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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혁 교수의 정치분석] ① 무역전쟁의 역사, 대한민국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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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체제전환의 경고, 제국주의부터 기술패권까지

우리나라는 1970년대 이후 수출입으로 먹고 산 나라다. 무역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끌어 왔고 세계 10대 경제수준까지 진입할 수 있었다. 2024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무역의존도는 85.7%로, 독일(83%)보다 높고 일본(37.1%), 미국(26.4%)보다 두세 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수출주도형 경제모델은 세계화 국면에서 고성장을 가능케 했지만, 현재의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는 구조적 불안을 넘어 국가생존의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내재하고 있다. 무역이 차단되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다.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2025년 중국의 희토류 수출금지 사례는 단 하나의 소재 통제로도 미래산업의 생존과 수출주도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국이 중국을 상대로 벌인 아편전쟁(1839-1842, 1856-1860), 대공황 속에서 미국이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시작했던 관세전쟁(1932),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벌인 무역전쟁(1985), 트럼프 1기 때부터 시작한 무역전쟁(2018-)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180년 전 역사적 사례부터 최근까지 진행된 무역전쟁은 어떤 반복적 구조와 원인, 그리고 결과의 모습을 보여주며, 세계의 정치경제적 대전환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 현재 트럼프의 재집권 이후 전개되고 있는 무역전쟁이 미칠 영향과 우리의 대응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지 역사적 사례를 좀 더 상세히 분석해 이해함으로써 접근해 보고자 한다.

아편전쟁 이미지 [사진=챗GPT]

제국주의적 무역전쟁의 기원, 아편전쟁

19세기 초반, 청 제국은 세계 최대의 제조 및 무역국으로 군림했다. 특히 차, 비단, 도자기 등의 고부가가치 상품을 유럽에 대량 수출하며 막대한 흑자를 실현하고 있었다. 경제사학자 케네스 포메란츠(Kenneth Pomeranz)는 『대분기 (The Great Divergence)』(2000)에서 18세기 말까지 청 제국이 GDP와 산업생산 면에서 유럽에 필적하거나 오히려 훨씬 앞서고 있었다고 그 분석에서 밝히고 있다.

중국과 무역거래에서 나폴레옹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거래에서 엄청남 적자로 허덕이고 있었다. 1816년 기준 영국의 대청 무역 적자는 약 270만 파운드에 달했으며, 이 중 90% 이상은 차 수입으로 인한 것이었다(Hevia, 2003; Fairbank & Reischauer, China: A New History, 1998).

중국의 고급차를 마시는 것이 영국상류층의 문화적 사치심을 충족시켜 준 댓가는 실로 컸다. 당시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연간 약 3만 톤의 차를 수입하고 있었으며, 차에 대한 대가로 막대한 양의 은화를 지급해야 했다. 무역수지의 만성적 적자는 영국 내에서 "은의 배수구(draining sink)"라는 비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동인도회사를 통한 구조적 해결이 정치경제적 과제로 떠올랐다.

절치부심하던 영국은 무역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도에서 대량 생산한 아편을 중국 남부 해안, 특히 광저우(廣州) 지역을 중심으로 은밀하게 거래하기 시작했다. 1820년대 후반부터 1830년대에 이르기까지 아편 수입은 연간 1000톤 이상으로 증가하며 청 제국 내 은 유출을 가속화시켰다. 이는 영국 동인도회사가 조직적으로 추진한 상업전략으로, 1830년대에 이르자 영국은 밀무역을 통해 무역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Chang, H.-J. 2007. Bad Samaritans).

청 제국은 아편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과 국부 유출을 심각한 위기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편 중독은 관료, 군인, 농민층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어 있었고, 이는 군사력 약화와 행정기강 해이로 이어졌다는 평가에 이르게 됐다(Spence, Jonathan D., The Search for Modern China, 1990). 1839년 도광제는 강직한 청렴관으로 잘 알려진 임칙서(林則徐)를 광저우에 파견해 해결해 보려했다.

임칙서는 광범위한 단속을 시행하며 2만여 상자의 아편을 몰수한 뒤, 이를 해안가에서 공개적으로 소각(바다에 투기)하는 '호문(虎門) 소각' 사건을 일으켰다. 이는 당시 영국 상인들의 재산을 파괴한 것으로 간주해 영국 정부는 자국상인의 보호를 명분으로 중국본토 침략을 위해 해군을 급파했다.

