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대한민국은 새로운 대변혁을 요구하는 변곡점에 서 있다. 우리 정치는 적대하고 증오하고 대립한다. 22대 국회가 개원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 대통령은 탄핵 심판의 대상이 됐다. 극단으로만 치닫는 정치 환경에서 개혁의 필요성에 공감 못 하는 이는 없지만 정치권의 대화와 타협은 늘 파행과 결렬이라는 늪에 빠졌다. 뉴스핌은 설문조사를 통해 22대 국회의원들이 생각하는 정치개혁의 방향성을 청취, 여야가 공감할 만한 정치개혁의 과제를 도출하고자 한다.
[서울=뉴스핌] 신정인 기자 = 13시간 12분. 김용태 국민의힘 초선 의원이 지난해 7월 경신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역대 최장 기록이다.
당시 오전 8시30분쯤 한국교육방송공사(EBS)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에 나선 김 의원은 오후 9시46분쯤 발언을 끝마쳤다. 국회 본회의장에선 국민의힘 의원들의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이는 지난 2023년 12월 국정원법·남북관계발전법 등 개정안 통과 저지를 위해 필리버스터 주자로 나선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12시간 47분)보다 더 긴 시간이었다.
[글싣는 순서] - 2025 신년기획 '정치개혁'
1. 대한민국, 대변혁 변곡점에 서다
2. 개혁과제는…與 "선거제" vs 野 "검찰개혁"
3. 여야 "대통령제 중임제 개헌" 한목소리
4. 이원집정부제는 '글쎄'…대통령 권력 분산엔 '찬성'
5. 선거제도 개혁 어떻게…여 "병립형" vs 야 "준연동형"
6. 바람직한 공천제도…여야 "중앙공천 유지, 투명·공정성 강화"
7. 현실정치에 적합한 정당제는…여야 "3~4개 다당제가 적절"
8. 양원제 도입에 대한 의견은…여야 모두 '단원제' 선호
9. 선거연령 하향 부정적..."현행 만18세가 적합"
10. 필리버스터에 대한 의견은…"강화해야" vs "대체 방식 찾아야"
필리버스터란 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다. 국회 본회의에서 법안 처리를 저지하기 위해 의원들이 끝없이 발언을 이어가는 행위를 말한다. 주로 의석 수로 법안 의결을 저지하기 어려운 소수당이 사용한다.
국회법에 따르면 필리버스터를 시작하기 위해선 재적의원 3분의 1이상이 서명한 요구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종결 동의는 24시간 뒤 재적 의원 5분의 3(180명) 찬성으로 의결한다.
한국 최초 필리버스터는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김준연 의원 체포동의안 저지에 대한 필리버스터다. 이 제도는 1973년 발언 시간 제한으로 폐지됐다가 2012년 '국회선진화법'과 함께 재도입됐다.
다수당의 독주를 막고 소수 의견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받았으나, 지난해 '여당 필리버스터→야당 강행 처리→대통령 거부권→재표결'이 무한 반복되며 '무의미한 소모전'이란 지적도 나왔다.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이 제 22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거대 양당은 당내 의견이 '강화해야 한다'는 쪽과 '대체 방식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반반 갈렸다.
질문은 '필리버스터 제도는 강화해야 하는가, 폐지해야 하는가'이며, 답변은 객관식으로 ▲필리버스터제도 강화 필요 ▲필리버스터 무용론, 폐지가 답 ▲필리버스터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식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등 네 가지다.
먼저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제도 강화 필요(50.0%) ▲필리버스터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식(40.0%) ▲필리버스터 무용론, 폐지가 답(10.0%)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0.0%) 순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필리버스터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식(45.7%) ▲필리버스터제도 강화 필요(43.5%) ▲필리버스터 무용론, 폐지가 답(8.7%)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2.2%) 순이다.
'필리버스터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식'에는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됐다.
민주당의 중진 의원들은 "정치적·정책적 충돌이 첨예한 현안에 대해선 전원위원회를 활용해야 한다", "국회 내부만의 토론에서 벗어나 시민·전문가 공론화 국민참여토론 방식으로 열린 방식을 도입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정당 간 중요 사안을 협의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합의에 기반한 의사 결정을 지향해야 한다", "시간 제한을 도입해야 한다" 등을 제안했다.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필리버스터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도 무의미한 내용으로 의사 진행을 방해하는 등의 행위에 대해 의장의 의사운영권한에 따라 일부 제지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에선 "법안과 관련 없는 주제로 장시간 이어지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발언 주제를 해당 법안과 관련된 사안으로 제한하는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필리버스터 종료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 "토론 종결권을 폐지해 과거처럼 시간제한 없이 토론을 이어갈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지역·비례별로 살펴봤을 땐 초선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비례의원들이 필리버스터를 강화해야 한다는 쪽으로 뜻을 모았다. 반면 재선 이상 비율이 높은 지역구 의원들은 ▲필리버스터제도 강화 필요(41.9%) 보다 ▲필리버스터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방식(47.3%)을 좀 더 선택했다.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교수는 "초선 의원 일수록 '제도의 도입 취지를 살리고 반대 목소리도 충분히 들어주자'는 경향이고, 다선 의원들은 '필리버스터 해봤더니 반대를 위한 반대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다른 방식으로 대체하자'며 이를 비효율적으로 보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allpass@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