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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티션스토리](상) 삼성전자 평사원에서 사장까지…고동진 의원 성장 원동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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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3일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삼성전자 평사원에서 대표이사까지 오른 성장 원동력을 소개했다.
  • 고 의원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뛰어넘으려 노력했으며 어느 누구보다 일을 잘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 일과 삶은 분리될 수 없으며 일이 곧 인생 자체라며 일을 통해 인간관계를 만들고 삶을 살아왔다고 강조했다.

!AI가 자동 생성한 요약으로 정확하지 않을 수 있어요.

국민의힘 고동진, 삼전 CEO 되기까지 성공 전략 공개
"입사 때부터 사장이 목표…일은 곧 삶이었다"
"매일 아침 상사에게 '50초 브리핑'…365일 일 생각뿐"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3일 유튜브 채널 뉴스핌TV '폴리티션스토리'에 출연해 삼성전자 평사원으로 입사해 대표이사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성장 원동력을 소개했다.

고 의원은 "일은 곧 삶이었고, 제 삶은 곧 일이었다"며 "'어느 누구보다도 일은 고동진이 제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어 "늘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했다"며 "요즘 '워라밸'이라고들 하지만 제 경험을 돌아보면 일과 삶은 분리가 안 된다. 회사에서 365일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일했다"고 말했다.

고 의원은 "인생 자체가 자기자신과 세상의 상호작용이다. 그 상호작용의 매개체가 바로 일"이라며 "일 없이 인간은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을 잘하기 위해 일로서 모든 것을 승부했고, 일을 통해 인간관계를 만들었고, 일 속에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저에게 일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 그 자체가 아니었나 싶다"고 돌아봤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 [사진=뉴스핌TV]

1961년생인 고동진 의원은 서울 경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산업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영국 서섹스대학교 대학원에서 기술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고 의원은 1984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모바일경험(MX) 사업부의 전신인 IM부문장을 맡으며 갤럭시S8과 갤럭시노트8의 흥행을 이끌었고, 2018년 삼성전자 대표에 올랐다.

지난해 4·10총선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강남병 지역구에 출마해 22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당 내에선 AI(인공지능)·반도체 특별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다음은 고 의원과의 폴리티션 스토리 인터뷰 주요 일문일답. 자세한 이야기는 뉴스핌TV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신정인 기자, 이하 신 기자)
정치인의 인생 궤적을 돌아보는 폴리티션스토리 시작합니다.
저는 진행을 맡은 뉴스핌 신정인 기자입니다. 오늘은 삼성전자 대표이사 출신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고동진 의원, 이하 고 의원)
안녕하세요. 고동진입니다.

-(신 기자)
의원님 근황부터 좀 여쭐게요. 최근에 한강 버스 시승식 참여하셨는데 직접 타보니까 어떠셨어요?

▲(고 의원)
서울에서 살면서 사실 한강에서 배를 타본 건 처음이에요.
강변 따라서 국회 출근했을 때 바라본 풍경하고 배를 타고서 이렇게 양쪽 강변을 바라보는 게 '아 이게 경치가 이렇게 틀리구나'. 제가 숫자가 정확히 기억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9월 15일인가 17일에 공식적으로 운행이 되고 지금은 시범 운행 그중에서도 이제 오세훈 서울시장님하고 같이 서울에 있는 국회의원들 몇 분 당협위원장들과 시승을 해 본 경우인데 이야기 들어보니까 여기에 대해서 이게 전시행정 아니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또 있다고 하더라고요.

오세훈 시장님 이야기 들어보니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고는 하는데 그래서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
옛날에 우리나라 경부고속도로 만들 때 반대하는 사람 무지하게 많았다. 지금 현재 좀 미흡한 부분은 많이 좀 보완을 해서 특히 접근성 문제 그렇게 하면은 서울 시민들이 많이 호응도가 있지 않겠나. 지금 제가 볼 때 이거를 비난하거나 그럴 일보다는 부족한 부분, 미흡한 부분을 보완을 해서 교통 수단으로 또는 나중에 물류 수단으로도 이용이 될 수가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이제 뭐 저 여의도 뚝섬 잠실 옥수 압구정 마곡 뭐 이렇게 쭉 7개 정도가 이어진다고 그러는데 어쨌든 시작하신 사업이니만큼 잘 되기를 바라봅니다.

