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기사 최신뉴스 GAM
KYD 디데이
정치 국회·정당

속보

더보기

[폴리티션스토리](상) 삼성전자 평사원에서 사장까지…고동진 의원 성장 원동력은

기사입력 :

최종수정 :

※ 본문 글자 크기 조정

  • 더 작게
  • 작게
  • 보통
  • 크게
  • 더 크게

※ 번역할 언어 선택

AI 핵심 요약

beta
분석 중...
  •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3일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삼성전자 평사원에서 대표이사까지 오른 성장 원동력을 소개했다.
  • 고 의원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뛰어넘으려 노력했으며 어느 누구보다 일을 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 일과 삶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일이 곧 인생 자체라며 일을 통해 인간관계를 만들고 삶을 살아왔다고 강조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국민의힘 고동진, 삼전 CEO 되기까지 성공 전략 공개
"입사 때부터 사장이 목표…일은 곧 삶이었다"
"매일 아침 상사에게 '50초 브리핑'…365일 일 생각뿐"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3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삼성전자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성장 원동력을 소개했다.

고 의원은 "일은 곧 삶이었고, 제 삶은 곧 일이었다"며 "'어느 누구보다도 일은 고동진이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늘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했다"며 "요즘 '워라밸'이라고들 하지만 제 경험을 돌아보면 일과 삶은 분리가 안 된다. 회사에서 365일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일했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인생 자체가 자기자신과 세상의 상호작용이다. 그 상호작용의 매개체가 바로 일"이라며 "일 없이 인간은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을 잘하기 위해 일로서 모든 것을 승부했고, 일을 통해 인간관계를 만들었고, 일 속에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저에게 일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고 돌아봤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TV]

1961년생인 고동진 의원은 서울 경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영국 서섹스대학교 대학원에서 기술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 의원은 1984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모바일경험(MX) 사업부의 전신인 IM부문장을 맡으며 갤럭시S8과 갤럭시노트8의 흥행을 이끌었고, 2018년 삼성전자 대표에 올랐다.

지난해 4·10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강남병 지역구에 출마해 2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당 내에선 AI(인공지능)·반도체 특별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다음은 고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주요 일문일답.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스토리 시작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뉴스핌 신정인 기자입니다. 오늘은 삼성전자 대표이사 출신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고동진 의원, 이하 고 의원)
안녕하세요. 고동진입니다.

-(신 기자)
의원님 근황부터 좀 여쭐게요. 최근에 한강 버스 시승식 참여하셨는데 직접 타보니까 어떠셨어요?

▲(고 의원)
서울에서 살면서 사실 한강에서 배를 타본 건 처음이에요.
강변 따라서 국회 출근했을 때 바라본 풍경하고 배를 타고서 이렇게 양쪽 강변을 바라보는 게 '아 이게 경치가 이렇게 틀리구나'. 제가 숫자가 정확히 기억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9월 15일인가 17일에 공식적으로 운행이 되고 지금은 시범 운행 그중에서도 이제 오세훈 서울시장님하고 같이 서울에 있는 국회의원들 몇 분 당협위원장들과 시승을 해 본 경우인데 이야기 들어보니까 여기에 대해서 이게 전시행정 아니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또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세훈 시장님 이야기 들어보니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래서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옛날에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 만들 때 반대하는 사람 무지하게 많았다. 지금 현재 좀 미흡한 부분은 많이 좀 보완을 해서 특히 접근성 문제 그렇게 하면은 서울 시민들이 많이 호응도가 있지 않겠나. 지금 제가 볼 때 이거를 비난하거나 그럴 일보다는 부족한 부분, 미흡한 부분을 보완을 해서 교통 수단으로 또는 나중에 물류 수단으로도 이용이 될 수가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이제 뭐 저 여의도 뚝섬 잠실 옥수 압구정 마곡 뭐 이렇게 쭉 7개 정도가 이어진다고 그러는데 어쨌든 시작하신 사업이니만큼 잘 되기를 바라봅니다.

-(신 기자)
그러면 의원님도 앞으로 종종 타실 계획 있으세요?

