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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상) 삼성전자 평사원에서 사장까지…고동진 의원 성장 원동력은

기사입력 : 2025년09월03일 17:00

최종수정 : 2025년09월03일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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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고동진, 삼전 CEO 되기까지 성공 전략 공개
"입사 때부터 사장이 목표…일은 곧 삶이었다"
"매일 아침 상사에게 '50초 브리핑'…365일 일 생각뿐"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3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삼성전자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성장 원동력을 소개했다.

고 의원은 "일은 곧 삶이었고, 제 삶은 곧 일이었다"며 "'어느 누구보다도 일은 고동진이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늘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했다"며 "요즘 '워라밸'이라고들 하지만 제 경험을 돌아보면 일과 삶은 분리가 안 된다. 회사에서 365일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일했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인생 자체가 자기자신과 세상의 상호작용이다. 그 상호작용의 매개체가 바로 일"이라며 "일 없이 인간은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을 잘하기 위해 일로서 모든 것을 승부했고, 일을 통해 인간관계를 만들었고, 일 속에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저에게 일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고 돌아봤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TV]

1961년생인 고동진 의원은 서울 경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영국 서섹스대학교 대학원에서 기술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 의원은 1984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모바일경험(MX) 사업부의 전신인 IM부문장을 맡으며 갤럭시S8과 갤럭시노트8의 흥행을 이끌었고, 2018년 삼성전자 대표에 올랐다.

지난해 4·10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강남병 지역구에 출마해 2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당 내에선 AI(인공지능)·반도체 특별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다음은 고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주요 일문일답.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스토리 시작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뉴스핌 신정인 기자입니다. 오늘은 삼성전자 대표이사 출신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고동진 의원, 이하 고 의원)
안녕하세요. 고동진입니다.

-(신 기자)
의원님 근황부터 좀 여쭐게요. 최근에 한강 버스 시승식 참여하셨는데 직접 타보니까 어떠셨어요?

▲(고 의원)
서울에서 살면서 사실 한강에서 배를 타본 건 처음이에요.
강변 따라서 국회 출근했을 때 바라본 풍경하고 배를 타고서 이렇게 양쪽 강변을 바라보는 게 '아 이게 경치가 이렇게 틀리구나'. 제가 숫자가 정확히 기억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9월 15일인가 17일에 공식적으로 운행이 되고 지금은 시범 운행 그중에서도 이제 오세훈 서울시장님하고 같이 서울에 있는 국회의원들 몇 분 당협위원장들과 시승을 해 본 경우인데 이야기 들어보니까 여기에 대해서 이게 전시행정 아니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또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세훈 시장님 이야기 들어보니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래서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옛날에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 만들 때 반대하는 사람 무지하게 많았다. 지금 현재 좀 미흡한 부분은 많이 좀 보완을 해서 특히 접근성 문제 그렇게 하면은 서울 시민들이 많이 호응도가 있지 않겠나. 지금 제가 볼 때 이거를 비난하거나 그럴 일보다는 부족한 부분, 미흡한 부분을 보완을 해서 교통 수단으로 또는 나중에 물류 수단으로도 이용이 될 수가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이제 뭐 저 여의도 뚝섬 잠실 옥수 압구정 마곡 뭐 이렇게 쭉 7개 정도가 이어진다고 그러는데 어쨌든 시작하신 사업이니만큼 잘 되기를 바라봅니다.

-(신 기자)
그러면 의원님도 앞으로 종종 타실 계획 있으세요?

▲(고 의원)
내가 만약에 탄다고 그러면 이제 옥수에서 타 가지고 여의도를 와야 되는데 굉장히 시간적으로는 빠를 것 같은데 집에서 차 타고 그냥 곧바로 국회 오는 게 빠르지 않나

-(신 기자)
의원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한번 이야기 나눠볼게요.
1961년 서울 서대문구에서 태어나셨고 경성고, 성균관대 산업공학과 졸업하셨습니다.
그리고 회사 다니시면서도 영국 서섹스 대학교 대학원에서 기술정책학 석사 하셨는데 혹시 어린 시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고 의원)
제가 이제 6남매 막내로 자랐는데 어렸을 때 뭐 예를 들어서 흔히 의사가 되고 싶다, 판사가 되고 싶다 이런 직업적 꿈은 별로 기억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특히 그 어머님한테 막내야 네 꿈은 용꿈이었다, 태몽이. 그다음에 뭐 열 자식 중에 하나만 잘 되면 된다 라고 하는 거를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저한테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2018년에 어머니가 91세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님 그 묘지에 묻고 난 다음에 그 형님들 누님들하고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그 얘기가 나왔어요.
열 자식 중에 하나만 잘 되면 된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얘기를 들은 형, 누님은 없었던 거예요.