-(신 기자)
그러면 의원님도 앞으로 종종 타실 계획 있으세요?

▲(고 의원)
내가 만약에 탄다고 그러면 이제 옥수에서 타 가지고 여의도를 와야 되는데 굉장히 시간적으로는 빠를 것 같은데 집에서 차 타고 그냥 곧바로 국회 오는 게 빠르지 않나

-(신 기자)
의원님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한번 이야기 나눠볼게요.
1961년 서울 서대문구에서 태어나셨고 경성고, 성균관대 산업공학과 졸업하셨습니다.
그리고 회사 다니시면서도 영국 서섹스 대학교 대학원에서 기술정책학 석사 하셨는데 혹시 어린 시절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고 의원)
제가 이제 6남매 막내로 자랐는데 어렸을 때 뭐 예를 들어서 흔히 의사가 되고 싶다, 판사가 되고 싶다 이런 직업적 꿈은 별로 기억이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특히 그 어머님한테 막내야 네 꿈은 용꿈이었다, 태몽이. 그다음에 뭐 열 자식 중에 하나만 잘 되면 된다 라고 하는 거를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저한테 얘기를 많이 하셨어요.
2018년에 어머니가 91세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님 그 묘지에 묻고 난 다음에 그 형님들 누님들하고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그 얘기가 나왔어요.
열 자식 중에 하나만 잘 되면 된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 얘기를 들은 형, 누님은 없었던 거예요.

-(신 기자)
그럼 의원님만

▲(고 의원)
저한테만 어머님이 그렇게 얘기를 하셨어요. 그래서 그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외할아버지가 우리 어머님한테 해 주셨던 말씀이라고 그랬는데 그때 깜짝 놀랐어요.
저한테만 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뭔가 '아 나는 잘 돼야 되는 사람이고 성공해야 되고 우리 집안을 일으켜야 되고' 뭐 그런 어떤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나는 나이가 먹으면 이런 사람이 돼야 돼'라고 생각을 했던 건 중학교 2학년 때인가 학교 교정에 이렇게 앉아서 벤치에서 혼자 '내가 나이 40이 되면 점심에 예를 들어서 불고기 백반을 먹고 싶어 그러면 언제든지 불고기 백 번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사람' 그 어린 나이에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곧 우리 집안을 일으키는 하나의 뭐라고 그러나 기초라고 그러나 좀 그런 생각을 어렸을 때 가지지 않았나

-(신 기자)
그러면 좀 의원님께서 돌아보시기에 좀 학창시절에 어떤 아이였다고 생각하시는지

▲(고 의원)
어렸을 때 부모님 영향을 좀 많이 받지 않았나. 그러니까 금전적으로는 우리 집안이 굉장히 부족하고 어려움이 많았는데 아버님 어머님이 어떤 분이셨냐 하면 한 번도 싸우지를 않으셨어.
집에 큰 소리 나는 걸 난 들어본 적이 없어. 어렸을 때부터 아 이게 우리가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정신적으로는 굉장히 좀 풍요롭게 살지 않았나. 제가 중학교 2학년 때인가 그때 이 여의도를, 친구가 자기 집에 가자고 그래서 그때 마포에서 버스를 타고 여의도를 왔어요.
근데 그때 이 여의도의 아파트가 제 기억에 아마 시범 아파트였어요. 5층짜리 아파트를 그때 처음 들어가 봤어요.

-(신 기자)
어떠셨어요?

▲(고 의원)
깜짝 놀랐어요. 화장실이 어쨌든 집 안에 있었고 수세식 화장실이었고. 놀라긴 했지만 부러워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때 중학교 2학년 때 제가 '아 이 다음에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꼭 뜨거운 물 나오는 집에 내가 모셔야 되겠다'. 그래서 그거를 제가 나중에 했어요.

-(신 기자)
그때 되게 뿌듯하셨겠어요.
대학 졸업하신 이후에 바로 삼성그룹에 입사하셨습니다.
삼성전자에서 38년 그리고 고문으로 2년 또 재직하시면서 총 40여 년간 근무하셨는데 이렇게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50대 중반에 사장으로 초고속 승진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따로 있으실까요?