▲(고 의원)
내가 만약에 탄다고 그러면 이제 옥수에서 타 가지고 여의도를 와야 되는데 굉장히 시간적으로는 빠를 것 같은데 집에서 차 타고 그냥 곧바로 국회 오는 게 빠르지 않나

-(신 기자)
의원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한번 이야기 나눠볼게요.
1961년 서울 서대문구에서 태어나셨고 경성고, 성균관대 산업공학과 졸업하셨습니다.
그리고 회사 다니시면서도 영국 서섹스 대학교 대학원에서 기술정책학 석사 하셨는데 혹시 어린 시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고 의원)
제가 이제 6남매 막내로 자랐는데 어렸을 때 뭐 예를 들어서 흔히 의사가 되고 싶다, 판사가 되고 싶다 이런 직업적 꿈은 별로 기억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특히 그 어머님한테 막내야 네 꿈은 용꿈이었다, 태몽이. 그다음에 뭐 열 자식 중에 하나만 잘 되면 된다 라고 하는 거를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저한테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2018년에 어머니가 91세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님 그 묘지에 묻고 난 다음에 그 형님들 누님들하고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그 얘기가 나왔어요.
열 자식 중에 하나만 잘 되면 된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얘기를 들은 형, 누님은 없었던 거예요.

-(신 기자)
그럼 의원님만

▲(고 의원)
저한테만 어머님이 그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가 우리 어머님한테 해 주셨던 말씀이라고 그랬는데 그때 깜짝 놀랐어요.
저한테만 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뭔가 '아 나는 잘 돼야 되는 사람이고 성공해야 되고 우리 집안을 일으켜야 되고' 뭐 그런 어떤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나는 나이가 먹으면 이런 사람이 돼야 돼'라고 생각을 했던 건 중학교 2학년 때인가 학교 교정에 이렇게 앉아서 벤치에서 혼자 '내가 나이 40이 되면 점심에 예를 들어서 불고기 백반을 먹고 싶어 그러면 언제든지 불고기 백 번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곧 우리 집안을 일으키는 하나의 뭐라고 그러나 기초라고 그러나 좀 그런 생각을 어렸을 때 가지지 않았나

-(신 기자)
그러면 좀 의원님께서 돌아보시기에 좀 학창시절에 어떤 아이였다고 생각하시는지

▲(고 의원)
어렸을 때 부모님 영향을 좀 많이 받지 않았나. 그러니까 금전적으로는 우리 집안이 굉장히 부족하고 어려움이 많았는데 아버님 어머님이 어떤 분이셨냐 하면 한 번도 싸우지를 않으셨어.
집에 큰 소리 나는 걸 난 들어본 적이 없어. 어렸을 때부터 아 이게 우리가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좀 풍요롭게 살지 않았나.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그때 이 여의도를, 친구가 자기 집에 가자고 그래서 그때 마포에서 버스를 타고 여의도를 왔어요.
근데 그때 이 여의도의 아파트가 제 기억에 아마 시범 아파트였어요. 5층짜리 아파트를 그때 처음 들어가 봤어요.

-(신 기자)
어떠셨어요?

▲(고 의원)
깜짝 놀랐어요. 화장실이 어쨌든 집 안에 있었고 수세식 화장실이었고. 놀라긴 했지만 부러워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 중학교 2학년 때 제가 '아 이 다음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꼭 뜨거운 물 나오는 집에 내가 모셔야 되겠다'. 그래서 그거를 제가 나중에 했어요.

-(신 기자)
그때 되게 뿌듯하셨겠어요.
대학 졸업하신 이후에 바로 삼성그룹에 입사하셨습니다.
삼성전자에서 38년 그리고 고문으로 2년 또 재직하시면서 총 40여 년간 근무하셨는데 이렇게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50대 중반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따로 있으실까요?

▲(고 의원)
삼성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다니면서 뭐 사장도 하고 대표이사를 어떻게 할 수 있었냐라고 하는 질문을 사실은 뭐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진짜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어떻게 보면 내가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도 아니고 사실은 그때 삼성 들어가는 것도 집안이 그때 좀 많이 힘들고 그래서 돈을 벌어야 됐기 때문에 회사를 들어가기로 결심을 한 거고 직장생활 자체가 일단 생계 수단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제 자신이 회사의 다른 동기들, 서울대 나온 애들, 그다음에 뭐 해외 유학 갔다 온 친구들 이런 사람들 보면서 '내가 늘 부족하다' 이런 생각을 아예 전제로 하고 회사 들어와서 진짜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뭐 예를 들어서 '대학은 그래 좋은 대학 안 나왔어. 하지만 일은 내가 어느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때 일체의 약속을 안 잡고 오로지 일을 하지 않았나. 마지막 퇴근 버스가 10시 15분 근데 항상 그거 타고 퇴근하고 그리고 집에 오면 또 일어 공부하고.

그래서 입사해서 한 2년 차 겨울에 제가 부산에 어디 여관에 가서 계획을 이렇게 세웠는데 뭐 30살에 과장이 되고 40살에 임원이 되고 50대에 부사장이 되고 그 다음에 사장이 되겠다라고 하는 걸 아예 계획을 세웠어요. 신입사원 2년 차 때 그런 결심을 세우고 나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부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고 그런 계획도 세웠고.