영국 내에서도 무역자유를 주장하던 자유무역론자들까지 임칙서의 조치를 '근대 상업 자유에 대한 침해'로 규정하고 강경론자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팔머스턴 외무장관 주도로 군함이 광저우와 상하이를 통해 중국 본토에 진입하면서 제1차 아편전쟁은 시작되었다.

중국의 조직적 반격과 공격이 예상된 전쟁은 초반부터 영국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기술적, 조직적 측면에서 영국 해군의 압도적 우위로 인해 중국은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하고 개전 초반부터 무참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증기선, 철제 선체, 장거리 사정거리의 함포를 탑재한 군함 등 최신 무기체계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장거리에서 포격으로 해안선을 초토화 시켰다.

반면 청 군대는 여전히 화승총과 활, 전통적인 대포에 의존하고 있었고, 함대도 노 젓는 정크선(중국식 범선)이 주력이었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전투를 시작한 셈이다. 전투 경험과 훈련의 차이 역시 컸다. 영국군은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며 해군 중심의 기동전과 상륙전을 정예화한 해군을 거느리고 있었고, 분산전술과 포격을 바탕으로 광저우, 상하이, 닝보 등 전략 요충지를 순차적으로 점령해 나갔다.

청나라 군은 전선에서의 패배뿐 아니라 지휘체계의 혼선, 군 내부 부패, 사기 저하로 인해 조직적 대응에 실패해 일찌감치 전투패배를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지역군벌 간 협력이 부재했고, 일부 지휘관은 전투 직전 이탈하거나 아편 중독 상태였다는 기록도 헤비아 등의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Hevia, James L. (2003). English Lessons: The Pedagogy of Imperialism in Nineteenth-Century China). 또한 군수 보급도 열악하여 장기간 전투를 지속할 수 없었으며, 이에 따라 주요 도시가 차례로 함락되며 청 정부는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 책은 분석한다.

영국이 동아시의 강대국이었던 중국과 벌인 아편전쟁은 결국 준비된 강자와 내부의 분열과 낙후된 기술을 인식하지 못한 국가간의 싸움은 시작할 때부터 결과는 뻔한 것이다. 1842년 체결된 난징조약은 홍콩 할양, 5개 개항장 설치, 관세주권 상실, 영사재판권 수용, 2100만 은화 배상 등 청 제국의 주권을 근본적으로 침해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세계무역사에서 첫 번째 '불평등 조약'이자, 동아시아 질서의 근본적 대전환을 의미했다.

이 조약을 기점으로 중국은 '불평등 조약 체제(unequal treaty system)'에 편입되며, 이후 19세기 후반까지 서구 제국에 의해 진행된 연쇄적인 주권 침해를 굴종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체제론의 창시자인 임마누엘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근대 세계체제(The Modern World-System)』에서 이러한 무역구조의 중심부(Core)와 주변부(Periphery) 간 착취관계를 설명하며, 아편전쟁은 그 분기점 중 하나였다고 지적한다. 무역전쟁을 통해 서구는 중심국으로, 중국으로 주변국으로 추락하게 된 발단이 된 셈이다.

무역통계 측면에서도 청 제국은 급격히 주변부로 전락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앵거스 매디슨(Angus Maddison)의 추산에 따르면 1820년 중국의 세계 GDP 점유율은 약 33%였지만, 1870년엔 17%로, 1900년엔 6%까지 수직적으로 감소해 나갔다. 무역의 강제 개방이 단순한 교역 확대가 아닌 자원의 착취와 종속적 경제구조를 야기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Maddison, Angus. (2001). The World Economy: A Millennial Perspective. OECD Publishing).

폴 케네디(Paul Kennedy)는 『강대국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the Great Powers (1987)』에서 아편전쟁을 단순한 식민지 분쟁이나 군사 충돌이 아닌, 경제적·전략적 불균형이 야기한 구조적 충돌로 해석한다. 케네디는 이 책에서 "해상력을 기반으로 한 통상 강제는 패권국의 전략적 경제정책"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아편전쟁은 결국 무역불균형을 해결하려는 패권국의 일방적 행동이 어떻게 국제질서의 구조를 바꾸는가를 보여주는 선례로 이후 서구 중심의 제국주의 질서를 촉진한 분기점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핵심 분석이다.