▲(고 의원)
삼성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다니면서 뭐 사장도 하고 대표이사를 어떻게 할 수 있었냐라고 하는 질문을 사실은 뭐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진짜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어떻게 보면 내가 일류 대학을 나온 사람도 아니고 사실은 그때 삼성 들어가는 것도 집안이 그때 좀 많이 힘들고 그래서 돈을 벌어야 됐기 때문에 회사를 들어가기로 결심을 한 거고 직장생활 자체가 일단 생계 수단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제 자신이 회사의 다른 동기들, 서울대 나온 애들, 그다음에 뭐 해외 유학 갔다 온 친구들 이런 사람들 보면서 '내가 늘 부족하다' 이런 생각을 아예 전제로 하고 회사 들어와서 진짜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뭐 예를 들어서 '대학은 그래 좋은 대학 안 나왔어. 하지만 일은 내가 어느 누구보다도 잘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때 일체의 약속을 안 잡고 오로지 일을 하지 않았나. 마지막 퇴근 버스가 10시 15분 근데 항상 그거 타고 퇴근하고 그리고 집에 오면 또 일어 공부하고.

그래서 입사해서 한 2년 차 겨울에 제가 부산에 어디 여관에 가서 계획을 이렇게 세웠는데 뭐 30살에 과장이 되고 40살에 임원이 되고 50대에 부사장이 되고 그 다음에 사장이 되겠다라고 하는 걸 아예 계획을 세웠어요. 신입사원 2년 차 때 그런 결심을 세우고 나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세부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고 그런 계획도 세웠고.

아까 질문하신 그 원동력이 뭐냐. 제가 저의 부족함을 늘 인정하고 그것을 뛰어넘으려고 노력을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일은 고동진이가 제일 잘한다' 이런 소리를 듣기 위해서 진짜 열심히 노력을 했고 20~30대 진짜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

-(신 기자)
그 당시에 이제 회사에서 아침마다 상사에게 50초 브리핑을 매번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게 되셨어요?

▲(고 의원)
아까 이야기한 '난 삼성에서 사장이 되겠다' 이렇게 하려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냐. 매일 퇴근하기 전에 내일 할 일을 적어보고 퇴근하기 전에 그날 한 일을 평가를 했어요.
아무리 내가 사원이라도 내가 100이라고 하는 일을 할 수 있으면 목표는 한 50에서 60 정도만 내가 목표를 잡아야 된다.
이런 것도 배우고 스스로 이 업무를 조정을 하고 내 머릿속에 이런 일 해야지 저런 일 해야지만 생각을 했다가 이 일을 하는 함에 있어서 어느 다른 팀하고도 상의를 하고 협의하고 이런 것까지를 체득을 한 거죠. '아 이게 안 되는구나, 나 혼자 계획을 세워서는'. 이제 그런 것도 배우게 되고.

그때만 해도 대리님이나 과장님은 오시면 1시간을 신문을 봤어. 나이 차이도 좀 많았고 그런데 그때 저는 미혼이었지만 결혼을 한 분들이 회사에 와서 자기 집안에서의 그 생활 모드가 회사 모드로 빨리빨리 안 바뀌시는 거를 내가 느꼈어요.
그래서 아 이건 안 되겠다. 그래서 아침에 밝은 목소리로 상사가 출근을 하면 인사를 드리고 "대리님 요거 요거를 우리 오늘 팀에서 해야 되는데 이건 제가 할 테니까 이거는 좀 챙겨주세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우리 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상사한테 내가 그때 주무 사원이어 가지고 보고를 드림과 동시에 그분의 그 생각 속에 회사 일을 이렇게 좀 밀어넣었다고 그래야 하나.

세 달 정도는 사실은 별로 이렇게 관심도 안 보이고 그냥 뭐 듣는 둥 마는 둥 이러시더라고. 근데 어느 날 출근해 가지고 제가 그걸(50초 브리핑) 못 했어요. 과장님이 나를 부르시더라고 '오늘은 뭐 아침에 브리핑 없어요?' 그때 아 이분이 듣고 있었구나. 그동안 안 들은 게 아니라 듣고 있었구나 그러고서 "아 요거 요거 오늘 할 일인데 이것만 챙겨 주시면 됩니다" 그랬더니 웃으면서 "어 알았어요. 그건 내가 챙길게요" 그러고 자리로 돌아가시더라고요.