아까 질문하신 그 원동력이 뭐냐. 제가 저의 부족함을 늘 인정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노력을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일은 고동진이가 제일 잘한다' 이런 소리를 듣기 위해서 진짜 열심히 노력을 했고 20~30대 진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

-(신 기자)
그 당시에 이제 회사에서 아침마다 상사에게 50초 브리핑을 매번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게 되셨어요?

▲(고 의원)
아까 이야기한 '난 삼성에서 사장이 되겠다' 이렇게 하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 매일 퇴근하기 전에 내일 할 일을 적어보고 퇴근하기 전에 그날 한 일을 평가를 했어요.
아무리 내가 사원이라도 내가 100이라고 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목표는 한 50에서 60 정도만 내가 목표를 잡아야 된다.
이런 것도 배우고 스스로 이 업무를 조정을 하고 내 머릿속에 이런 일 해야지 저런 일 해야지만 생각을 했다가 이 일을 하는 함에 있어서 어느 다른 팀하고도 상의를 하고 협의하고 이런 것까지를 체득을 한 거죠. '아 이게 안 되는구나, 나 혼자 계획을 세워서는'. 이제 그런 것도 배우게 되고.

그때만 해도 대리님이나 과장님은 오시면 1시간을 신문을 봤어. 나이 차이도 좀 많았고 그런데 그때 저는 미혼이었지만 결혼을 한 분들이 회사에 와서 자기 집안에서의 그 생활 모드가 회사 모드로 빨리빨리 안 바뀌시는 거를 내가 느꼈어요.
그래서 아 이건 안 되겠다. 그래서 아침에 밝은 목소리로 상사가 출근을 하면 인사를 드리고 "대리님 요거 요거를 우리 오늘 팀에서 해야 되는데 이건 제가 할 테니까 이거는 좀 챙겨주세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리 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상사한테 내가 그때 주무 사원이어 가지고 보고를 드림과 동시에 그분의 그 생각 속에 회사 일을 이렇게 좀 밀어넣었다고 그래야 하나.

세 달 정도는 사실은 별로 이렇게 관심도 안 보이고 그냥 뭐 듣는 둥 마는 둥 이러시더라고. 근데 어느 날 출근해 가지고 제가 그걸(50초 브리핑) 못 했어요. 과장님이 나를 부르시더라고 '오늘은 뭐 아침에 브리핑 없어요?' 그때 아 이분이 듣고 있었구나. 그동안 안 들은 게 아니라 듣고 있었구나 그러고서 "아 요거 요거 오늘 할 일인데 이것만 챙겨 주시면 됩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어 알았어요. 그건 내가 챙길게요" 그러고 자리로 돌아가시더라고요.

나중에 제가 부사장이 돼서도 그런 식으로 일을 했었어요. 전무 부사장 때 그 때 우리 개발실장님이 나중에 사업부장 되고 사장 되신 분인데 아침에 가서 인사드리고 "요거 요거가 좀 큰 일인데 이거는 좀 챙겨주십시오. 이거는 제가 챙기겠습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이나 어느 누구도 이 자기 일뿐만이 아니라 그 팀 또는 파트 그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을 한번 적어보고 선배나 상사한테 이런 일이 오늘 벌어져야 된다. 그러니까 '이거는 좀 마무리해 달라. 이거는 내가 하겠다'. 이런 거를 간단하게 이렇게 브리핑을 하면 어차피 또 상사나 선배의 도움을 받아야 될 일이 또 꽤 있기 때문에 그런 어떤 '투두 리스트(To do list)' 가지고 50초 브리핑하는 거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신 기자)
의원님 책 제목이기도 한데요. 의원님께서 생각하시는 '일'이란 무엇인지

▲(고 의원)
저에게 일은 사실 나이에 따라서 조금 틀렸던 것 같아요.
20대 때 일은 사실은 생계 수단이었고. 근데 일을 하면서 이제 일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그다음에 '아 내가 일에 관해서 이 분야는 가장 자신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변화하고 혁신해 나갔던, 특히 3040대 때 이런 기억이 있는데.

일이라고 하는 거는 곧 삶이었고 제 삶은 곧 일 아니었나. 젊은 사람들은 요새 워라벨이라고 그래 가지고 일과 삶이 분리가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일하고 삶은 분리가 안 돼요. 회사에서는 365일 나를 쳐다보고 있다라고 생각을 하면 돼.