근대 최초로 진행된 무역전쟁인 아편전쟁을 통해 무역이 민간 상업 활동의 수준을 넘어선 '국가권력의 군사적 외연'으로 확장되었고, 이는 훗날 식민주의, 지정학적 경쟁, 군사적 패권 추구의 선례로 남아있다. 중국이 다시 중심국으로 재등장한 상황에서, 그동안 자신들의 자존심을 무참히 짓밟고 국토를 유린했던 서구국가들과 일본, 그리고 지금은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보여주는 결의에 찬 모습은 아편전쟁의 굴종적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되갚음을 하겠다는 적개심으로 쉽게 이해될 수 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 오타와 협정과 대공황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세계 최대 채권국이자 무역 흑자국으로 부상하며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등장했다. 1929년 기준 미국의 세계 무역 점유율은 15%에 달했고, 유럽 각국은 미국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해 전후 복구를 감당하고 있었다. 미국은 연간 약 40억달러 이상의 수출을 기록하며 유럽과 남미, 아시아에 걸친 세계시장을 확보했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은 균형 잡힌 구조가 아니었다. 유럽은 전쟁 배상금 지급으로 인한 재정 압박 속에 미국 수출을 흡수할 능력이 없었고, 독일은 미국으로부터의 자본 유입을 바탕으로 겨우 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고전적 자유무역주의 체제는 미국의 글로벌 투자와 국가간 수입 수요의 불균형 속에서 기초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당시 미국 내에서는 특히 농업 부문에서 가격 폭락과 과잉생산이 문제가 되었다. 1920년대 말 곡물 가격은 1919년에 비해 약 60% 하락했고, 농민 부채가 눈덩이 처럼 급증하기 시작했다. 농촌지역에 기반을 둔 의원들뿐 아니라 대도시 출신 의원들도 식품 및 생필품 가격이 높아지자수입 농산물에 대해 높은 보호관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이익단체들의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치적 배경 속에서 관세법 개정이 미의회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때마침 터진 1929년 뉴욕증시 대폭락은 세계경제를 일시에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뜨렸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미국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보호무역으로 급선회하게 되었다. 상원의 리드 스무트(Reed Smoot)와 하원의 윌리스 홀리(Willis C. Hawley)가 주도한 스무트-홀리 관세법(Smoot-Hawley Tariff Act)은 20,000개가 넘는 수입품에 평균 4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주내용으로 사실상 무역폐쇄와 같은 효과를 지닌 고단위의 폐쇄적 무역정책이었다. 이 조치는 국내 농업과 제조업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사실상 그 실질적 효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세계 주요 교역국들은 미국의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제정과 함께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캐나다의 리처드 베넷(R. B. Bennett) 총리는 미국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단행하였고, 프랑스의 외무장관 아리스티드 브리앙(Aristide Briand)과 독일의 하인리히 브뤼닝(Heinrich Brüning) 총리 역시 자국 산업 보호 조치를 천명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국제 무역의 신뢰를 동시 다발적으로 무너뜨렸으며, 무역의 다자주의 기반을 차례로 붕괴시켰다.

