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 교체 없이 기술·지원라인만 선별 조정
'연속성+전략 변화' 두 축이 만난 인사 기조
[서울=뉴스핌] 김정인 기자 = 삼성전자 연말 정기 인사는 예상보다 조용했다. 정현호 부회장의 용퇴와 사업지원TF의 '실' 승격으로 큰 변화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돌았지만, 결과적으로 인사 폭은 크지 않았다. 이재용 회장은 조직을 크게 흔들기보다는 기존 흐름을 유지하는 쪽에 무게를 둔 모습이다. 전반적으로는 안정에 방점이 찍힌 인사였지만, 기술 조직을 중심으로 한 일부 변화에서는 앞으로의 방향이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번 정기 사장단 인사는 승진 1명, 위촉업무 변경 3명 등 총 4명 규모다. 숫자만 놓고 보면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단출하다. 특히 상징성이 큰 사업부장 교체는 없었다. 반도체를 이끄는 전영현 부회장은 DS부문장과 메모리사업부장직을 그대로 맡았고, 노태문 사장은 직무대행 딱지를 떼고 DX부문장·대표이사로 자리만 정식화됐을 뿐 추가 승진은 없었다. 시장에서 거론돼 온 '부회장 승진'까지는 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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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인 산업부 기자 |
이런 선택에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반도체는 3년 만에 회복 흐름을 타고 있고, 스마트폰과 가전 등 세트 사업도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고 있다. 경기와 수요가 출렁이는 상황에서 '교체'보다 '연속성'이 더 유효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기수가 바뀌는 인사보다 일을 해온 체제를 계속 믿고 맡기는 쪽에 무게가 실린 셈이다. 삼성 내부 한 관계자의 표현을 빌리면 "방향을 확 바꾸기보다는 현재 흐름을 지켜보는 선택"라는 말에 더 가깝다.
하지만 이번 인사를 단순히 '안정 중심'으로만 단정지을 수는 없다. 기술 조직은 분명 달라졌다. DX부문 최고기술책임자(CTO)에는 소프트웨어 플랫폼 출신인 윤장현 사장이 배치됐고, 반도체 미래기술을 맡는 SAIT 원장에는 나노·양자 분야 석학인 박홍근 사장이 임명됐다. 사업 조직은 그대로 두되, 미래 기술을 담당하는 핵심 인력은 새롭게 구성한 셈이다. 삼성전자가 강조하는 'AI 기반 사업 전환' 구상의 중심축을 다듬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전면 쇄신보다 기조를 유지한 인사"라고 평가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기술 조직만큼은 선제적으로 재정비했다"는 해석도 나온다. 두 견해 모두 일리가 있다. 본체는 그대로 두되, 그 위에서 새로운 방향을 잡는 축은 새로 정비했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는 안정과 변화가 동시에 드러난 결정으로 볼 수 있다.
또 하나 주목되는 변화는 사업지원실의 성격이다. 정현호 부회장 체제에서 TF 형태로 운영되던 조직이 올해 정식 '실'로 승격되면서 상시적 역할을 갖게 됐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삼성에 다시 컨트롤타워가 생겼다"는 해석을 내놓지만, 과거 미래전략실과 동일하게 보기는 어렵다. 대관·정책 기능을 맡지 못하고 전자 계열 중심으로만 움직이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부에서 느끼는 온도는 조금 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박학규 사장이 상시 조직의 수장을 맡게 되면서 이전보다 현장을 더 촘촘하게 들여다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몇몇 임직원들은 "보다 더 엄격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조직 전반이 이전보다 긴장을 갖고 움직이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종합하면 이번 인사는 겉으로는 조용했지만, 방향성은 분명했다. 사업부장 등 현장 라인은 그대로 유지해 흐름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동시에 기술·연구 조직과 경영지원 축은 새 구성을 통해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특히 사업지원실을 통해 조직을 보다 타이트하게 운영하려는 기조가 자리 잡았고, 노태문·전영현 투톱 체제에서는 각각 세트와 반도체 사업의 속도를 더 끌어올리려는 의지가 읽힌다.
급격한 전환보다 필요한 지점만 조정하는 방식은 삼성전자가 당장 큰 구호보다 사업의 기본 흐름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는 데 무게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큰 변화가 있다면 이는 이번 인사의 연장선 위에서 서서히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kji01@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