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장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 만들자"...기술리더십
신경영 30년주년, 현 시대 맞는 강력한 리더십 요구돼
[서울=뉴스핌] 김지나 이지용 기자 = "아무리 생각해봐도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 같습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해 유럽출장에서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전장 등 미래 신성장 분야 현장을 살피고 귀국 후 취재진과 만나 이 같이 말했다.
이후에도 이 회장은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는 말을 남기며 초격차 기술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는 한편 인재육성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기술을 강조하는 초격차 기술과 인재를 중시하는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선대회장들이 반도체·스마트폰 등 앞선 기술을 무기로 삼성전자를 키워온 정체성과도 맥이 맞닿아 있다.
◆위기 속 기술 투자..."미래기술 투자 흔들리면 안돼"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회장 취임 이후 공격적인 시설·연구개발(R&D) 투자 행보에 나서고 있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의 시설 투자 규모는 25조3000억원(반도체 23조2000억원·디스플레이 9000억원)에 이른다. 이것은 역대 최대 규모다. R&D에도 13조8000억원이 투자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10월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2022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 고양' 폐회식에서 사이버보안 종목 수상자들에게 메달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
글로벌 경기침체 및 반도체 업황 악화란 각종 위기 속에서도 기술 우위를 놓치지 않기 위해 내부적 노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삼성전자 온양·천안캠퍼스를 방문해 "어려운 상황이지만 인재 양성과 미래 기술 투자에 조금도 흔들림이 있어선 안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기술 및 인재 육성에 대한 의지를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것은 국내외 기능경기대회 후원이다. 삼성전자는 청소년 교육 CSR 활동의 일환으로 전세계 산업 발전에 기여할 청년 기술 인재 육성과 기술 인력 저변 확대를 위해 기능경기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삼성은 2007년 1월부터 '삼성기능올림픽사무국'을 신설해 기술인력 후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전기·중공업·SDI·디스플레이·바이오로직스·물산, 에스원 등 관계사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 출전한 숙련기술 인재를 매년 특별채용하고 있는데, 2007년부터 2021년까지 14개 관계사에선 1424명을 채용해 연평균 약 100명의 숙련기술 인재를 채용했다.
작년 10월 한국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 고양' 폐막식에 참석한 이재용 회장은 "젊은 인재들이 기술 혁명 시대의 챔피언이고 미래 기술 한국의 주역"이라며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젊은 기술 이재 덕분"이라고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 같이 인재를 중시하는 이 회장의 모습은 '인재경영'을 해 온 선대회장들의 경영철학과 일맥상통한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자서전 '호암자전'을 통해 "'인재제일'은 나의 신조이며, 인사정책은 언제나 삼성의 경영정책 중 최우선 위치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또 이건희 선대회장은 1997년 출간한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경영자는 자기 일의 반 이상을 인재를 찾고 인재를 키우는데 쏟아야 한다. 아무리 우수한 사람도 엉뚱한 곳에 있으면 능력이 퇴화한다. 그리고 한번 일을 맡겼으면 거기에 맞는 권한을 주고 참고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 사업구조 한계 봉착...강력한 리더십 필요
아쉬운 점은 이 회장이 기술과 인재를 강조하는 경영철학을 제시하며 선대 회장들의 바통을 이어받고 있지만, 삼성전자의 변화가 필요한 현 시점에 조직을 뒤흔들고 조직의 대대적 변화를 추진할 만 한 강한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30년 전인 1993년 이건희 선대회장은 삼성의 위기를 간파하고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삼성 임원들을 소집해 '신경영'을 선언했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자"는 강력한 메시지와 함께 "양을 버리고 질로 간다"는 삼성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후 이건희 선대회장은 10%가 넘는 무선전화기 15만대를 구미공장에서 불태우는 '화형식'을 전개했고, 생산라인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 멈추는 '라인 스톱제'도 도입했다. 그로부터 시작된 삼성의 변화는 2023년 연매출 300조원의 글로벌 삼성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그리고 지난 6월 신경영 선언 30주년 및 이재용 회장 취임과 맞물려 이재용 회장이 신경영에 버금갈 만한 '뉴삼성'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특별한 메시지 없이 조용하게 지나갔다.
재계 관계자는 "10년 전 삼성전자가 피크를 찍었다면, 10년 동안 회사가 많이 쪼그라들었고, 삼성의 사업구조는 한계에 봉착했다"면서 "이 회장이 회장이 된 지 1년이 됐는데 첫 번째로 받아든 성적표가 좋지 않은데 여기서 잘 상황을 되짚어 나가야 다시 반전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철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구글이 1년에 50개 이상 기업들을 인수하는 반면, 삼성은 바이오 이외에는 최근 10년째 새로 시작한 큰 사업이 없다고 봐야 한다"면서 "이재용 회장이 글로벌 네트워크 역량이 있는 만큼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할 수 있는 내부 조직을 꾸려 공격적인 M&A(인수합병)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했다.
abc123@newspim.com leeiy522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