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국가대표 수중발레 선수로 활동
지중해 몰타서 망명한 특이한 경력
전문성 살려 수중공연 업체 창업
[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한눈에 봐도 훤칠한 키에 미모가 돋보이는 류희진(33) 씨는 한때 북한의 수중발레 국가대표 선수였다. 평양 출신인 그녀는 10년 전 탈북해 방송활동과 강연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벌여왔지만 언제나 '물'로 돌아가는 순간을 꿈꿔왔다.
그런 희진 씨가 얼마 전 '사고'를 쳤다. 수중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몬스터테일'을 창업한 것이다. 세계 각국의 특별한 인어공주(Mermaid Tail)들을 모아 수준 높은 수중발레 공연을 선보이겠다는 생각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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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지중해 몰타에서 근무 중 탈북 망명한 북한 수중발레 국가대표 선수 출신 류희진 씨가 국내 공연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류희진 씨 제공] 2025.04.22 yjlee@newspim.com |
한국에서 유일무이한 수중 발레리나 및 수중 공연 전문가로 알려진 그녀는 대표로서 기획‧연출을 총괄하고 직접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며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류 대표가 탈북을 결행한 건 남유럽의 섬나라 몰타였다. 지중해 중앙부인 시칠리아 섬 남쪽에 위치한 인구 55만명의 몰타는 우리에게도 낯선 나라다. 비숑 계열의 소형견으로 국내에서 반려견 선호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말티즈(Maltese)의 고향이기도 하다.
류 대표는 2012년 그곳에 파견된 이후 수중발레 코치를 하며 북한 식당에도 근무했다. 외화벌이를 위한 목적이었지만 손님들의 발길이 점점 뜸해지자 이탈리아 식당의 요리사들과 협업하는 방식으로 식당이 운영됐다.
"솔직히 자유롭고 좋았어요. 현지에 파견된 보위 지도원은 많은 인원이 파견된 식당이나 재봉 공장 직원들을 감시하느라 제게 별 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죠."
그 덕분에 류 대표는 한국인 유학생들과 식당에서 자주 소통했고, 인터넷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20대 나이의 자유분방함은 북한 체제의 단속이나 검열의 눈길도 막을 수 없었다. 혼자라 시내도 마음대로 다니며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당시 몰타 지역에는 한국 식당이 없어 서울에서 간 유학생들의 발길은 자연스럽게 북한 식당으로 이어지게 됐다. 류 대표는 고향 음식을 그리워하는 유학생들에게 몰래 만두를 빚어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식당에서 나오는 한 달 월급은 고작 200유로(한국돈 32만2000원)였는데, 그마저도 이것저것 제하면 손에 쥐어지는 돈은 거의 없었다. 당시 만두 한 개 가격은 1유로로, 200개만 빚어도 한 달 월급과 맞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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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지중해 몰타에서 근무 중이던 지난 2015년 탈북해 한국에 온 북한 수중발레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류희진 씨가 프로필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했다. [사진=류희진 씨 제공] 2025.04.22 yjlee@newspim.com |
어느 날 한국 유학생이 만두 200개를 주문했다. 숙소에서 밤새 만두를 빚고 저녁 9시가 넘어 문자를 하고 전달해 주려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 유학생에게 문자를 보낸다는 게 그만 실수로 감시를 담당하는 보위지도원에게 전송된 것이다.
보위지도원은 즉시 류 대표를 호출했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비난을 쏟아냈다. 잘못했다고 빌었고, 자아비판서를 써서 바쳤지만 그 자리에서 찢어버리며 온갖 행패를 부렸다. 마지막에는 민족 반역자, 변절자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에 지장을 찍으라고 강요했다.
"민족 반역자, 변절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어요. 그때 평양에 있는 회사 사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조만간 북한으로 소환될 것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죠. 만두를 만들어 판 것이 조국을 배반할 만큼 큰 죄로 인정되는 북한은 저에게 더는 조국이 아니었습니다."
결국 류 대표는 탈북을 결심했다. 다행히 4년을 몰타에 살았던 덕분에 남들보다는 쉽게 탈출에 성공해 무사히 한국에 입국했다.
