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수준에서 AI 깊이 내재화
S/W 전체 잠식 아니라 승자·패자 갈라
[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AI가 소프트웨어 업계를 삼킬 것이라는 우려에 관련 종목들이 급락한 가운데 AI 도구로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컨설팅 업체, 싱크탱크의 보고서를 교차 분석해 보면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니라 가격 체계와 마진, 업계 판도까지 재설계되는 흐름이 확인된다.
맥킨지는 2025년 보고서에서 "AI+SaaS" 포트폴리오를 가진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가격 모델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통적인 월 구독 기반 과금은 그대로 유지되지만 여기에 AI 기능을 사용량 또는 성과에 연동해 별도로 과금하는 하이브리드 구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독립형 AI 기능을 별도로 판매하는 시도도 늘고 있다. 어도비는 파이어플라이(Firefly)와 아크로뱃 AI 어시스턴트 등 독립형 및 애드온 AI 제품에서 2025 회계연도 1분기 기준 연간 환산 1억2500만달러의 반복 매출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경영진은 향후 9개월 안에 이 수치를 두 배로 키울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AI 기능을 독자적인 수익원으로 키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맥킨지는 이런 유형의 선도 기업들이 AI 기능을 도입하지 않은 동종 SaaS 대비 고객 트랙션과 ARPU(가입자 당 평균 매출)에서 2~3배 높은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하며, "AI를 먼저 상품화한 소수 업체가 고객 지갑과 데이터를 선점하는 구조"라고 요약한다.
◆ 개발·운영 자동화, 마진 구조를 다시 쓰다 = AI는 가격 모델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기업의 비용 구조에도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FT)와 MIT, 프린스턴대학,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 연구진은 4800여 명의 개발자를 대상으로 한 무작위 통제 실험에서 깃허브 코파일럿을 사용한 그룹이 사용하지 않은 그룹보다 주당 처리한 풀 리퀘스트 수가 평균 26% 늘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액센츄어, 한 글로벌 전자업체에서 2022~2023년에 수행되었으며, 특히 경력이 짧은 개발자일수록 생산성 증가 폭이 컸다고 분석했다.

별도의 현장 실험에서는 코파일럿 도입으로 개발자당 완료 작업량이 13~22% 늘어났다는 결과도 나왔다. MIT와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진은 두 차례 실험을 통해, AI 코드 어시스턴트를 도입한 팀의 코드 생산량이 유의미하게 증가했음을 확인했고, 이로 인해 "같은 산출을 더 적은 인원으로 내거나, 같은 인원으로 더 큰 로드맵을 소화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고 결론지었다.
다만, 속도 향상이 곧바로 질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DORA 2025 보고서를 인용한 분석에 따르면, AI 도구를 사용하는 팀은 배포 빈도가 늘고 리드타임이 단축되는 반면 변경 실패율과 평균 복구 시간 등 안정성 지표는 악화되는 경향이 관찰됐다.
AI 도입 초기에 품질 게이트와 코드 리뷰 프로세스가 따라가지 못하면 국지적 생산성 향상이 시스템 전체의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 누가 잠식당하고, 누가 'AI 슈퍼앱'이 되는가 = 경쟁 구도에서는 양극화 조짐이 뚜렷하다. 맥킨지와 딜로이트는 공통적으로 AI 기능을 플랫폼 수준에서 깊이 내재화한 대형 SaaS 플레이어들이 'AI 슈퍼앱'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세일즈포스(CRM) 같은 기업은 이미 오피스·CRM·협업 등 핵심 업무 흐름을 지배하고 있어 AI 기능을 고객이 매일 쓰는 워크플로우에 자연스럽게 녹여 넣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이런 기업들은 AI 기반 요약·분석·추천·자동화 기능을 번들링해 상위 요금제에 탑재하는 동시에 개발자·마케팅·세일즈용 AI 도구를 통합 제공하는 방향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특정 기능만을 제공하는 틈새 툴이나 리셀러, SI 업체는 AI 통합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중복 기능을 제공하는 저가형 툴은 상위 플랫폼이 AI를 앞세워 비슷한 기능을 기본 제공할 경우 가격 경쟁력과 차별성을 잃을 위험에 노출된다.
한편, AI 전용 기능을 내세운 신흥 벤더들도 위협 요인이다. 딜로이트는 "AI 에이전트·코파일럿·도메인 특화 모델을 전면에 내세운 신규 업체가 빠르게 고객을 확보하면서 기존 미드티어 소프트웨어 벤더들이 플랫폼과 신흥 AI 벤더 사이에 끼이는 샌드위치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 어떤 소프트웨어 기업이 'AI 시대의 승자'가 될까 = AI 도구를 이용해 글로벌 리서치와 IB, 컨설팅 보고서를 종합 분석해 보면, AI 시대의 승자 패턴은 몇 가지 공통 분모를 갖는다.
첫째, 이미 풍부한 도메인 데이터와 워크플로우, 산업 지식을 쥐고 있어 AI를 붙이기 쉬운 기업이다. 기존에 쌓아온 고객 데이터와 업무 흐름에 AI 모델을 입히는 쪽이 '제로'에서 AI 툴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하다는 점에서다.
둘째, 가격 체계를 사용량·성과 기반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기업이다. 맥킨지와 딜로이트는 "구독만으로는 AI의 가변적인 가치를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구독+소비' 기반 하이브리드 모델을 얼마나 빨리 정착시키느냐가 수익 성장의 핵심 변수"라고 강조한다.
셋째, 내부 개발·운영에서 AI를 적극 활용해 구조적 비용 절감을 실현하는 기업이다. 깃허브 코파일럿과 유사한 도구를 대규모로 도입해 개발 효율을 끌어올리고, AI 기반 모니터링·테스트·운영 자동화로 인건비·운영비를 줄이는 전략은 중장기 마진 개선의 핵심 수단으로 꼽힌다. 이런 기업일수록 AI가 비용이 아니라 레버리지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독립적인 기능만 제공하면서도 AI 통합 전략이 불분명하거나, 고객에게 AI 도입에 따른 투자수익률(ROI)을 수치로 제시하지 못하는 소프트웨어 업체는 시장에서 점점 더 불리해질 수 있다.
S&P 글로벌과 맥킨지는 이들 기업이 매출 성장률과 밸류에이션 멀티플에서 선도 그룹 대비 디스카운트될 리스크를 반복해서 경고한다. AI 도입이 단지 마케팅 슬라이드에서 키워드를 추가하는 수준에 그친다면 더 공격적으로 AI를 비즈니스 모델과 비용 구조에 녹여낸 경쟁사에 고객과 투자를 동시에 빼앗길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생성형 AI는 소프트웨어 산업 전체를 잠식하기보다 누가 AI를 비즈니스 모델과 조직에 깊이 통합해 '레버리지'로 쓰는가에 따라 승자와 패자를 가를 전망이다.
가격 모델을 가치와 소비 기반으로 재설계하고, 개발과 운영 자동화를 통해 마진 구조를 바꾸며, 플랫폼 차원에서 AI 기능을 내재화하는 기업이 AI 시대의 '슈퍼앱'과 새로운 표준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데 글로벌 데이터와 보고서가 공통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