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리그 투수 높은 기량·상대팀 분석·심적 부담 등 이유 복합적
일본 매체 "파워 부족 한계 드러나"... SF 고문 "타격 리듬 깨져"
[서울=뉴스핌] 박상욱 기자 = '바람의 손자' 이정후(26)의 방망이가 긴 침묵에 빠져있다. 리드오프나 3번 타자를 맡던 이정후는 점차 하위 타순으로 밀리더니 7일 상대팀 왼손 투수 등장에 타선 라인업에서 빠지는 수모를 당했다. KBO리그 최고의 교타자가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장기 타격 슬럼프를 겪는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투수들의 기량이 다르다. KBO에서는 좀처럼 헛스윙을 하지 않던 타자였지만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빠른 공과 정밀한 변화구 앞에서는 대응이 쉽지 않다. 패스트볼 구속은 시속 150km 안팎으로 더 빠르고 슬라이더나 커브의 회전수도 훨씬 날카롭다. 타이밍을 잡는 것 자체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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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사진=로이터] |
상대팀들의 현미경 분석도 이정후를 압박했다. MLB 구단들은 신인 타자에게조차 타격존 분포, 스윙 속도, 반응 패턴 등을 빠르게 수집해 맞춤형 공략을 내놓는다. 이정후는 시즌 초반 몇 경기 이후 바깥쪽 낮은 슬라이더와 몸쪽 높은 패스트볼의 반복적인 조합에 고전했다. 그 결과 출루율과 장타율의 동반 하락으로 이어졌다.
몸 상태까지 완전하지 않다. 수술로 이어진 부상은 이미 슬럼프 시기부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하체 주도를 통해 스윙 타이밍을 잡는 이정후의 타격 메커니즘상, 미세한 근육 불균형이나 통증도 타격 밸런스를 흔들 수 있다. 실전 감각이 떨어지고 경기 감각이 무뎌지는 동안 성적 곡선도 가라앉았다.
심리적인 요인도 있다. 이정후는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와 6년 총액 1억 1300만 달러 계약을 맺고 미국에 입성했다. KBO를 떠난 한국 야수 중 역대 최고 조건이었다. 구단의 기대와 함께 사실상 빅리그 첫 시즌이라는 중압감, 언어·문화·일정이라는 새 환경 적응 등이 이정후에게 부담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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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사진=로이터] |
최근 경기에서 나타난 타격 세부 지표를 보면 여전히 콘택트 능력은 살아있다. 하지만 타구 질이 떨어졌다. 평균 타구 속도와 발사각 모두 낮아졌다. 이는 안타 생산 감소로 이어졌다. 특유의 정교한 타격도 무뎌졌다. 수비 시프트가 일상인 MLB에서는 단순히 '맞추는 타격'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
최근 일본 매체도 이정후의 부진을 조명했다. '코코카라 넥스트'는 "이정후가 시즌 초반 맹타를 휘두르다 6월 들어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며 "파워 부족이라는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즌 개막 후 첫 두 달간 타율 0.319, OPS 0.901로 활약했던 이정후는 이후 타율이 1할대로 추락하며 6월 한 달간 홈런 없이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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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 [사진=로이터] |
샌프란시스코 구단 내부에서도 우려는 커지고 있다. 론 워터스 특별 고문은 "스트라이크존에 들어온 공은 잘 치고 있지만, 선구안이 흔들리며 타격 리듬이 깨졌다"며 "매일 MLB 투수들과 상대하는 데 따른 적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투수들과의 매일같은 전쟁은 KBO와는 다른 차원의 싸움이라는 설명이다.
이정후의 슬럼프는 단기간 컨디션 저하나 운의 문제가 아니다. 빅리그 투수들의 패턴에 적응하고 새로운 타격 메커니즘을 완성해야 한다. 이정후 앞에 주어진 숙제는 회복이 아니라 적응이다.
psoq133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