에서 시장이 먼저 움직이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정책금리를 동결했음에도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건전성 관리를 명분으로 가산금리를 잇달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은 멈춰 있지만 시장은 이미 긴축 상태에 진입한 셈이다.
이중 부담의 피해는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금리 상승에 가장 민감한 계층은 고정자산이 적고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저소득 가계다. 부동산 투기를 노리는 다주택자나 고액 자산가가 아니라, 전셋집 하나 구하려는 청년이나 소규모 자영업자가 먼저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는다는 뜻이다.
물론 가계부채 억제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책이 무디게 설계돼 투기 수요와 실수요를 구분하지 못한 채 일률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데 있다. 다주택자의 갭투자와 생애 첫 주택 구매를 위한 대출은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이다. 전자는 억제해야 마땅하지만 후자는 지원의 대상이 돼야 한다.
금감원이 사업자 대출 용도 외 유용에 대해 "가공 사업자 등록을 통한 대출은 형사처벌 수준까지 갈 가능성이 높다"고 강경 대응을 예고한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서민과 소상공인에 대한 배려를 높이지 않으면, 정책의 칼날은 결국 힘없는 이들에게만 날카롭게 작동하게 된다.
금융당국은 조만간 대출총량 목표를 발표할 전망이다. 그러나 당국은 대출총량 목표를 하루빨리 발표해 명확한 정책 의지를 시장에 전달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금융기관들의 과잉 긴축으로 인한 부담이 실수요자에게 전가되는 것을 막아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
대출 규제의 기준과 예외 적용 범위도 분명히 해야 한다. 기준과 범위가 불명확할수록 현장의 혼선은 커지고, 금융기관들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최근 정부의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의 움직임이 비거주 1주택자에게도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면서 시장의 혼선이 일고 있다. 금융기관과 시장의 혼란을 막는 당국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다주택자·투기성 대출에 대한 강력한 억제와 함께, 일반 서민 구매자,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저소득 자영업자·청년층에 대한 맞춤형 정책금융 지원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가산금리 인상으로 정책금리 인하 효과가 무력화되는 구조도 금융당국이 면밀히 들여다봐야 할 지점이다.
가계부채 문제는 결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다. 수십 년에 걸쳐 부동산 자산 증식 경로에 집중된 한국 가계의 재무 구조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정밀하고 일관된 정책이 요구된다. 투기는 막되 실수요는 열어두고, 총량은 조이되 서민은 보호하는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정책의 공백이 길어질수록,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은 언제나 서민의 고통이다.
dedanhi@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