나중에 제가 부사장이 돼서도 그런 식으로 일을 했었어요. 전무 부사장 때 그 때 우리 개발실장님이 나중에 사업부장 되고 사장 되신 분인데 아침에 가서 인사드리고 "요거 요거가 좀 큰 일인데 이거는 좀 챙겨주십시오. 이거는 제가 챙기겠습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는 분들이나 어느 누구도 이 자기 일뿐만이 아니라 그 팀 또는 파트 그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을 한번 적어보고 선배나 상사한테 이런 일이 오늘 벌어져야 된다. 그러니까 '이거는 좀 마무리해 달라. 이거는 내가 하겠다'. 이런 거를 간단하게 이렇게 브리핑을 하면 어차피 또 상사나 선배의 도움을 받아야 될 일이 또 꽤 있기 때문에 그런 어떤 '투두 리스트(To do list)' 가지고 50초 브리핑하는 거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신 기자)
의원님 책 제목이기도 한데요. 의원님께서 생각하시는 '일'이란 무엇인지

▲(고 의원)
저에게 일은 사실 나이에 따라서 조금 틀렸던 것 같아요.
20대 때 일은 사실은 생계 수단이었고. 근데 일을 하면서 이제 일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고 그다음에 '아 내가 일에 관해서 이 분야는 가장 자신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변화하고 혁신해 나갔던, 특히 3040대 때 이런 기억이 있는데.

일이라고 하는 거는 곧 삶이었고 제 삶은 곧 일 아니었나. 젊은 사람들은 요새 워라벨이라고 그래 가지고 일과 삶이 분리가 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는데 제 경험을 돌이켜 보면 일하고 삶은 분리가 안 돼요. 회사에서는 365일 나를 쳐다보고 있다라고 생각을 하면 돼.

아니 365일 어떻게 나를 쳐다봅니까? 의문이 생기잖아요. 월요일날 아침에 8시 반에 회의를 해보면 자기 일에 대해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 해야 될 일을 주말에도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고 온 사람과 진짜 이 생각이 단절돼 가지고 온 사람과 딱 구분이 돼요.

그러니까 일이라고 하는 거는 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가 않는 거예요. 일을 누구보다도 많이 하고 빨리 처리하고. 저는 그 자체가 자기 개발이었고 내 삶이었고 그게 나중에 삼성전자에서 임원이 되고 전무 부사장 승진하고 또 사장 대표이사가 되고. 그 원동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고동진이 있었을까 저는 생각이 별로 안 돼요.

그러니까 일과 삶은 분리가 안 된다. 인생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자기하고 세상하고의 상호작용이에요. 인간은 자기가 원해서 태어나는 사람은 없거든요. 삶은 주어지는 거죠. 자기가 세상하고 상호작용이라고 하는 그 매개체가 바로 일이거든요. 일이 없이 인간은 살 수가 없어요.

