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시대의 소음을 통과한 조용하고 투명한 울림
40년 시의 길을 걸어온 도종환이 건네는 '고요의 형식'
[서울=뉴스핌] 김용락 기자="고운 꽃이/누추한 곳에서 올라온다//척박하다고 투덜대는 꽃은 없다//버려진 곳을/아름다운 곳으로 바꾸며/환하게 웃는/ 여리고 가난한 꽃"('들꽃' 부분)
"꿈꿀 수 있어서 아름다웠으므로/세상을 사랑한 것만으로 내 생은 충분했으므로/해금 연주가 끝날 때까지/잠시 있어주면 고맙겠다/인연 깊은 이들을 고맙게 기억하며/나도 한 마리 귀뚜라미처럼 돌아가리라"('귀뜨라미를 조상함' 부분)
한국 서정시의 거장으로 불리는 도종환 시인의 신작시집 '고요로 가야겠다'(열림원)가 출간됐다. 이 시집에는 "고요로 가야겠다"는 표제가 나오는 시 '고요' 를 비롯해 '슬픔을 문지르다' '겨울 벚나무' '깊은 가을'을 비롯해 총 85편의 아름다운 서정시가 가득해 볼륨이 이전의 여느 시집과 다르게 꽤 두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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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종환 신작시집 '고요로 가야겠다'가 출간됐다.[사진=열림원] 2025.11.11 yrk525@newspim.com |
이 시집은 기존의 4부 구성 대신 여덟 개의 '사유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월', '고요', '달팽이', '슬픔을 문지르다', '사랑해요', '당신의 동쪽', '손', '끝'으로 이어지는 여덟 개의 화두는 각각 하나의 명상적 공간을 연다. 시인은 각 부를 전시관처럼 배치해, 독자가 방과 방 사이를 거닐며 자신에게 가장 깊이 울리는 문장을 발견하도록 한다.
이것은 오랜 묵언 끝에 도달한 시인 자신의 새롭고 풍성한 내면의 결실로 보인다. 도종환의 이번 시집은 시인 자신이 삶의 고통과 상처를 통과해 얻은 언어들로 한층 더 부드럽고 다정해졌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지난 1980년대 이래 교육운동과 민주화운동, 국회의원과 문체부 장관이라는 공직을 통과하면서 경험하고 겪은 세상의 소란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소음 속에서 자신만의 명정과 고요를 찾아가고 있다.
곽재구 시인(순천대)은 추천사에서 "도종환의 시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고 썼다. 그는 "난해한 정치판에 들어가 판을 향기롭게 만들었던 시인이 이제 그 향기를 시로 돌려주고 있다"며, 시대와 인간을 함께 품어온 그의 귀환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나희덕 시인(서울과학기술대) 역시 "이 시집의 화자들은 폭풍의 시절을 지나 고요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며, 그의 시가 "소음과 고요, 분노와 사랑, 격정과 지혜 사이에서 인간의 진실을 지켜온 언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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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작시집 '고요로 가야겠다'를 출간한 도종환 시인[사진=저자] 2025.11.11 yrk525@newspim.com |
한편 도종환 시인은 195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1984년 '분단시대'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등 여러 권의 시집과 산문집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윤동주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백석문학상, 공초문학상, 신석정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국회의원 3선과 문재인정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한 문단의 중견 시인이다.
yrk525@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