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GM, 한국을 자율주행 테스트베드로
현대자동차, '아트리아 AI·피지컬 AI' 속도전
정부, 2027년 레벨4·글로벌 3대 강국 청사진
[서울=뉴스핌] 이찬우 기자 = 테슬라의 자율주행 보조 시스템 'FSD(Full Self Driving)'와 GM의 '슈퍼크루즈(Super Cruise)'가 잇달아 국내에 상륙하면서 한국 자동차 시장이 자율주행 경쟁의 분수령을 맞고 있다.
글로벌 업체들이 실제 사용 가능한 자율주행 기능을 앞세워 한국 소비자를 공략하는 사이, 현대자동차그룹은 레벨3 상용화 과제와 AI 기반 자율주행 체제로의 전환, 정부 로드맵과의 정합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국면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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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슬라 모델 Y. [사진=이찬우 기자] |
26일 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지난 23일부터 한국에 감독형 FSD를 도입했다. 한국은 미국·캐나다·중국 등에 이어 일곱 번째 FSD 출시 국가다. 테슬라는 이달 12일 공식 SNS를 통해 한국 출시를 예고한 뒤 약 열하루 만에 정식 도입을 확정했다. FSD는 차량이 가·감속, 차선 변경, 조향, 경로 탐색 등을 수행하지만 운전자의 상시 감시가 필요한 레벨2 단계 자율주행 기능이다.
국내에서는 하드웨어 4.0을 장착한 모델X·모델S 등 약 1000대 규모 차량부터 우선 적용한다. 최근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오류 논란으로 국내 고객 여론이 악화됐던 테슬라는 FSD 출시를 계기로 기술 이미지를 재정비하는 모습이다.
GM 역시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에 슈퍼크루즈를 적용하며 한국 시장 공략 강도를 높이고 있다. GM은 약 100억원을 투입해 2만3000㎞ 이상 국내 고속도로와 주요 간선도로를 정밀 맵핑하는 등 현지화 작업을 진행했다. 현재 슈퍼크루즈를 도입한 국가는 북미와 중국, 한국 등 3개국에 그친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자율주행 기능을 단순 편의사양이 아닌 브랜드 경쟁력의 전면에 내세우면서, 한국이 글로벌 자율주행 기술 경쟁의 테스트베드로 부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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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IQ.[사진=이찬우 기자] |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며 차량 선택 기준도 바뀌고 있다. 내연기관 시절에는 주행성능·품질·디자인이 핵심이었다면, 전기차 시장에서는 1회 충전 주행거리,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편의 사양 등 소프트웨어와 첨단 기술력이 상품성을 좌우한다. FSD와 슈퍼크루즈의 국내 상륙은 "이제는 자율주행에서 뒤처지면 차를 팔기 어렵다"는 압박으로 국내 완성차 업계에 작용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현재 자율주행 수준은 국내 타 완성차 업체와 마찬가지로 레벨2 단계에 머물러 있다. 제네시스 G90과 기아 EV9에 레벨3급 'HDP(고속도로 자율주행 기능)'를 탑재할 계획이었지만 실제 도로 변수와 안전성 검증 문제 등으로 상용화 일정은 다소 보수적으로 조정되는 분위기다. HDP는 고속도로·자동차전용도로 본선 주행 시 최고 시속 80㎞ 범위에서 차간거리·차로 유지, 끼어들기 대응 등을 스스로 수행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과도기 핵심 기술이다.
단기적으로는 테슬라·GM이 '보여주는 기술'로 시장의 시선을 끌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은 중장기 전략의 축을 AI 기반 자율주행 전환에 두고 있다.
센서·정밀지도 중심에서 벗어나 카메라 등 센서 데이터로 AI가 주변을 인지·판단하는 엔드 투 엔드(end-to-end) 딥러닝 모델 '아트리아 AI' 개발에 속도를 내는 한편, 포티투닷·모셔널과 협업해 도심 로보택시 실증을 통해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엔비디아 블랙웰(Blackwell) GPU 5만장 도입을 골자로 한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 역시 자율주행·로보틱스·SDV(소프트웨어 정의 차량)를 아우르는 '피지컬 AI(Physical AI)' 전략의 기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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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자동차가 자율주행기업 웨이모(Waymo)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4일 밝혔다. [사진=현대차] |
정부 정책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자율주행차 산업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며 한국을 글로벌 3대 자율주행차 강국으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2027년 레벨4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목표로 도시 단위 '자율주행 실증도시'를 조성해 자율주행차 100여대를 투입하고, 농어촌 등 교통취약지역 자율주행 버스 확대, 대기업·스타트업이 함께 참여하는 K-자율주행 협력 모델 구축 등을 추진한다.
연구개발(R&D) 측면에서는 'AI 학습센터'를 조성해 기업·대학·연구소가 GPU를 활용해 자율주행 AI를 개발하도록 지원하고, 엔드 투 엔드(E2E) 기술, 자율주행 특화 플랫폼·반도체 등 핵심 부품 개발을 뒷받침한다.
동시에 원본 영상 데이터의 R&D 활용 허용, 임시운행허가 절차 간소화, 자율주행 원격주행 허용 등 규제 정비를 통해 '선(先) 허용-후(後) 관리'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완전자율주행 사고 시 제조사 책임을 강화하는 제조물책임법 개정, 사고 책임 TF·택시업계 협의체 구성 등 법·제도 기반도 손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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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앞두고 운행되는 자율주행차. [자료=국토교통부] |
자율주행 기능은 완성차 업체들의 수익 구조 변화도 예고한다. 테슬라가 FSD를 구독·옵션 형태로 판매하며 소프트웨어 매출 비중을 키우고 있는 것처럼, 현대차그룹 역시 HDP와 AI 자율주행 기능을 OTA(무선 업데이트) 기반 유료 서비스로 전환할 경우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가 GPU 인프라와 데이터 규제 완화, 책임 체계 정비에 나서는 만큼, 현대차그룹이 이를 활용해 어떤 상용 모델과 수익 구조를 설계하느냐가 향후 경쟁력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업체들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지만, 현대차그룹이 AI 인프라와 글로벌 실증 네트워크, 피지컬 AI 전략을 기반으로 레벨3 상용화와 고도 자율주행 시대에 어떤 해답을 내놓느냐에 따라 향후 시장 판도는 다시 한 번 요동칠 수 있다"고 말했다.
chanw@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