-(신 기자)
그럼 의원님만

▲(고 의원)
저한테만 어머님이 그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가 우리 어머님한테 해 주셨던 말씀이라고 그랬는데 그때 깜짝 놀랐어요.
저한테만 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뭔가 '아 나는 잘 돼야 되는 사람이고 성공해야 되고 우리 집안을 일으켜야 되고' 뭐 그런 어떤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나는 나이가 먹으면 이런 사람이 돼야 돼'라고 생각을 했던 건 중학교 2학년 때인가 학교 교정에 이렇게 앉아서 벤치에서 혼자 '내가 나이 40이 되면 점심에 예를 들어서 불고기 백반을 먹고 싶어 그러면 언제든지 불고기 백 번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곧 우리 집안을 일으키는 하나의 뭐라고 그러나 기초라고 그러나 좀 그런 생각을 어렸을 때 가지지 않았나

-(신 기자)
그러면 좀 의원님께서 돌아보시기에 좀 학창시절에 어떤 아이였다고 생각하시는지

▲(고 의원)
어렸을 때 부모님 영향을 좀 많이 받지 않았나. 그러니까 금전적으로는 우리 집안이 굉장히 부족하고 어려움이 많았는데 아버님 어머님이 어떤 분이셨냐 하면 한 번도 싸우지를 않으셨어.
집에 큰 소리 나는 걸 난 들어본 적이 없어. 어렸을 때부터 아 이게 우리가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좀 풍요롭게 살지 않았나.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그때 이 여의도를, 친구가 자기 집에 가자고 그래서 그때 마포에서 버스를 타고 여의도를 왔어요.
근데 그때 이 여의도의 아파트가 제 기억에 아마 시범 아파트였어요. 5층짜리 아파트를 그때 처음 들어가 봤어요.

-(신 기자)
어떠셨어요?

▲(고 의원)
깜짝 놀랐어요. 화장실이 어쨌든 집 안에 있었고 수세식 화장실이었고. 놀라긴 했지만 부러워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 중학교 2학년 때 제가 '아 이 다음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꼭 뜨거운 물 나오는 집에 내가 모셔야 되겠다'. 그래서 그거를 제가 나중에 했어요.

-(신 기자)
그때 되게 뿌듯하셨겠어요.
대학 졸업하신 이후에 바로 삼성그룹에 입사하셨습니다.
삼성전자에서 38년 그리고 고문으로 2년 또 재직하시면서 총 40여 년간 근무하셨는데 이렇게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50대 중반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따로 있으실까요?

▲(고 의원)
삼성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다니면서 뭐 사장도 하고 대표이사를 어떻게 할 수 있었냐라고 하는 질문을 사실은 뭐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진짜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어떻게 보면 내가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도 아니고 사실은 그때 삼성 들어가는 것도 집안이 그때 좀 많이 힘들고 그래서 돈을 벌어야 됐기 때문에 회사를 들어가기로 결심을 한 거고 직장생활 자체가 일단 생계 수단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제 자신이 회사의 다른 동기들, 서울대 나온 애들, 그다음에 뭐 해외 유학 갔다 온 친구들 이런 사람들 보면서 '내가 늘 부족하다' 이런 생각을 아예 전제로 하고 회사 들어와서 진짜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뭐 예를 들어서 '대학은 그래 좋은 대학 안 나왔어. 하지만 일은 내가 어느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때 일체의 약속을 안 잡고 오로지 일을 하지 않았나. 마지막 퇴근 버스가 10시 15분 근데 항상 그거 타고 퇴근하고 그리고 집에 오면 또 일어 공부하고.