아니 365일 어떻게 나를 쳐다봅니까? 의문이 생기잖아요. 월요일날 아침에 8시 반에 회의를 해보면 자기 일에 대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해야 될 일을 주말에도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온 사람과 진짜 이 생각이 단절돼 가지고 온 사람과 딱 구분이 돼요.

그러니까 일이라고 하는 거는 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가 않는 거예요. 일을 누구보다도 많이 하고 빨리 처리하고. 저는 그 자체가 자기 개발이었고 내 삶이었고 그게 나중에 삼성전자에서 임원이 되고 전무 부사장 승진하고 또 사장 대표이사가 되고. 그 원동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고동진이 있었을까 저는 생각이 별로 안 돼요.

그러니까 일과 삶은 분리가 안 된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자기하고 세상하고의 상호작용이에요. 인간은 자기가 원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거든요. 삶은 주어지는 거죠. 자기가 세상하고 상호작용이라고 하는 그 매개체가 바로 일이거든요. 일이 없이 인간은 살 수가 없어요.

내가 추구하는 일을 제대로 하려고 그러면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많은 사람들하고 소통이 수반이 돼야 해요. 젊은 사람들이 "아 저는 이 일을 하는 거는 어렵지 않은데 사람들 인간관계가 어려워요. 소통이 어려워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은 잘못된 거죠. 일을 하려고 그러면 인간관계하고 소통이 병행이 돼야 되는 거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일로서 모든 것을 승부를 했고, 일을 통해서 인간관계를 만들었고, 일 속에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저에게 일이라고 하는 거는 그 인생 자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allpass@newspim.com

[뉴스핌 베스트 기사]