내가 추구하는 일을 제대로 하려고 그러면 점점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많은 사람들하고 소통이 수반이 돼야 해요. 젊은 사람들이 "아 저는 이 일을 하는 거는 어렵지 않은데 사람들 인간관계가 어려워요. 소통이 어려워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 말은 잘못된 거죠. 일을 하려고 그러면 인간관계하고 소통이 병행이 돼야 되는 거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일을 잘하기 위해서 일로서 모든 것을 승부를 했고, 일을 통해서 인간관계를 만들었고, 일 속에서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저에게 일이라고 하는 거는 그 인생 자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allpas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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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업무보고 논란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청와대 영빈관에서 5일 열린 외교·안보 분야 정부 부처의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 구상'과 업무보고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날 정 장관의 발언 중에는 정부 내 조율을 거치지 않은 사안을 정책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것이 있는가 하면 사실 관계에 맞지 않은 설명도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신중을 기해 달라고 경고했고,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상주의적 희망에 근거한 비현실적 구상'이라는 비판을 내놨다. 그동안 정 장관의 대북 정책 관련 발언이 물의를 빚은 적은 여러 번 있지만 대통령과 유관 부처 장관이 공개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것은 이례적이다. 정 장관의 무리한 대북 접근법과 월권을 제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2026.07.23 ◆통일부 장관 권한 넘어선 주장 정 장관은 이날 업무보고에서 '한반도 평화공존 발전 구상'을 설명하면서 이재명 정부 2년차 핵심 과제로 상호 존중·평화적 갈등 해결·핵 없는 한반도 등 3대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정 장관은 "대결과 혐오의 언어는 멈춰야 한다"면서 주적 용어 대체를 주장했다. 지난 25년간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구도는 이미 무너졌다고도 했다. 또 "현 시점에서 흘러간 선(先)비핵화만 되뇌는 것은 현실을 바꾸는 데 힘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 장관은 또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논의에 착수하겠다"면서 "북·미 정상회담 견인과 함께 4자 대화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정 장관의 구상에 대부분 제동을 걸었다. 이 대통령은 "평화공존 정책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측면이 있다"며 "많이 조심하셔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는 "표현에 꼬투리가 잡혀 정쟁으로 휘몰아 들어가면 원래 하고자 했던 데에서 오히려 나쁜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대통령은 남북 신뢰 구축을 위해 9·19 군사합의를 선제적으로 복원해야 한다는 정 장관의 주장에 대해서도 "우리의 선의대로 하는 게 과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플러스냐, 결론적으로 약간의 의문이 들 때도 있다"며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업무보고 사후 브리핑에서 정 장관이 언급한 '4자 회담'에 대해 "이상주의에 근거한 어떤 희망이라 하더라도 그건 아직 조율되지 않은 방법"이라며 "여러분들께서 디스카운트해 주시면 좋겠다"고 선을 그었다. 정 장관이 9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을 언급하며 "정부 차원에서 (참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해서도 조 장관은 "그것은 외교부의 몫"이라며 "아직 거기까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고 잘랐다. 정 장관이 이날 소개한 대북 구상과 설명은 정부 내 조율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특히 주적 표현 대체와 국호 사용, 9·19 군사합의 복원, 4자회담 추진 등은 통일부 장관이 결정할 사안이 아니어서 월권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정 장관의 업무보고를 듣고 난 뒤 "여기 업무보고에 발표했다고 승인난 건 아니다"라고 재차 확인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정 장관의 발언 내용은 대부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거쳐 결정된 사안이 아닌 정 장관의 개인적 생각에 가깝다"며 "안보 관련 부처 장관이 정부의 공식 정책이 아닌 사안을 추진하겠다고 업무보고를 하고 대통령의 면전에서 '국군통수권자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통일 외교 국방 등 외교 안보 부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2026.08.05 ◆시대착오적 접근, 대북 인식 오류 더욱 문제인 것은 정 장관의 이같은 주장이 현 시점에서 이미 참고가 될 수 없는 과거의 경험 또는 사실과 다른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 장관이 주장하는 구상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북한의 전략과 한반도 및 국제 정세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정 장관이 "흘러간 선(先)비핵화만 되뇌는 것은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고 언급한 것은 지금까지의 대북 접근법을 호도하고 있다. 북핵 위기 발발 이후 지금까지 모든 핵 협상에서 한국이나 미국은 북한에 선비핵화를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북핵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한·미가 상응하는 대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는 핵시설 동결과 중유 제공의 교환이었다. 2005년 9.19 공동성명도 북한의 비핵화 조치의 모든 단계에 상응조치를 제공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이 적용됐다. 