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한의원 넘어가며 '무법 지대' 생긴 삭센다
소규모 도매업체 목표치 달성 위해 밀어넣기
의학계서도 해당 문제 관심 없어
[서울=뉴스핌] 방보경 기자 = 비만치료제 '삭센다'가 치과나 한의원 등에 처방된 상황이 구조적으로 예견됐다는 진단이 나온다. 국내는 유독 의약품 도매업체가 난립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대한 제제도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각 의사협회에서조차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2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의약품 유통사 '쥴릭파마코리아'는 치과, 한의원, 한방병원에 비만치료제 '삭센다'를 납품한 도매상에 공급을 중단하기로 했다. 해당 기관에서 삭센다를 처방하는 것은 의사의 면허 범위를 넘어서는 만큼 의료법 위반이므로 이를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같은 삭센다 불법 처방은 지난 2020년부터 이뤄진 것으로 올해 국정감사에서 확인됐다. 삭센다의 인기를 활용한 '무법 지대'가 존재한 셈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연숙 국민의힘 의원실 관계자는 "삭센다는 대체적으로 처음에 어떻게 투여하는지만 가르쳐주기 위해 원내에서 처방하고, 이후에는 반복적으로 처방받아 시간이 지날수록 약국에서 공급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그럼에도 한의원과 치과의원에 들어가는 양은 오히려 늘거나 크게 줄지 않았다"라고 설명했다.
[사진=로이터] |
업계에서는 의약품 도매업체 간 과당경쟁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원인으로 꼽는다. 매출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 치과나 한의원까지 판로를 확대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삭센다는 학회나 병원가에서 타 의약품보다 인기를 끄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물량을 납입한 셈이다.
소규모 도매업체들이 무리하게 목표치를 달성하려는 상황은 해외에서는 상대적으로 덜하다. 시장이 독과점으로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약품도매 빅3인 맥케슨(McKesson), 아메리소스버겐(AmerisourceBergen), 카디널헬스(Cardinal Health)가 유통 시장 95퍼센트를 점유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연합(EU) 등도 상위 3개사가 대부분의 매출을 담당한다. 업체 간 인수합병(M&A)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지형이 형성됐다.
반면 국내 의약품 도매업체 수는 시장에 비해 과도하다는 분석이 많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의약품 도매업체는 4490개에 달한다. 지난 2011년 2300개에서 두 배 늘어난 수치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 연간 매출이 27조~28조원이지만 (도매업체 중) 연매출 1000억원을 넘기는 회사가 80곳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도매업체의 난립은 제약사, 판매대행업체, 의사 3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판매대행업체들은 일반적으로 은퇴한 영업사원들이 설립한다. 국내 제약사가 난립하는 만큼 도매업체 숫자도 자연스럽게 늘어난 셈이다. 제약사들은 최근 과도해진 리베이트 규제를 피하기 위해 도매업체에 외주를 주며 간접 영업을 한다.
리베이트 조사가 면밀히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도 문제로 꼽힌다. 의약품 회사들은 규모가 아무리 커져도 중견업체 수준에 머무른다. 그러다 보니 감사나 압수수색도 잘 알려진 업체에서만 이뤄질 뿐, 구성원이 적은 회사들의 이슈는 자연스럽게 묻힌다.
도매업계는 물론 의학계 내부에서도 자정 작용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대한한방병원협회 등에서는 삭센다 불법 처방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 협회 관계자는 "해당 이슈에 대해서 완전히 처음 듣는다"며 "한의사와 양의사가 같이 있는 병원이라면 삭센다를 들이는 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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