그래서 입사해서 한 2년 차 겨울에 제가 부산에 어디 여관에 가서 계획을 이렇게 세웠는데 뭐 30살에 과장이 되고 40살에 임원이 되고 50의 부사장이 되고 그 다음에 사장이 되겠다라고 하는 걸 아예 계획을 세웠어요. 신입사원 2년 차 때 그런 결심을 세우고 나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부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고 그런 계획도 세웠고.

아까 질문하신 그 원동력이 뭐냐. 제가 저의 부족함을 늘 인정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노력을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일은 고동진이가 제일 잘한다' 이런 소리를 듣기 위해서 진짜 열심히 노력을 했고 20~30대 진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

-(신 기자)
그 당시에 이제 회사에서 아침마다 상사에게 50초 브리핑을 매번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게 되셨어요?

▲(고 의원)
아까 이야기한 '난 삼성에서 사장이 되겠다' 이렇게 하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 매일 퇴근하기 전에 내일 할 일을 적어보고 퇴근하기 전에 그날 한 일을 평가를 했어요.
아무리 내가 사원이라도 내가 100이라고 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목표는 한 50에서 60 정도만 내가 목표를 잡아야 된다.
이런 것도 배우고 스스로 이 업무를 조정을 하고 내 머릿속에 이런 일 해야지 저런 일 해야지만 생각을 했다가 이 일을 하는 함에 있어서 어느 다른 팀하고도 상의를 하고 협의하고 이런 것까지를 체득을 한 거죠. '아 이게 안 되는구나, 나 혼자 계획을 세워서는'. 이제 그런 것도 배우게 되고.

그때만 해도 대리님이나 과장님은 오시면 1시간을 신문을 봤어. 나이 차이도 좀 많았고 그런데 그때 저는 미혼이었지만 결혼을 한 분들이 회사에 와서 자기 집안에서의 그 생활 모드가 회사 모드로 빨리빨리 안 바뀌시는 거를 내가 느꼈어요.
그래서 아 이건 안 되겠다. 그래서 아침에 밝은 목소리로 상사가 출근을 하면 인사를 드리고 "대리님 요거 요거를 우리 오늘 팀에서 해야 되는데 이건 제가 할 테니까 이거는 좀 챙겨주세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리 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상사한테 내가 그때 주무 사원이어 가지고 보고를 드림과 동시에 그분의 그 생각 속에 회사 일을 이렇게 좀 밀어넣었다고 그래야 하나.

세 달 정도는 사실은 별로 이렇게 관심도 안 보이고 그냥 뭐 듣는 둥 마는 둥 이러시더라고. 근데 어느 날 출근해 가지고 제가 그걸(50초 브리핑) 못 했어요. 과장님이 나를 부르시더라고 '오늘은 뭐 아침에 브리핑 없어요?' 그때 아 이분이 듣고 있었구나. 그동안 안 들은 게 아니라 듣고 있었구나 그러고서 "아 요거 요거 오늘 할 일인데 이것만 챙겨 주시면 됩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어 알았어요. 그건 내가 챙길게요" 그러고 자리로 돌아가시더라고요.

나중에 제가 부사장이 돼서도 그런 식으로 일을 했었어요. 전무 부사장 때 그 때 우리 개발실장님이 나중에 사업부장 되고 사장 되신 분인데 아침에 가서 인사드리고 "요거 요거가 좀 큰 일인데 이거는 좀 챙겨주십시오. 이거는 제가 챙기겠습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이나 어느 누구도 이 자기 일뿐만이 아니라 그 팀 또는 파트 그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을 한번 적어보고 선배나 상사한테 이런 일이 오늘 벌어져야 된다. 그러니까 '이거는 좀 마무리해 달라. 이거는 내가 하겠다'. 이런 거를 간단하게 이렇게 브리핑을 하면 어차피 또 상사나 선배의 도움을 받아야 될 일이 또 꽤 있기 때문에 그런 어떤 '투두 리스트(To do list)' 가지고 50초 브리핑하는 거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신 기자)
의원님 책 제목이기도 한데요. 의원님께서 생각하시는 '일'이란 무엇인지

▲(고 의원)
저에게 일은 사실 나이에 따라서 조금 틀렸던 것 같아요.
20대 때 일은 사실은 생계 수단이었고. 근데 일을 하면서 이제 일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그다음에 '아 내가 일에 관해서 이 분야는 가장 자신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변화하고 혁신해 나갔던, 특히 3040대 때 이런 기억이 있는데.

