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박성준 기자 = '절제되고 기품 있는 언어 구사 능력이 대통령의 첫 번째 자질과 능력이다.' 원로 정치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대통령의 자격'이라는 책에서 주장한 건데, 대통령뿐 아니라 공직자나 정치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윤 전 장관은 '언어는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바로 인간 자체'라는 말도 했다.
태영호 최고위원은 지난 전당대회 제주 합동연설회에서 "4·3사건이 북한 김일성의 지시로 촉발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상처 치유의 노력조차 부정하는 역사의 퇴행일 뿐 아니라 사실에도 맞지 않는다.
4·3사건은 1947년 삼일절 기념대회에서 기마경찰의 말에 아이가 치였는데, 항의하러 모인 시민을 향해 경찰이 발포한 게 발단이다. 이후 극우단체의 과잉진압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4·3사건 발생 55년 만에 당시 국가 권력의 잘못에 공식 사과까지 했다.
이 가운데 김재원 최고위원은 4·3사건 추념식이 격이 떨어진다고 발언해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결국 그는 당분간 공개 활동을 모두 중단하기로 했다.
박성준 정치부 기자 |
조수진 최고위원은 야당이 강행 추진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대안으로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캠페인을 제안해 논란을 빚었다. 쌀 소비량을 늘리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단순하게 의무매입만을 담고 있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소비 촉진만으로는 대안이라고 할 수 없다. 또 인식 개선 등 캠페인만으론 법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조 최고위원은 "경위야 어찌됐든 당에 어려움을 가중시킨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조 최고의원은 새 지도부의 민생특별위원회인 '민생119'의 위원장이기도 하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자신의 실언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야당은 물론 제주도민이나 유족 등도 태 최고위원의 사과를 촉구했지만 그는 "어떤 점을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사실상 사과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조 최고위원은 유감을 표명하긴 했지만 "발언 맥락이 왜곡되지 않길 바란다"며 끝까지 본인의 주장을 방어했다. 앞서는 "언론이 제일 큰 문제"라며 적반하장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정치인은 '말하는 사람'이다. 정치에서 말은 강제를 다루기 때문에 특히 무섭다. 정치인의 말을 두고 논란이 생기는 건 그 말이 갖는 힘 때문이다. 법안을 만들 때 취지 설명부터 심사까지 사실상 말로 이루어진다. 법안이 통과하면 강제력을 가진, 누군가를 구속하고 처벌할 수 있는 법이 된다. 그때는 실언은커녕 무지도 용서받지 못한다. 정치인의 말은 단순한 겉치레가 아니라 정치 역할의 본질인 셈이다.
정치인이 사실과 다른 말을 하거나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할 때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인기에 민감한 정치인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치적 목적 때문에 엉뚱한 발언을 서슴없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치인의 발언을 사후 검증해 책임을 묻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 말이나 해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국회의 모습이 '정치혐오'를 낳았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절제되고 기품 있는 언어 구사 능력이 대통령(정치인)의 첫 번째 자질과 능력'이라는 윤여준 전 장관의 말을 다시 생각해본다. 이들의 자질과 능력은 국민이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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