영국을 필두로 한 영연방 국가들도 공동 전선을 구축해 나갔다. 1932년 7월 21일부터 8월 20일까지 캐나다 오타와에서 개최된 회의에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연방, 인도, 남로디지아 등 7개 자치령(Dominions)과 식민 정부 대표들이 참여했다. 이 회의는 "자국과 영연방 국가들 간의 무역을 선호한다"는 제국선호(imperial preference) 정책을 선포했다. 일명 오타와 제국회의(Ottawa Imperial Conference)는 대공황의 여파와 스무트-홀리무역법 발효로 세계 무역이 붕괴하는 가운데, 영국이 자국의 제국 내 식민지들과 경제적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주도한 회의로 세계무역의 대다수 국가들은 상호간 2중, 3중의 관세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영국이 강력하게 대응한 배경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영국은 1931년 금본위제를 공식 포기한 이후, 파운드화 블록(Pound Sterling bloc)을 기반으로 무역권을 재편하려는 참이었다. 미국이 스무트-홀리 관세법으로 자국 경제를 보호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자 영국은 주저하지 않고 영연방국가간에 적용되는 보호무역적 특혜관세 체제(preferential tariff system)를 도입함으로써 경제적 연대강화와 수출입의 안정을 꾀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 통해 영연방 국가들은 제국 외부에서의 시장 축소를 상쇄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전 세계적인 무역 블록화와 경제 블록 간 대립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국제무역구조가 무너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 안게 된다. 수출이 되지 않아 기업은 대량해고로 이어졌고, 수입품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면서 삶은 핍박해 졌고, 기아, 영양실조, 자살, 알코올 중독과 폭력 등 사회적 문제로 번지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는 자유무역을 기반으로 한 19세기적 국제경제 질서의 파괴와 사회적 불안은 파시즘, 군국주의, 경제자립주의(autarky)로 옮겨가는 기폭제로 작용되었고, 경제적 고립은 정치·군사적 긴장과 전쟁 가능성을 증폭시키는 도화선이 되었다. 특히 오타와 제국회의 이후 독일의 '생활권 확보(Lebensraum)' 정책, 일본의 대동아공영권 구상, 이탈리아의 아프리카 침공 정당화 등에 영향을 주며, 국가 간 다자 무역협력 체제가 붕괴된 전조로 평가받고 있다.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와 더글라스 어윈(Douglas A. Irwin)과의 공동논문인 「보호무역의 유혹(The Protectionist Temptation)」(2010)에서 "정치적으로는 매혹적이나, 경제적으로는 파괴적인 선택"이라며 보호무역이 자유무역 기반의 신뢰를 붕괴시키고 전 세계적 체제 전환을 촉진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더글러스 어윈(Douglas A. Irwin)은 자신이 저술한 『보호무역의 유혹(Peddling Protectionism)』(2011)에서 스무트-홀리법을 "정치적 보호주의가 초래한 정책 실패의 결정적 사례"로 규정하고 있다.

어윈은 이 법이 실제 미국의 고용이나 경기 회복에 기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주요 교역국들의 보복관세를 초래해 세계 무역을 60% 이상 감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국내 정책의 실패를 넘어 국제질서 붕괴의 도화선이었다는 해석이다.

보호주의의 확산으로 각국 경제는 수출 부진과 수입 억제로 인해 더욱 침체되었다. 이는 고용 악화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졌고, 전세계적 디플레이션 현상을 심화시켰다. 결국 미국 자국무역 보호법인 스무트-홀리법과 영연방의 무역보호를 위해 체결된 오타와 협정은 단순한 국내 보호조치를 넘어 세계무역의 구조를 붕괴시키고, 그 결과로 전체주의 정치체제의 정당화를 불러온 상징적 조치로 기록되고 있다. 무역전쟁은 결국 체제전쟁으로 비화되며, 그 대가는 결국 2차세계대전으로 치닫게 되는 비극적 결말의 원인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②편에 계속