일이라고 하는 거는 곧 삶이었고 제 삶은 곧 일 아니었나. 젊은 사람들은 요새 워라벨이라고 그래 가지고 일과 삶이 분리가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일하고 삶은 분리가 안 돼요. 회사에서는 365일 나를 쳐다보고 있다라고 생각을 하면 돼.

아니 365일 어떻게 나를 쳐다봅니까? 의문이 생기잖아요. 월요일날 아침에 8시 반에 회의를 해보면 자기 일에 대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해야 될 일을 주말에도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온 사람과 진짜 이 생각이 단절돼 가지고 온 사람과 딱 구분이 돼요.

그러니까 일이라고 하는 거는 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가 않는 거예요. 일을 누구보다도 많이 하고 빨리 처리하고. 저는 그 자체가 자기 개발이었고 내 삶이었고 그게 나중에 삼성전자에서 임원이 되고 전무 부사장 승진하고 또 사장 대표이사가 되고. 그 원동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고동진이 있었을까 저는 생각이 별로 안 돼요.

그러니까 일과 삶은 분리가 안 된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자기하고 세상하고의 상호작용이에요. 인간은 자기가 원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거든요. 삶은 주어지는 거죠. 자기가 세상하고 상호작용이라고 하는 그 매개체가 바로 일이거든요. 일이 없이 인간은 살 수가 없어요.

