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오영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8월 1일부터 한국과 일본산 수입품에 대해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을 양국 정부에 서한 형식으로 통보했다. 올해 1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을 상대로 다시 한 번 통상 압박 카드를 꺼내든 셈이다.
특히 서한 발송 1순위 그룹에 한국과 일본 모두가 포함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안보 협력과 무역 협상이 연동되는 트럼프 특유의 '패키지 전략'이 다시 작동하는 조짐이 보이면서, 한국과 일본은 모두 다층적 대응을 요구받는 상황에 놓였다.
◆ "동맹, 공정하지 않은 무역의 면죄부 아냐"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시절부터 일관되게 "동맹이라고 해서 미국의 무역 손실을 감수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그는 자유무역보다 양자협상 중심의 접근을 선호하며,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와 산업 공동화를 외교·통상 정책의 최우선 해결 과제로 삼아 왔다.
한국과 일본 모두 미국의 핵심 안보 동맹이자 경제협력 파트너지만, 트럼프는 우군을 상대로도 예외 없는 압박 전략을 구사해 왔다. "동맹은 공정하지 않은 무역의 면죄부가 아니다"라는 것이 트럼프의 오래된 메시지다.
트럼프는 지난 2018년에도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철강에 25%, 알루미늄에 10% 관세를 부과했다. 당시 한국은 미국과 개별 협상을 통해 직전 3년간 평균 수출량의 70%에 해당하는 무관세 쿼터를 받았지만, 일본은 면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올해 1월 기준 최근 1년간 한국과 일본은 각각 661억달러(약 90조원), 685억달러(약 94조원)의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트럼프는 이러한 흑자 구조 자체를 "불공정 무역의 증거"로 간주해 왔으며, 동맹 여부와 무관하게 관세를 통해 바로잡겠다는 인식을 지속적으로 보여 왔다. 이번 관세 조치 역시 그런 메시지를 되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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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 한국·일본 양손에 쥐고 흔들기
트럼프 대통령이 한일 양국에 동시에 서한을 보낸 것은 한국과 일본을 양손에 쥐고 흔들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국과 일본은 모두 미국과의 무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뿐 아니라, 서로 경쟁 관계에 놓인 주요 제조업 수출국이기도 하다. 자동차, 전기·전자, 반도체, 배터리 등에서 미국 시장을 둘러싼 견제가 불가피하다.
미국은 과거에도 "한국은 했는데 일본은 왜 안하느냐, 일본은 양보했는데 한국은 왜 못 하느냐"는 식의 논리를 편 바 있다. 이 같은 전술은 한쪽의 양보를 다른 한쪽에 대한 압박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식 협상의 핵심 기술 중 하나다.
이번 관세 조치 역시 이와 유사한 구도를 띤다. 트럼프는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압박함으로써 양국이 서로를 의식하며 미국과의 개별 협상 테이블에 먼저 나서도록 유도할 수 있다.
특히 관세율 조정이나 품목 예외를 둘러싸고 '누가 먼저 협상에 응했는가'가 기준이 된다면, 트럼프는 한쪽의 사례를 다른 쪽에 대한 지렛대로 삼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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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백악관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사진=로이터 뉴스핌] |
◆ '무역+안보' 다시 패키지로 묶는 트럼프
관세 압박은 단지 경제적 이슈로만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1기 재임 시절부터 무역 협상과 방위비 분담 협상을 연계하는 '패키지 전략'을 펼쳐 왔다.
대표적으로 그는 "한국이 방위비를 더 부담하면 무역에서 유리한 조건을 줄 수 있다", "일본이 미군 주둔 비용을 더 내지 않으면 통상 문제에서 특별대우는 없다"는 식의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내비쳤다.
2020년에는 한국에 기존 방위비 분담금의 5배 수준을 요구했고, 협상이 길어지자 한국산 제품에 대한 무역 압박을 시사하기도 했다. 일본과의 협상에서도 비슷한 전술이 구사됐으며, 트럼프는 양국이 안보 면에서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했다.
현재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트럼프 2기 정부는 올해 하반기 중 한국 및 일본과의 방위비 분담 협상을 예정하고 있다.
이번 관세 부과 통보는 이 협상의 '전초전' 성격일 수 있다. 방위비를 더 부담하면 관세 면제 혜택을 줄 수 있고, 반대로 협상이 지연되면 무역 압박이 계속될 수 있다는 시그널을 준 것이다.
양국 모두 미국과의 안보 관계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는 확전 리스크 없이 협상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한일 양국이 보복관세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처럼 대립을 공개화하기엔 정치·군사적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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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 트럼프 2기, 다시 시작된 동맹국 압박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내내 "모든 주요 교역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이번 조치는 그 공약이 실제 정책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첫 사례다.
특히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상대로 한 이번 관세는 트럼프 2기 통상 정책이 예외 없는 고강도 압박 기조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다.
한국과 일본 모두 쉽지 않은 국면에 직면한 셈이다. 누가 먼저 미국과 협상에 응하느냐, 누가 어느 정도 양보하느냐에 따라 아시아 전체 통상 질서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