[서울=뉴스핌] 최지환 기자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교수

*필자 최연혁 교수는 = 스웨덴 예테보리대의 정부의 질 연구소에서 부패 해소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톡홀름 싱크탱크인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매년 알메랄렌 정치박람회에서 스톡홀름 포럼을 개최해 선진정치의 조건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그 결과를 널리 설파해 왔다. 한국외대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받은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예테보리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런던정경대에서 박사후과정을 거쳤다. 이후 스웨덴 쇠데르턴대에서 18년간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버클리대 사회조사연구소 객원연구원, 하와이 동서연구소 초빙연구원, 남아공 스텔렌보쉬대와 에스토니아 타르투대, 폴란드 아담미키에비취대에서 객원교수로 일했다. 현재 스웨덴 린네대학 정치학 교수로 강의와 연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민주주의의가 왜 좋을까'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스웨덴 패러독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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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공항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서울=뉴스핌] 신수용 기자 = #. 스타트업 입사 4년 차인 30대 직장인 A씨는 연말에 아껴둔 휴가를 소진하기로 결심했다. 그동안 여러 프로젝트로 쓰지 못한 연차를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 회사에서도 연차 소진 권고가 내려지면서 징검다리 연휴를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에 A씨는 크리스마스 이브인 23일, 24일과 26일 연차를 내고 22일 저녁 일본에 도착해 여정을 시작하는 6박 7일 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서울=뉴스핌] 신수용 기자 = 24일 비행기 출발을 기다리는 이들로 설렘이 가득차 있던 김포공항에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해 화요일인 26일 징검다리 연휴에 연차를 낸 이들과, 고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 관광객 등이 공항에 자리했다. 2025.12.24 aaa22@newspim.com 24일 크리스마스를 앞둔 김포공항은 여행객으로 북적였다.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26일 금요일 하루를 연차로 내면 최소 3박 4일의 휴가를 즐길 수 있어서다. 내년 1월 1일 신정까지 연차를 내면 최장 11일을 휴가로 사용할 수 있다. 커다란 캐리어를 양손에 쥐고 있는 하루토(가명·23) 씨는 이날 고국인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는 "한국 여행을 마치고 가족들과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함께 보내기 위해 고국인 일본에 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출국장에는 외국인들이 화장품 등 다양한 선물을 가득 담은 박스와 커다란 캐리어를 밀며 분주히 오갔다. 출국장에 위치한 체크인 줄에는 커다란 기내용 캐리어를 쥔 사람들로 줄들이 가로세로 빽빽히 차 있었다. 이른 아침 시간에 출발하느라 챙기지 못한 끼니를 벤치에 앉아 간단히 빵과 커피로 때우는 이들도 간간히 보였다. 안양에서 왔다는 30대 커플은 "4박 5일 일정으로 대만으로 갈 예정"이라며 "직장인이라 업무 때문에 더 휴가를 내지 못해 아쉽다. 뒤에 휴가를 더 붙였다면 유럽에 가고싶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업무가 쌓여있어도 연차를 아예 날릴 수는 없고 (회사에서도) 소진하라는 분위기여서 다행이었다"라며 "대만에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보고 싶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뉴스핌] 신수용 기자 = 24일 김포공항 출국장 한 켠에 쌓여 있는 캐리어와 수화물들. 2025.12.24 aaa22@newspim.com 이날 공항에서 만난 40대 여성은 서울 서초구 양재에서 공항으로 왔다. 그는 "중국 상하이에서 근무하는 남편을 만나러 간다"며 "중국에서 2주 정도 같이 연말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보내는 장기 휴가가 가능한 이유는 크리스마스인 25일, 내년 신정인 1월 1일이 각각 목요일이기 때문이다. 금요일인 26일(금요일), 29일부터 31일까지, 내년 1월 2일(금요일) 등 총 5일의 연차를 사용하면 최장 11일의 휴가를 즐길 수 있다. 가족끼리 휴가일을 맞춰 같이 해외 휴가를 가는 경우도 있었다. 장승훈(28·건국대 컴퓨터공학과) 씨는 "참여하고 있는 개발자 관련 프로그램에 양해를 구하고 나를 포함해 총 6명이 중국 상하이로 어머니 생일과 가족 기념일을 겸해 가족 여행을 간다"며 "아버지나 삼촌 등 다른 분들도 휴가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중국을 가본 적이 없어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이날 출국하는 여행객들의 목적지는 일본과 중국이 대부분이었다. 고환율과 엔저의 영향으로 여행 경비 부담이 비교적 덜한 일본이나 중국이 인기 관광지로 꼽혔다. 여행 전문 기업 노랑풍선에 따르면 올해 12월 25일부터 내년 1월 4일까지 노랑풍선을 통해 해외 패키지여행을 예약한 고객 수는 전년 동기간 대비 약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중 일본이 30%로 가장 높았고, 중국(20%)이 그 뒤를 이었다. 