내가 추구하는 일을 제대로 하려고 그러면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많은 사람들하고 소통이 수반이 돼야 해요. 젊은 사람들이 "아 저는 이 일을 하는 거는 어렵지 않은데 사람들 인간관계가 어려워요. 소통이 어려워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은 잘못된 거죠. 일을 하려고 그러면 인간관계하고 소통이 병행이 돼야 되는 거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일로서 모든 것을 승부를 했고, 일을 통해서 인간관계를 만들었고, 일 속에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저에게 일이라고 하는 거는 그 인생 자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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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이 타령'은 광복군의 희로애락"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신개념 국악 방송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4편이 26일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스팟(K·SPOT)'을 통해 공개됐다.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은 국악이라는 전통 예술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대중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가려는 시도이다. 젊은 국악인들의 시선으로 전통음악을 재해석하고 현대사회 속 국악의 의미를 재조명하며, 소리꾼 최한이와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 팝페라 가수 오윤석과 소리꾼 박나현, 김보성, 가야금 병창 박혜정 등이 출연한다.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의 제목 속 '작금(昨今)'은 역사적 사건과 역사적 인물 이야기를 국악으로 풀어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작금(作金)'은 '금을 캐 부자가 된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4편 '광복군'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맨 왼쪽부터 최한이, 김보성, 변상문. 2025.09.25 alice09@newspim.com 이날 제4편 '광복군'에서는 가야금 병창 박나현과 경기소리꾼 김보성이 함께했다. 4편 '광복군'에서는 의병들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변 이사장은 "의병은 1907년 8월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된 후, 1919년 9월 상해 임시정부가 세워질 때까지 개인 신분으로 일제와 싸운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광복군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꼐 국군이 됐다"고 부연했다. 당시 독립군이자 광복군 출신으로 초대 국방부 장관을 맡은 사람은 이범석이며, 초대 국방부 차관은 최용덕이 맡았다. 제4편 '광복군'의 시대적 배경은 1944년 겨울이다. 변 이사장은 "평안도 출신 김준엽을 비롯한 1500여 명의 청춘은 평양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 제20사단에서 4주간 훈련을 받고, 당시 중국군과 전쟁 중인 일본군에 배치됐다. 그런데 이들 중 40여 명이 일본군영을 탈영하게 된다. 대표적 인물이 전 고려대 총장 김준엽, 창작과 비평 출판사를 운영했던 장준하, 임시정부 초대 군무총장 노백린 장군의 아들 노능서"라고 말했다. 최한이 소리꾼은 장준하의 '돌베개' 책 부분을 읽으며 "흥이 오르자 안익태 씨가 작곡한 애국가를 불랐다. 회식을 주관한 김주임은 사발가를 불렀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서 나오는 '사발가'는 1900년대 초부터 1910년 한일병탄 무렵까지 우리 민족의 울분을 노래한 곡"이라고 소개했고, 김보성 소리꾼은 가창을 시작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4편 '광복군'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김보성 소리꾼. 2025.09.25 alice09@newspim.com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4편 '광복군'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은 박나현 가야금 병창. 2025.09.25 alice09@newspim.com 탈영한 이들은 중국 국민당 정부 중앙육군군관학교를 마치고 중경에 있는 임시정부를 찾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김구 선생을 만나게 된다. 해당 자리에서 김성근이라는 청년은 '각설이 타령'을 부르게 된다. 박나현 소리꾼은 '품바'라는 가사가 들어간 '광복군 환영가'를 가창했다. 최한이 소리꾼은 이를 들은 후 "지금으로 말하면 타령은 강한 수능금지송이 됐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변상문 이사장과 최한이는 오늘의 '금맥'으로 "각설이 타령은 광복군의 희로애락 그 자체였고, 국악은 곧 군악이었다"고 정의를 내렸다. 올해 8월 15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특집 프로그램인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1화 '광복'은 총 4개로 나뉘어 방송됐다. 제1편은 '작금', 2편 '김구, 판소리 배우다', 3편 '이승만과 아리랑', 4편 '광복군'이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최한이·변상문의 작금작금' 제4편 '광복군'이 공개됐다. 본편은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TV의 유튜브 채널 '뉴스핌TV'와 'K·SPOT'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맨 왼쪽부터 최한이, 김보성, 변상문. 2025.09.25 alice09@newspim.com 앞서 제1편 '작금'에서는 성악가 오윤석이 참석해 한국 가곡 '선구자'를 가창했다. 변사로 나선 변상문 이사장은 '가곡'에 대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가곡'을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의 하나로, 피리나 거문고, 해금 따위의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라고 정의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광복 80주년을 맞이해 뒤죽박죽 돼 있고 뒤섞인 개념을 정리해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곡은 국악"이라는 답을 힘주어 말했다. 이어 제2편 '김구, 판소리 배우다'에서는 김구 선생이 왜인을 살해한 후 옥중 생활을 하며 만난 조덕근으로부터 시조와 여창 가곡, 남창 가곡, '경기 12잡가', '선유가', 판소리 '적벽가'와 '춘향가'를 배운 내용이 담겼다. 변상문 이사장은 "백범 김구는 판소리 '춘향가'를 배웠고, 판소리 '농부가'와 '갈까부다'를 즐겨 불렀다"고 말했다. 이에 최한이 소리꾼은 "판소리는 원조 K팝"이라고 정의했다. '이승만과 아리랑'이라는 제목의 제3편에서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93년 2월 2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연맹 본회의에 참석한 후 식사 자리에서 초대 대통령의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만난 내용이 담겼다. 이 전 대통령은 프란체스카 여사에게 힘들고 외로울 때마다 '아리랑'을 불러줬다. 이에 최한이 소리꾼은 "아리랑은 201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우리의 소리이다. '아리랑'은 한민족 DNA이다. 