사진
김영범, 이제 판잔러 잡으러 간다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한국 수영에 또 하나의 '수영 대박'이 아닐까. 불과 1년 전 세계선수권 탈의실에서 중국 수영의 상징 판잔러에게 키링을 받고 기뻐하던 소년이 이제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단거리 샛별' 김영범(20·강원특별자치도청)의 성장세가 눈부시다. 김영범은 21일 일본 도쿄 아쿠아틱스센터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수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에서 21초66의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었다. 이로써 전날 자유형 100m에서 판잔러와 접전 끝에 0.04초 차 아쉬운 은메달에 머물렀던 한을 풀고 생애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이번 금메달은 이번 대회 대한민국 경영 대표팀이 획득한 첫 금메달이기도 하다. [도쿄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영범이 21일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을 마친 후 기뻐하고 있다. 2026.9.21 psoq1337@newspim.com 예선부터 기세가 매섭틀렸다. 김영범은 이날 오전 열린 예선에서 21초71을 기록해 3년 전 항저우 대회에서 지유찬(대구광역시청)이 세웠던 종전 대회 기록(21초72)을 0.01초 앞당겼다. 이어 불과 몇 시간 뒤 펼쳐진 결선에서 자신의 기록을 다시 0.05초 줄이며 정점에 올랐다. 2006년생으로 한국 남자 계영 대표팀의 막내인 김영범은 전날 자유형 100m 결선에서 반환점을 1위(22초81)로 돌며 세계 정상급 스타 판잔러를 위협했다. 비록 막판 추격을 허용해 47초65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으나 세계적인 강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하루 만에 아쉬움을 털어낸 그는 50m 결선에서 누구에게도 역전을 허용하지 않으며 완벽한 승리를 거뒀다. [도쿄 로이터=뉴스핌] 박상욱 기자=김영범이 21일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경영 남자 자유형 50m 결선을 마친 후 기뻐하고 있다. 2026.9.21 psoq1337@newspim.com 김영범의 가파른 성장은 압도적인 신체 조건과 대담한 승부욕에서 비롯된다. 195㎝, 체중 90㎏에 발 크기 300㎜, 윙스팬 216㎝에 달하는 축복받은 피지컬은 폭발적인 스피드가 요구되는 단거리 종목에서 강력한 무기다. 큰 무대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자신감을 장착한 그는 '단거리 박태환'의 탄생을 알리며 한국 수영의 새로운 전성기를 예고하고 있다. psoq1337@newspim.com 2026-09-21 17:49
사진
앤서니 홉킨스 음반 영국차트 1위 [서울=뉴스핌] 김용석 선임기자 = "제 삶 전체가 하나의 꿈입니다." 영화 '양들의 침묵'의 한니발 렉터로 널리 알려진 배우 앤서니 홉킨스(88)가 작곡가로 낸 첫 데카 클래식스 음반 'Life Is A Dream'으로 발매 1주 만에 영국 오피셜 클래식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라이프 이즈 어 드림' 녹음 현장의 앤서니 홉킨스. [사진= 유니버설뮤직] 홉킨스는 "평생의 영광"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명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비르투오소 솔리스트인 첼리스트 그레고리오 니에토 및 클래식 피아니스트 세르히오 티엠포와 협업할 수 있었던 것은 특권이었다"고 밝혔다. 음반은 지난 4월 13일과 14일 런던 알렉산드라 팰리스에서 녹음됐다. 그래미상 수상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끌었고, 바흐 합창단과 윈체스터 대성당 소년 합창단도 참여했다. 홉킨스의 자작곡 12곡이 실렸으며 연주 시간은 1시간 7분이다. 앨범 제목에는 삶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담겼다. 홉킨스는 "이 앨범의 제목은 Life Is A Dream으로, 삶에 바치는 러브레터다. 저는 이것을 하나의 긴 작별로 본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와 작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록곡은 웨일스와 가족의 기억에서 나왔다. '마르감'은 그가 태어난 포트탈봇의 지명에서 따왔고, '나의 조국'은 제빵사였던 아버지와 웨일스에 대한 헌사다. '스텔라 아리아'는 아내를, '타라'는 조카를 위한 곡이다. 홉킨스는 어린 시절과 부모, 웨일스에 대한 기억이 작품에 영감을 줬다며 "놀라울 만큼 선명하다"고 말했다. 2012년 앨범 '컴포저'에 실렸던 '마르감', '1947 모음곡', '앤드 더 왈츠 고즈 온'도 이번에 새로 녹음돼 다시 수록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홉킨스는 "모든 것이 예상치 못했지만 하나로 모였다"고 했다. 바턴은 2006년 영화 '슬립스트림' 음악 작업 이후 홉킨스와 협업해 왔고, 이번 음반에서도 여러 곡의 관현악 편곡을 함께 맡았다. 홉킨스는 두다멜에 대해 "우아하고 정밀한 지휘봉으로 각각의 음에 깊고 지워지지 않는 의미를 부여했다"라며 감사를 전했다. 음반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금관 중심의 팡파르에서 우아한 왈츠까지 폭넓다고 평하며 홉킨스의 화성 감각을 높이 샀다. 로라 몽크스 데카 사장은 차트 1위 소식에 "작곡가로서의 재능과 클래식 음악에 대한 헌신을 인정받은 일"이라며 축하했다. 홉킨스는 베네수엘라 국민 지원을 위해 CD와 바이닐 판매액의 일부를 기부하기로 했다. 창작 과정에 대해 홉킨스는 "제 마음의 구조는 이미지로 생각하도록 되어 있다"라며 "이것이 제 영감의 근원이다"고 말했다. 다음 계획으로는 "요즘 즉흥적으로 새 곡들을 만들고 있고, 그 곡들을 이제 오케스트라 편성으로 발전시켜 보고 싶다. 영화음악을 작곡해 보고 싶다"고 했다. 앤서니 홉킨스의 앨범 'Life is a dream(라이프 이즈 어 드림)' 커버. [사진=유니버설 뮤직] 홉킨스는 1937년 12월 31일 웨일스 포트탈봇 마르감에서 제빵사 리처드 아서 홉킨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왕립웨일스음악연극대학을 1957년 졸업하고 왕립연극학교에서 연기를 배웠으며, 1965년 로런스 올리비에의 초청으로 영국 국립극단에 합류했다. 1987년 대영제국 지휘관 훈장(CBE)을 받았고 1993년 기사 작위를 받았다. 1992년 제6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양들의 침묵'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2021년 제93회 시상식에서는 '더 파더'로 같은 상을 다시 받아 83세의 나이로 이 부문 역대 최고령 수상자가 됐다. 영국 아카데미(BAFTA) 4회, 에미상 2회 수상 기록도 갖고 있다. 작곡가로서의 이력도 길다. 1964년 쓴 왈츠 '앤드 더 왈츠 고즈 온'은 2011년 네덜란드 바이올리니스트 앙드레 류가 앨범으로 내놨고, 이 앨범은 2012년 클래식 브릿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았다. 홉킨스는 2008년 바턴과 공동 작곡한 '마스크 오브 타임'과 '스키조이드 살사'가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에서 초연됐다. 2012년 1월에는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 마이클 실 지휘로 클래식FM과 함께 첫 작곡 음반 '컴포저'를 냈다. fineview@newspim.com 2026-09-22 00:01
기사 번역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종목 추적기

S&P 500 기업 중 기사 내용이 영향을 줄 종목 추적

결과물 출력을 준비하고 있어요.

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안다쇼핑
Top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