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김주리와 임노식, 일본 작가 케이 이마즈
필리핀 마리아 타니구치 등의 20점 5월 2일까지
[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화랑인 타데우스 로팍 서울이 아시아의 유망작가 4인의 신작을 모아 기획전을 시작했다. 전시 타이틀도 색달라 '거리의 윤리'전이다.
한남동 타데우스 로팍 서울의 2층 갤러리를 들어서면 물기를 머금은 거대한 흰 바위 두 덩이가 눈에 들어온다. 김주리 작가의 설치작품 '모습(某濕)'이다. 의역하자면 '습기를 머금은 그 무엇' 쯤 되는 제목이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육중한 흙더미 형상의 이 작품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습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시장 실내가 건조하면 머금었던 수분이 말라가고, 반대로 습도가 높으면 공기 중 수분을 흡수하며 스스로의 상태를 조절한다.

김주리 작가는 대학시절 실습실에서 점토가 물 속에서 해체되는 과정을 목격하며 강한 인상을 받았다. 견고해 보이던 흙덩이가 물을 만나 허물어지는 모습에서 자연의 순환을 확인했다. 당시의 기억은 작가를 움직여 오늘날 '모습' 같은 거대한 설치미술을 시도하게 했다. 자연의 사이클, 생명의 순환을 품은 작품이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의 2026년 첫 전시 '거리의 윤리(Distancing)'는 물질과 신체, 관객 사이의 거리와 관계를 살펴보는 자리다. 한국 아티스트 김주리와 임노식, 일본 작가 케이 이마즈, 필리핀 작가 마리아 타니구치 등 아시아 작가 4인의 신작 20여 점을 출품했다.

전시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거리'는 여러 갈래로 해석되고 적용된다. 이를테면 작품과 관객 사이의 '물리적, 지정학적 거리'에서부터 이미지와 해석 사이의 거리, 물질과 사람 사이의 거리, 사람과 사람의 거리 같은 것이다. 또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 현실과 이상 사이의 거리 등을 두루 품는다. 그런데 거기에 '윤리'라는 단어를 추가한 것은 다소 알쏭달쏭하다. 서로 다른 작업을 하는 개성있는 작가 4명의 작품을 하나의 주제로, 하나의 맥락 안에 묶기에는 다소 한계가 보이긴 한다.
김주리 작가는 묵직한 설치미술 '모습' 외 'desert'라는 제목의 페인팅 연작도 내걸었다. 이 연작은 물질의 본성에 집중한 작품이다. 돌, 벽돌, 재, 폐유리 등을 분쇄해 물감처럼 활용했다. 이들 입자들이 물과 만나 화폭을 지나치며 제각각의 물성대로 침전된 흔적이 마치 화석처럼 남은 추상작업이다.

임노식 작가는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여주의 풍경을 흐릿하게 담은 작품을 출품했다. 작가는 자신의 주변에서 포착한 일상의 사건이나 풍경을 캔버스에 옮긴 뒤, 그 위에 오일 파스텔을 여러 겹 덧칠한다. 이를 통해 형상들은 알 듯 모를 듯 감춰지고, 경계도 흐릿해진다. 대상을 선명하게 그려 '재현'하는 대신, 임노식은 겹치고 지우는 기법을 통해 우리가 대상을 명확히 안다고 믿는 그 확신에 의문부호를 제기하게 만든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이다.

일본 출신의 여성작가 케이 이마즈는 인도네시아에서 8년째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케이 이마즈는 일본이 제2차세계대전 당시 인도네시아를 침략했던 시대의 장면과 오늘날 인도네시아 여성이 생을 영위하게 노동하는 모습을 병치시킨 작품을 출품했다. 가해와 피해가 있던 과거 역사, 그리고 평범한 현재라는 두 가지 시점과 서사가 한 화면에 중첩되며 과거와 현재 사이의 거리를 질문한다.

필리핀 작가 마리아 타니구치의 '벽돌 회화'는 캔버스 위에 수천 개의 벽돌 형상을 하나하나 세밀한 붓질로 채워 넣은 결과물이다. 멀리서 보면 그저 거대한 검은 평면 같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벽돌 하나하나가 지닌 미세한 색감 차이와 질감이 드러난다. 관객은 작품 앞에서 뒷걸음질 치거나 바짝 다가서며, 보는 행위가 거리감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체험하게 된다
비록 거리라는 주제가 모든 작품을 매끄럽게 엮어내지는 못할지라도, 대형 흙 조각이 내뿜는 습기나 역사의 층위가 쌓인 회화 등 각 작품이 지닌 개별적인 에너지는 충분히 강렬하다. 전시는 5월 2일까지.
art2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