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K팝은 해외에서 1조 원의 매출을 기록, 글로벌 인기를 증명했다. 하지만 기록적 수치와 함께 'K팝 위기론'도 불거지고 있다. 9년 만에 역성장한 음반 수출액과 K팝 산업의 구조적 변화와 혁신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K팝이 더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지난해 'K팝의 위기론'을 언급했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를 필두로 K팝 아티스트들이 괄목할만할 성과를 내면서 'K팝 신드롬'이 불었다. 음반과 음원을 넘어 이들의 지적재산(IP)과 뷰티, 패션이 F&B 등에 활용되며 경제적 가치까지 창출하고 있다. 하지만 K팝 산업의 이면에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다. 제일 먼저 '음반'에 대한 부분이다.
◆ 팬덤 중심의 K팝 문화…초동 경쟁으로 번지다
K팝의 위기 속에서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것이 음반 산업이다. 지난해 K팝 음반 판매량은 연간 1억장(써클차트 기준)을 넘기며 이례적인 음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K팝 문화가 팬덤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다보니 음반 판매가 곧 아티스트의 경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K팝 전용 차트 '케이팝레이더'는 지난 22일 '음반 초동(앨범 발매 후 일주일간 판매량), 케이팝 팬들의 진짜 생각은?'이라는 주제로 K팝 팬덤 인사이트를 발표했다. 케이팝레이더는 올해 6월 18일부터 7월 1일까지 블립 앱과 X(구 트위터)에서 1001명의 참여를 받아 활동기 한달 동안 5만원 미만으로 소비하는 팬을 '라이트 팬'으로, 같은 기간 5만원 이상을 소비하는 팬을 '코어 팬'으로 분류, 초동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케이팝레이더가 발표한 '음반 초동, 케이팝 팬들의 진짜 생각은?' 설문 조사 결과 [사진=케이팝레이더] 2024.07.29 alice09@newspim.com |
'아티스트가 컴백했을 때, 초동에 신경을 쓰느냐'의 질문에 59.5%의 코어 팬이 신경을 쓴다고 답했고, 라이트 팬은 44.5%가 신경을 쓴다고 답변했다. 또한 초동을 위해 앨범을 구매하거나 공동구매 이벤트에 참여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코어 팬은 81.0%가, 라이트 팬은 55.7%가 '있다'고 답했다. 코어와 라이트 팬의 각각 74.4%, 63.3%가 초동 경쟁이 지나치다고 느낀다고 응답했다.
엔터계에서는 데뷔, 컴백하는 가수들의 '초동'에 집중하는 현상이 두드려진다. 엔터계에서는 초동이 아티스트의 인기와 성장을 증명해주는 지표가 됐고, 팬덤의 입장에서는 초동이 구매력과 결집력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케이팝레이더 측은 "라이트와 코어를 막론하고 기업이 초동을 높이기 위해 불공정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초동 경쟁이 오히려 열렬히 지지하는 팬들에게 더 많은 스트레스를 주며, 과도한 소비를 강요받는다고 느끼는 것"이라며 "초동에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 받고, 돈을 쓰면서도 초동이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상술로 인해 계속해서 버려지는 앨범…"무의미한 판매 지속, 대안 필요"
초동뿐 아니라 컴백과 동시에 아티스트의 음반 판매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음반 판매는 미국 빌보드 차트의 '빌보드 200' 영향을 미친다. '빌보드 200'은 피지컬 앨범 판매량과 음원 다운로드, 스트리밍 횟수를 합산해 순위를 매긴다. 즉 한 앨범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구매되고 감상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차트이다. 이에 팬덤은 아티스트의 글로벌 성적을 위해 앨범 구매에 나선다. 또 앨범에 수록된 포토카드, 미공개 포토카드, 이벤트 응모권이 과도한 구매를 야기시키고 있다.
[서울=뉴스핌] 이지은 기자 = 세븐틴 베스트 앨범에 수록된 랜덤 포토카드 구성. [사진=위버스샵 캡처] 2024.07.29 alice09@newspim.com |
현재 팬들은 앨범에 수록된 포토카드, 미공개 포토카드와 이벤트 응모권을 위해 수많은 앨범을 구매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멤버의 사진을 구하기 위해, 오프라인 이벤트 응모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 적게는 몇십만원에서 크게는 몇 백만원을 투자한다. 그럼에도 원하는 포토카드가 나오지 않을 때 SNS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포토카드를 사고 판다. 단순히 앨범 구매에서 그치지 않고 제2의 지출로 이어지는 것이다. 제 역할을 다 한 앨범은 버려진다. 실제 지난 5월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는 그룹 세븐틴의 앨범이 길거리에 대량으로 버려져 있는 사진이 온라인에서 퍼지기도 했다.
K팝 음반 판매량은 연간 1억장을 넘기며 전성기를 맞았지만 그 이면에는 환경오염의 주범이자 과도한 판매 전략이라는 오명도 뒷따라오고 있는 실정이다. 민희진 어도어 대표는 최근 모회사인 하이브와 경영권 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랜덤 포토카드' 판매 전략에 대한 공개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룹 멤버들의 포토카드를 랜덤으로 넣어 팬심을 이용해 음반을 판매한다는 상술이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 세븐틴의 경우 베스트 앨범 '17 이즈 라이트 히어(17 IS RIGHT HERE)'는 CD 2장이 동일하게 들어갔지만 선물 구성품이 다른 앨범을 6종류나 나누어 판매했다. 특히 구성품이 다양한 디럭스 버전은 무려 8만5800원에 판매됐다. 이번 앨범은 세븐틴이 그간 활동을 총망라하는 베스트 앨범이지만, 이를 무려 6개의 버전으로 발매한 것도 세븐틴이 처음이다.
[사진= 뉴스핌 DB] |
앨범별로 가격대, 구성품이 상이하다보니 팬들 역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팬들은 엑스를 통해 "구성이 이전 앨범에 비해 뛰어나게 좋은 게 아닌데 가격이 3배 넘게 뛰어 오르니 당황스럽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앨범의 구성품 역시 모두 랜덤이기 때문에 팬들은 원하는 구성을 한 번에 얻을 수 없다. 그렇기에 원하는 구성을 맞추기 위해, 지출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소속사의 상술이 K팝 산업을 흔들고 있는 셈이다.
실제 헤비, 라이트 팬덤 역시 이러한 미공개 포토카드와 랜덤 포토카드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라이트 팬덤은 46.4%, 헤비 팬덤은 무려 70.2%(케이팝레이더 설문 기준)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응답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지난해 이 같은 판매 형태를 '부당한 끼워팔기'로 보고 조사에 나섰지만 이렇다 할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엔터계에서도 앨범 판매량이 곧 매출과 이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관행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포토카드와 같은 과도한 상업적 목적에 의해 음반의 본래 기능이 변질된 것"이라며 "현재 전 세계적으로 피지컬 음반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K팝 신드롬 이후에 이러한 흐름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의미한 앨범 판매, 중복 구매가 이어지면서 전 세계 음악 시장이 장사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K팝 역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K팝이 팬덤 위주의 소비가 된 시점에 업계에서도 이러한 문제에 대해 건전한 대안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숙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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