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심근경색·뇌졸중 환자 절반 가까이 도보로 내원
"119이용 환자만 중증 분류하면 너도나도 구급차 불러"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의료대란이 장기화되면서 정부가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3차 의료기관인 상급종합병원 문턱을 높일 방안을 모색 중이다. 시급성이 떨어지거나 경증의 경우 하급 의료기관 경유를 제도화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특히 대형병원 응급실도 구급대가 이송을 하거나 병원 간 이송만 허용하고 환자가 직접 내원하는 경우는 돌려보낼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의료현장을 모르고 "막 던지는" 정책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서울=뉴스핌] 조준경 기자 |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전문의 A씨는 정부 방침을 전해 듣고 "현재 전체 응급실 이용환자 중 20%정도가 119로 이송된다. 급성심근경색, 급성뇌졸중 환자의 2분의 1은 119를 이용하지 않고 도보로 내원한다. 자가용이나 승용차, 택시를 타고 오는 경우도 있다"며 환자가 직접 내원하는 것을 경증으로 분류하는 것은 의료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14일 지적했다.
A씨는 "비응급 경증 환자의 권역응급의료센터, 지역응급의료센터 이용을 제한한다는 것은 국민의 응급의료 이용을 제한하는 것으로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고, 사안이 간단치 않다"며 "도보 내원 환자라고 모두 비응급 경증이 아니다. 흔히 응급의학과 의사들이 얘기하는 '폭탄', 즉 급성심근경색증, 대동맥 박리, 급성 뇌졸중, 패혈증 쇼크 등 중증응급환자가 걸어 들어오는 경우 흔하다"고 설명했다.
119구급대 이송과 병원간 전원 환자만 수용한다는 방침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A씨는 "119구급대에서도 역시 비응급 경증환자를 지금도 많이 이송하므로, 이런 식의 정책이 되면 너도나도 119구급대 신고해서 대형병원 응급실 가자고 할 것"이라며 "소방공무원인 119구급대가 이송 거절하기도 쉽지 않지만, 이송 거절하면 사설 구급차를 불러서 이송료를 내고서라도 대형병원 응급실 가려고 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국 도보환자 내원 불가 방침이 풍선효과로 오히려 119구급대의 업무량을 가중시키고, 중증응급환자 등에 대한 대응에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A씨는 "지역응급의료기관이나 2차병원에서는 치료 종결을 하지 못하게 되고, 더하여 대형병원 보내 달라는 환자와 보호자의 전원 요구를 거절하기도 어려운 민간 병원 의사들은 진료의뢰서 써 달라는 업무 부담과 걸어 들어 온 '폭탄' 즉 중증응급환자의 전원 의뢰에 대한 과중한 부담만 지울 것"이라며 "무슨 정책이든지 선한 정책 의도만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정교하고 세밀하게 정책이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A씨는 응급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선 중증도에 따라 본인부담률 차등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19구급대가 이송해도 pre-KTAS(119 구급대가 환자 중증도를 분류하는 기준) 4, 5등급이고 응급실에서도 KTAS 4, 5등급으로 판단된 환자에 대하여는 본인부담률을 인상한다든지, KTAS 4, 5 등급 비응급 경증 환자의 대형병원 응급실 진찰료 수가를 별도로 만들어서 추가 부담하게 해야한다. 같은 등급에서 최종치료 결과가 응급실 퇴원인 환자는 건강보험에서 급여를 제공하지 않고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KTAS 4, 5 등급 비응급 경증 환자의 경우 적극적으로 응급진료 거부 금지의 예외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이나 시행령, 시행규칙에 명문화하는 방법으로 병원과 의료진을 보호해야 자연스럽게 경증환자의 응급실 이용이 줄어든다"고 제언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도 "응급의료 전달체계와 관련해서는 정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데 정부가 그냥 '막 던지고' 있다"면서 "대형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는 경증 환자들 중에서 줄일 수 있는 환자군이 어떤 유형인지를 우선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무조건 걸어오는 사람을 제한하겠다는 것은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calebca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