슬플 때는 발라드로, 기쁠 때는 찬가로, 힘들 때는 떼창으로, 인생사 희로애락의 뮤지컬로 시류를 편승하는 살아있는 맥"이라고 강조했다.   alice09@newspim.com 2025-09-2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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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나무·네이버 '슈퍼 플랫폼' 시동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두나무와 네이버가 가상자산 '슈퍼플랫폼' 탄생을 예고했다. 네이버페이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상품을 결제하고 예치금은 업비트 계좌와 연동해 이자이익을 꾀하는 등 원화 스테이블코인 확장 가능성을 제시,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가 추진하는 포괄적 주식교환 거래 체결 시 양사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과 유통, 활용을 잇는 삼각편대를 단숨에 완성할 수 있다. 네이버페이가 발행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두나무의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에 유통하고 해당 코인을 네이버페이가 보유한 막대한 온·오프라인 결제처에서 지불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향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 대비 원화스테이블 코인의 활용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네이버페이와 두나무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구체적인 활용처와 확장 가능성을 제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점도 기회요인이다. 오동환 삼성증권 연구원은 "두나무의 블록체인 플랫폼 '기와체인'으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고, 이를 네이버페이의 결제처에서 결제 수단으로 활용이 가능하다"라며 "또 업비트에서 거래하며 탈중앙화 금융의 기초 자산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네이버와 두나무의 업비트 로고.[사진=각 사] 특히 네이버페이는 최근 결제 뿐 아니라 대출, 보험 증권, 자산관리 등을 연계해 종합금융서비스로 도약을 꾀하고 있다. 두나무를 품게 되면 가상자산으로 사업영역을 넓힐 수 있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네이버페이, 업비트 고객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또는 가상자산으로 네이버페이에서 물건을 구매·결제할 수 있고 네이버페이와 업비트 계좌가 상호 연동되면 기존 네이버페이 예치금을 업비트 계좌에 보관, 고객들이 이자수익을 꾀할 수도 있다. 이같은 가상자산 활용이 보편화되면 자연히 네이버-업비트 생태계에 고객을 묶는 '록인'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효진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네이버의 두나무 연결 편입은 단순 가상자산 거래대금에 대한 수익이 인식되는 것이 아닌 실물자산토큰(RWA), 스테이블 코인 등 디지털 자산 사업의 확대로 활용될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네이버와 두나무의 합병 신호를 시장에 일종의 '선전포고'로 관측했다.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가상자산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라는 것이다. 김형중 한국핀테크학회 회장은(고려대 교수)는 "네이버와 두나무가 힘을 합치면 스테이블코인의 쓸모를 만들어낼 수 있고 여러 가능성을 기반으로 주도권을 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시장과 정부에 표현한 것"라며 "시그널을 던졌으니 시장 반응을 보고 세부사안을 정립해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게티이미지] 임병화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빠르게 추진되고 있는 만큼 카카오, 토스를 비롯해 은행 등 관련 기업들도 분명 컨소시엄 등 다양한 물밑 논의를 진행하고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미국, 유럽, 일본 등 해외에 비해 한국은 많이 뒤처져있기 때문에 당장의 규제보다는 산업육성이 우선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피력했다. 다만 제도적 걸림돌도 적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이 대표 발의한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에서 이용자 보호를 위해 발행과 유통이 분리돼야 한다는 점을 명시했기 때문이다. 이때 발행, 유통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규정된 것은 아니지만 단순 해석하면 네이버에서 만든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손자회사인 업비트에 상장, 거래로 이뤄지기는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네이버와 두나무의 결합을 어떻게 평가할지도 변수로 꼽힌다. 가상자산 분야에서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와 산업혁신의 균형을 중시하며, 투자자 보호 중심의 규율체계 마련 등에 나서고 있다. 심원태 금융위원회 가상자산과 사무관은 최근 가상자산 관련 세미나에서 "국제금융안정위원회(FSB) 등은 미국의 가상자산거래소 FTX의 파산 사례를 들며 이해상충 방지, 경업 제한 등 대응방안 마련을 강조한 바 있다"며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개인만 참여한다는 특수성이 있어 이용자 보호 측면을 보다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고 했다.  한편 전날 네이버와 두나무는 양사 간 포괄적 주식교환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이버 계열사 네이버파이낸셜에 두나무가 편입되는 방안 등을 놓고 검토에 들어간 것이다. 포괄적 주식교환은 한 회사가 다른 회사의 주식 전부를 취득해 100% 지분을 확보하는 절차다. 구체적으로 두나무 주주들이 보유한 두나무 주식 전부를 네이버파이낸셜에 넘기고, 네이버파이낸셜은 신주를 발행해 두나무 주주들에게 제공한다.  네이버는 "두나무와 스테이블 코인, 비상장주식 거래 외 주식 교환을 포함한 다양한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나무 측도 "네이버페이와 스테이블 코인, 비상장주식 거래 외에도 다양한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양사는 조만간 각각 이사회에서 주식 교환 안건을 의결할 것으로 알려진다. romeok@newspim.com 2025-09-26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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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이 내용에 포함된 데이터와 의견은 뉴스핌 AI가 분석한 결과입니다. 정보 제공 목적으로만 작성되었으며, 특정 종목 매매를 권유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 및 결과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주식 투자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으므로, 투자 전 충분한 조사와 전문가 상담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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