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가 상승에도 가격 인상 틀어막고 부정적 낙인 '불만'
김 한 장 뺀다고 새 포장재 주문할까 ..실효성 '글쎄'
내년도 사업계획에도 제동...또 허리띠 졸라매나
[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 정부가 꼼수인상이라고 저격한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용량 축소·shrinkflation) 제재 강화에 나선 가운데 식품업계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소비자 알권리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가격을 올린 기업에 망신을 주겠다는 것 아니냐는 해석과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전날 경제부총리 주재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슈링크플레이션 등에 대한 정보 제공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제품 용량을 줄여 가격인상 효과를 꾀하는 전략이다.
이번 정책의 골자는 생활필수품 용량·가격·성분 변경 사항을 포장지나 홈페이지 등에 고지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변경 여부를 알리지 않을 경우 기업에 제품당 최대 3000원의 과태료를 물리기로 했다. 내년 1월까지 해당 내용을 담은 고시개정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한국소비자원은 슈링크플레이션 실태조사를 통해 적발한 37개 제품의 이름을 공개했다. CJ제일제당, 동원F&B, 서울우유협동조합 등이 지목됐다. 식품업계를 정조준한 셈이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라면코너의 모습. [사진=뉴스핌DB] |
식품업계에서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가 제품 용량까지 세밀하게 관여하는 것은 과도한 개입이라는 반발이다. 또 통상 연 단위로 대량 제작하는 포장재를 용량·가격·성분 변경사항을 알리기 위해 전면 교체하는 조치는 효과나 비용 면에서 효율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앞서 슈링크플레이션 사례로 꼽힌 동원F&B는 양반김 용량을 기존 10장에서 9장으로 줄였고 서울우유는 200g짜리 슬라이스 치즈 한 장 용량을 180g으로 낮춘 바 있다. 원재료비를 감당하고자 용량을 소폭 조정한 것인데 이를 단순 고시하기 위해 새 포장재를 제작하느니 용량 줄이기를 포기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 업계 의견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용량 축소를 두고 정부는 꼼수라고 하지만 업체 입장에선 원가 상승에도 가격 인상 없이 소비자 부담을 낮추는 고육책"이라면서 "이미 합리적 소비자들은 꼼꼼하게 살펴보고 제품을 구매하는데 이를 정부가 직 관리하겠다는 것은 과도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제품에 용량 변경 사항을 표기하려면 포장라벨을 아예 바꿔야 한다"며 "식품 용량 줄여서 얻는 이익과 포장지 변경 비용 등을 감안하면 업체가 선뜻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슈링크플레이션 제재에 대해 '가격 인상 억누르기'라는 견해도 나왔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가격인상과 관련된 것은 그 무엇이든 하지 말라는 메시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소비자원 적발 명단을 보면 용량 축소를 미리 알린 업체도 포함시켜 망신을 줬다"며 "이런 분위기에서는 포장재에 명시하든 홈페이지에 알리든 용량축소를 하는 순간 부정적인 낙인을 피할 수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가격 인상 억누르기'를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느냐다. 정부가 연초부터 가격 인상을 제재하면서 지난 1년간 인상요인이 누적된 데다 내년도 인건비와 공공요금 인상이 예정돼 있는 등 연말 원가부담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식품업체들의 원가율은 70~80%, 영업이익률은 5% 내외로 여타 산업군 대비 원가비중은 높고 이익률은 낮은 편에 속한다.
식품업체들의 내년도 사업계획 준비에도 제동이 걸렸다. 일각에서는 'K푸드'열기가 뜨거운 만큼 글로벌 사업 확대를 위한 투자, 마케팅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에서 유독 식품업체에 과도한 희생을 강요한다는 푸념도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와 마찬가지로 내년에도 허리띠 졸라매기가 불가피하다"며 "규제를 적당히 풀어줘야 돈을 벌고 이를 재투자하며 성장할 텐데 정부는 규제를 계속 늘리면서 한편으론 K푸드를 지원한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꼬집었다.
romeok@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