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수배에도 中선 비자 발급
"삼성 출신 영입하면 中 정부가 투자 유치"
[서울=뉴스핌] 김지나 기자 = 검찰 수사로 삼성전자를 떠나기 전부터 중국 기업과 접촉해 치밀하게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한 정황이 드러났다. 글로벌 반도체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반도체 굴기' 기조 속에서 중국을 향하는 기술유출 범죄 수법이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 삼성전자 퇴직 전 중국기업과 모종의 협의…체계적 기술유출
23일 서울중앙지검 정보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김윤용)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10나노대 D램 국가핵심기술 유출 사건과 관련해 삼성전자 전 직원 10명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 가운데 5명은 구속기소, 나머지 5명은 불구속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약 5년간 1조6000억원을 투입해 10나노대 D램 공정기술을 개발했다. 중국 청신메모리반도체(CXMT)는 중국 지방정부가 약 2조6000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중국 최초이자 유일한 D램 반도체 업체로, 개발 전 과정에 걸쳐 삼성전자 핵심 기술을 부정하게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통해 중국 최초이자 세계에서 네 번째로 10나노대 D램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파악됐다.
청신메모리반도체는 2016년 5월 설립 직후, 당시 세계 최초이자 유일하게 10나노대 D램 양산에 성공한 삼성전자의 핵심 인력을 집중적으로 영입하고 체계적인 기술 확보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전자 연구원 출신 피고인들은 청신메모리반도체로 이직하는 과정에서 수백 단계에 달하는 반도체 공정 정보를 임직원 노트 등에 손글씨로 적어 반출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SK하이닉스의 국가핵심기술도 추가로 확보해 중국 내 설비 환경에 맞게 지속적으로 수정·검증한 끝에 2023년 중국 최초 D램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핵심 특징으로 사전 공모와 계획성을 지목했다. 근무 중 이미 기술을 넘길 대상을 정해 두고, 퇴사 전 대량의 공정기술을 체계적으로 유출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과거에는 워드파일을 조금씩 복사하거나 원격 접속·촬영 방식이 주를 이뤘다면, 이번 사건은 유출된 기술의 양과 방식 자체가 다르다"며 "옮겨 적은 공정 정보만 600개 정도로, 종이에 직접 손으로 옮겨 적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준비가 필요해 사전에 중국 기업과의 모종의 협의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 장비는 제품을 개발한 뒤 3~4년간 가동하며 오류를 잡고 공정을 고도화하는데, 신생 업체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공정기술"이라며 "처음부터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공정기술이라는 점을 알고 모종의 거래를 통해 범행을 계획한 게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 中 위장된 비료회사로 취업비자…취업 제한 끝나고 정식 입사

검찰이 구속기소한 A씨의 경우 중국 기업의 위장회사를 통해 입사한 뒤 인근 도시를 경유해 입국하고, 귀국 시에는 휴대전화와 USB를 반납하는 등 치밀한 행동을 보였다.
또 주기적으로 사무실을 변경하고 중국 이메일을 사용했으며, 출국금지·체포 상황에 대비해 암호('♥♥♥♥')를 사전에 공유하는 등 수사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한 정황도 확인됐다.
검찰은 "삼성전자는 퇴직 후 2~3년간 경쟁업체 이직을 제한하고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비료회사 명의의 위장회사를 설립해 근무한 뒤 이직 제한 기간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 정식 입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현직 직원을 직접 영입하는 것은 위험해 그렇게 진행하지 않았고, 퇴직 문제나 근무 연한 종료 등으로 회사를 떠난 핵심 인력이나 겸직 제한 기간 동안 교수직에 있는 인력 등을 대상으로 영업 리스트를 직접 작성해 계획적으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중국 기업의 파격적인 처우도 드러났다. 검찰은 "삼성전자 퇴직 당시 연봉의 적게는 2배, 많게는 3~4배에 달하는 연봉을 제시했고, 계약금으로 1년치 연봉을 선지급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주거비 제공은 물론 자녀 국제학교 진학까지 지원하는 등 전방위적 혜택을 제공했다"고 전했다.
◆ 中 정부, 삼성전자 출신 영입하면 보조금 세례

문제는 이처럼 기소가 이뤄지더라도 중국 정부가 제대로 협조하지 않아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를 통한 적색수배(체포영장 발부 피의자에 대한 국제수배)를 요청해도 실제 송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검찰은 "삼성전자 출신 인력을 대거 영입한 이유 중 하나는 이를 통해 중국 정부를 설득해 추가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기소된 인물 중 2명에 대해 적색수배와 여권 무효 조치를 했지만, 중국에서는 여전히 비자가 발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권 무효와 무관하게 중국 정부가 비자를 발급할 수 있어 사실상 협조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검찰이 기소를 하더라도 범죄수익 환수가 어렵고, 양형기준이 낮아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됐다.
검찰은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과거보다 실형 선고 비율과 형량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양형기준이 낮다는 실무적 문제의식이 있다"며 "현장 수사기관 차원에서도 양형기준 상향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abc123@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