정착 초기 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서울 근교의 호텔 수영장에서 라이프가드(안전 요원)로 근무했다. 대학 입학 후에는 TV 예능 프로그램 출연하면서도 수중발레 코치를 하고 수중 공연회사에서 기획하는 공연에도 종종 참여하는 등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정착 초기에 대학에서 조교도 하고 수중 발레 코치를 하면서도 힘든 줄 몰랐죠. 몰타에서 혼자 독립해 생활한 경험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남한 사회가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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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 탈북 망명한 북한 수중발레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류희진 씨가 환상적인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류희진 씨 제공] 2025.04.22 yjlee@newspim.com |
해외에서 탈출한 배경을 가진 류 대표에게 가족은 그리움과 죄스러움이 공존하는 아픔이다. 한국 정착 초기 평양에 남겨진 가족들과 연락하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한 끝에 연락이 가능하다는 브로커를 소개받았지만, 가족과 통화할 수 있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동안 브로커가 요구해 보낸 돈만 해도 1000만원이 넘는다.
정착 초기에는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에 대한 죄책 감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이 와중에도 탈북민들이 정착 초기에 경험 하는 사회·문화적 편견은 류 대표를 피해가지 않았다.
"수중발레 실력을 인정받아 아이들 수중발레 코치로 일하던 때 감독님이 한동안 부르지 않길래 전화를 걸어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이왕이면 우리 코치들을 먼저 챙겨야 하는거 아니냐'고 말하더라구요. 인정받고 싶어 열심히 했고, 의지하고 믿고 따르며 신뢰를 쌓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분에게 나는 우리가 아니라 남이란 걸 느꼈죠."
동료들과의 갈등도 있었다. 수중 공연 총감독으로 막일을 시작했을 때 공연팀의 임시 멤버로 있던 친구에게 도움을 주고자 동작의 잘못된 점을 수정해 주려고 조심스럽게 얘기했는데 그때 돌아온 대답은 "북한에서 온 주제에 네가 뭘 안다고 나에게 조언이냐"는 말이었다.
"제가 진정 받고 싶은 위로는 '괜찮니? 속상했겠다' 는 공감이었어요. 하지만 그런 일들로 무너질 수 없었어요. 그래서 제 이름으로 된 최고의 수중발레 공연 회사를 만들고 실력으로 보여주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꿈을 향해 가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길은 없다. 오직 직진뿐이다. 그녀는 수중발레 공 연의 주연, 총감독으로 활동하면서 공연기획사 운영 실력을 차곡차곡 쌓아갔다. 현재 수중 발레리나로 활동하면서 공연진 캐스팅 및 티칭, 안무와 기획까지 전부 할 수 있는 한국인은 류희진 대표가 유일하다는 업계 평가를 받고 있다.
"어떤 사회든 나와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살다 보니 탈북민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죠. 이제 제 머릿속에 탈북민이라는 정체성은 사라지고 평양 출신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지금도 저를 국민으로 받아준 대한민국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어요."
류 대표는 어느덧 수중 발레리나를 희망하는 아이들의 살아있는 '꿈'이 되었다. 아이들과 부모들의 감사 인사와 편지를 받을 때면 뿌듯함과 대한민국의 문화예술을 이끌어가는 사람이 되었다는 강한 긍지를 느낀다.
몬스터테일은 대전 엑스포 아쿠아리움에서 '미녀와 야수'를 각색한 수중발레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아쿠아리움 속에서 펼쳐지는 수중 공연은 황홀함과 아름다움 그 자체라는 평가를 받는데 동화 속 천국 같은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연이 끝나고 포토타임 때 유리벽에 손을 대고 바짝 다가선 아이들은 동화 속 인어공주의 아름다운 모습에 연신 환호를 보낸다.
하루하루 좋은 경험들을 쌓아가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미래를 상상하며 류 대표는 오늘도 가슴이 부푼다고 한다. 통일 미래에 반갑게 다시 만날 가족도 마찬가지다.
평양 대동강으로부터 멀리 지중해 몰타를 거쳐 서울에 온 인어공주 류희진에게는 어떤 파도와 큰 물살도 장애물일 수 없다. 그저 그녀의 꿈과 예술혼을 펼칠 아름다운 무대일 뿐이다.
<뉴스핌-남북하나재단 공동기획>
yj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