대북 협상에 관여했던 한 전직 관료는 "모든 북핵 협상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한·미가 제공하는 상응조치를 어떻게 정교하게 배열하느냐가 관건이었다"면서 "정 장관의 발언은 지금까지 한·미가 북한에 먼저 핵을 포기해야 대화할 수 있다는 정책을 고수해 현 상황에 이르게 됐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장관이 "지난 25년간의 CVID 구도가 무너졌다"고 말한 것도 비핵화의 개념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북핵 문제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어떤 명칭을 붙이든 핵을 제거한 뒤 이를 검증하고 재발 방지 조치를 하는 것은 비핵화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하는 기본적 절차"라며 "CVID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검증도 하지 않고 언제든 되돌릴 수 있도록 합의하자는 말과 같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핌] 이길동 기자 = 조현 외교부 장관이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2026년 하반기 업무보고 사후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6.08.05 gdlee@newspim.com ◆안보 리스크 키우는 통일부 장관 정 장관은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청와대와 외교부를 제치고 통일부가 북한과 관련된 모든 정책을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단독 질주를 거듭해왔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주장을 변형한 '평화적 두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무시했다. 외교부가 미국과 북한 문제를 논의하는 것에 대해 "한반도 정책과 남북관계는 주권의 영역이며 동맹국과 협의의 주체는 통일부"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 파탄 원인이었다고 사실과 다른 주장을 폈다. 지난해 업무보고에서는 국제정세를 감안하지 않고 남북대화 재개에만 초점을 맞춘 비현실적 내용으로 논란을 빚었다. 정부 내 조율도 거치지 않고 독자 대북제재인 5·24 조치를 해제하고 9·19 군사합의 비행금지구역 복원을 추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지난 4월에는 평안북도 구성시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은 이 발언을 계기로 한국과 대북정보 공유를 제한했다. 이 조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이 이처럼 정부의 공식 결정을 거치지 않은 사안을 정부 정책인 것처럼 주장하며 좌충우돌하는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 해석이 나온다. 북한 문제에서 조기에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조급증과 자신의 존재감 과시 욕구가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일각에서는 정 장관이 2007년 민주당 대선후보였을 때 이재명 대통령이 캠프에서 비서실 부실장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는 것을 들어 "정 장관이 아직도 이 대통령을 아랫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한·미 관계와 북한 문제를 오래 다뤘던 전직 관료 출신의 한 전문가는 "정 장관 취임 후 지금까지의 언행은 잘못된 현실 인식에 따른 독단과 앞서 가기, 월권 등으로 점철돼 있다"면서 "통일부 장관이라는 중요한 직책에 있으면서 스스로 안보 리스크를 키우는 역할만 했다"고 비판했다. opento@newspim.com 2026-08-06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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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경상수지 최대 흑자 [서울=뉴스핌] 박가연 기자 = 지난 6월 우리나라의 경상수지가 전월에 이어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정보기술(IT) 품목 수출 호조로 월간 상품수출이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선 영향이다. [자료=한국은행]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026년 6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지난 6월 경상수지는 497억3000만달러 흑자로 집계됐다. 전월(386억1000만달러)에 이어 두 달 연속 월간 기준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이에 따라 올해 상반기 누적 경상수지 흑자는 1910억1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흑자를 견인한 것은 상품수지다. 6월 상품수지는 478억9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전월에 이어 역대 최대를 다시 썼다. 국제수지 기준 상품수출은 1123억7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84.5% 증가하며 월간 기준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상품수입은 644억8000만달러로 38.6% 늘었다. 통관 기준으로는 반도체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196.9% 급증했고 컴퓨터·주변기기(SSD)는 282.7% 증가했다. IT 품목 수출은 160.4% 늘었으며 비IT 품목도 ▲석유제품(47.5%) ▲화공품(18.6%) ▲철강제품(17.9%) ▲승용차(6.1%) 등을 중심으로 18.6% 증가했다. 통관 기준 수입은 ▲원자재(30.5%) ▲자본재(35.3%) ▲소비재(16.4%)가 모두 늘었다. 서비스수지는 12억9000만달러 적자를 기록해 전월(-10억9000만달러)보다 적자 폭이 확대됐다. 여행수지는 외국인 입국자 증가와 유류할증료 인상 등에 따른 출국자 감소로 4억4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지만 지식재산권사용료수지는 전월 흑자에서 4억4000만달러 적자로 전환됐다. 본원소득수지는 배당소득을 중심으로 32억7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해 전월(21억7000만달러)보다 흑자 폭이 확대됐다. 배당소득수지는 배당수입이 늘어난 데다 전월 분기배당에 따른 기저효과로 배당지급이 줄면서 25억6000만달러 흑자를 나타냈다. 금융계정 순자산은 6월 중 467억1000만달러 증가해 월간 기준 역대 최대 증가 폭을 기록했다. 종전 최대였던 올해 3월(369억9000만달러)을 넘어선 것이다. 직접투자에서는 내국인의 해외투자가 80억1000만달러, 외국인의 국내투자가 46억3000만달러 각각 증가했다. 증권투자에서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 매도세가 이어졌다.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는 차익실현 매도 등의 영향으로 316억1000만달러 감소하며 전월(-310억5000만달러)에 이어 역대 최대 순매도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는 세계국채지수(WGBI) 자금 유입에도 분기 말 만기도래 영향으로 증가 폭이 줄어든 52억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내국인의 해외 증권투자는 주식을 중심으로 35억6000만달러 증가했다. eoyn2@newspim.com 2026-08-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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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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