베트남과 필리핀은 각각 16%, 7%를 차지했다. 노랑풍선 관계자는 "한한령 완화와 단체 비자 발급 확대, 주요 노선의 항공편 증편 등 여행 여건이 개선되면서 중국 여행객이 늘었다"며 "긴 연휴로 장거리 여행을 가는 이들이 생기며 유럽은 8% 수준을 늘었다"고 설명했다. aaa22@newspim.com 2025-12-2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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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판 다이소, '와우샵' 초저가 승부 [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이마트가 5000원 이하 초저가 생활용품 편집숍 '와우샵(WOW SHOP)'을 앞세워 다시 한 번 초저가 시장 공략에 나섰다. 사실상 다이소가 독점해온 시장을 정조준한 행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이마트는 최근 이마트 매장 내 편집존 형태의 '와우샵'을 시범 운영 중이다. 지난 17일 왕십리점에 약 20평 규모로 도입한 데 이어 연말까지 은평점(19일), 자양점(24일), 수성점(31일) 등 총 4개 점포로 확대한다. 와우샵 은평점 전경. [사진=이마트 제공] 와우샵은 전 상품을 1000원·2000원·3000원·4000원·5000원 균일가로 판매하는 것이 핵심이다. 초저가 생활용품 1340여 개 중 64%를 2000원 이하, 86%를 3000원 이하로 구성해 가격 경쟁력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마트는 앞서 2018년 '삐에로쇼핑'을 통해 유사한 초저가 실험에 나섰지만 2년 만에 사업을 철수한 바 있다. 삐에로쇼핑은 '오프프라이스+초저가'를 콘셉트로 1000원대 상품부터 브랜드 이월 상품까지 혼합 진열하고 미로형 동선과 자극적인 매장 연출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매장 정체성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상시 저가 매장인지 할인 전문점인지 소비자 인식이 흐릿했고 대형마트와 분리된 독립 매장 구조로 집객과 회전율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한 점이 한계로 작용했다. 업계에서는 와우샵이 삐에로쇼핑과는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와우샵은 이마트 매장 내 편집존으로 운영돼 기존 고객 트래픽을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고 전 상품을 1000원~5000원 균일가로 단순화해 가격 메시지도 명확하다. 무엇보다 이마트 해외 직소싱과 품질 관리 역량을 앞세워 '싼 가격이지만 믿을 수 있는 상품'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려는 전략이 눈에 띈다. 다이소 김포 장기점 매장 전경. [사진=다이소] 이 같은 평가의 배경에는 초저가 시장에서 이미 검증된 '성공 공식'이 존재한다는 점도 작용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이소다. 다이소는 균일가, 생활필수품 중심, 언제 방문해도 저렴한 가격이라는 단순한 포지션을 수십 년간 흔들림 없이 유지해왔다. 복잡한 기획이나 과도한 연출 대신 소비자가 기대하는 가격과 품목을 정확히 충족시켰고 전국 단위 점포망을 통해 일상 동선 속 구매를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와우샵의 성패를 가를 관건은 결국 '지속성'이다. 일회성 화제에 그치지 않고 상시 초저가에 대한 신뢰를 쌓을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업계에서는 이마트가 대형마트라는 기존 경쟁력 위에 초저가 포맷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과거 삐에로쇼핑과는 구조적으로 다르다고 본다. 와우샵이 단기 실험을 넘어 이마트 매장의 고정 코너로 안착할 경우 초저가 시장의 판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이마트는 올해 들어 와우샵 외에도 4950원 화장품 '글로우:업 바이 비욘드', 880원부터 4980원까지 가격을 고정한 '5K프라이스', 노브랜드 확대 등 초저가 실험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이는 과거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소비자가 체감하지 못하는 10원, 100원 차이는 의미가 없으며, 상식 이하 가격으로 팔아야 한다"고 강조해온 가격 철학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중간 가격대는 사라지고 '초저가와 프리미엄만 살아남는다'는 그의 판단이 최근 이마트의 전방위 초저가 전략으로 다시 구현되고 있다는 평가다. mkyo@newspim.com 2025-12-2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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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 영향 종목

  • Lockheed Martin Corp.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안보 지원 강화 기대감으로 방산 수요 증가 직접적. 미·러 긴장 완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방위산업 매출 안정성 강화 예상됨.

부정 영향 종목

  • Caterpillar Inc. Industrials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시 건설 및 중장비 수요 불확실성 직접적. 글로벌 인프라 투자 지연으로 매출 성장 둔화 가능성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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