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무부, 반도체 기업 영업기밀까지 요구
중국 견제용 이면엔 자국 경쟁력 확충 의도
한미 통상장관 회동에도 제도 수정 난항
[세종=뉴스핌] 이경태 기자 = 한·미 통상장관이 한 자리에 앉았다. 한미 동맹 70주년을 맞아 양국이 무역, 투자, 경제협력에서 다양한 논의를 하기 위해서다.
다만 직면한 과제가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수출의 대표 산업인 반도체와 관련 미국의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숙제가 당면과제다.
◆ 갈수록 강화되는 미 반도체규제…상투 잡힐까 기업들 '전전긍긍'
미국의 반도체지원법(CHIPS Act)의 대상이 되는 한국기업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반도체지원법 자체적으로는 미국 본토에 생산시설 등을 구축하는 등 투자를 할 때 그에 상응하는 지원을 해주겠다는 제도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기업은 미국의 제도 하에 투자를 확대하는 게 고민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수익을 창출했을 때 일부를 다시 내놔야 한다. 여기에 미국이 제시하는 가드레일이 최종적으로 적용되면 중국 내 투자하는 반도체 생산 확대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여기에 미 상무부는 최근 반도체 보조금 신청을 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엑셀 파일 형태로 수익성 지표를 제출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예상 현금흐름 등에 대한 산출 방식을 검증하겠다는 의도다.
반도체 웨이퍼 수율, 연도별 생산량, 연구개발 비용, 공장 운용 인건비 등 자료가 포함돼다보니 기업의 영업기밀을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더니만 이제는 아예 상투를 잡으려 든다"며 "반도체지원법 전체적으로 보면 결국 자본을 투자해 지분을 얻고 기업 정보를 확보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전했다.
수십년에 걸친 한국 주요 수출 산업의 경쟁력까지 차지하고 싶은 것 아니겠느냐는 비난도 이어진다. 이렇다보니 관련업계는 실제 미국에 대한 투자를 어떤 수준에서 해야 할 지 고심중으로 알려진다. 일각에서는 이런 조건이라면 투자 매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겠냐는 반응도 나온다.
민간경제연구원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모두 기업의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미 정부와 실제 계약시 조건이 다르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주요 정보를 제공하게 되기 때문에 판단이 쉽지 않아 보인다"며 "이 부분은 기업의 계약보다는 정부간 소통을 해서 풀어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 겉으론 중국 견제용·속으론 기술 흡수…한미 협력 속 해법 찾기 '난항'
한국 정부도 일단 미국 정부에 대한 다각적인 요청 방안을 찾고 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31일 오후 2시 서울에서 캐서린 타이(Katherine Tai)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났다.
[워싱턴 로이터=뉴스핌]김근철 기자=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지명자가 25일(현지시간) 상원 인준 청문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2021.02.26 kckim100@newspim.com |
한·미 통상장관이 우리나라에 회동한 것은 2021년 11월 이후 1년 4개월 만이다. 타이 대표는 서울에서 열린 '민주주의 정상회의' 인태지역 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이번 회의를 계기로 한·미 간 통상현안을 점검하고 협력방안도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통상 주무부처인 산업부 역시 이번 반도체지원법 관련 미국의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한국 기업의 상황을 알릴 계획이다. 이를 통해 규제를 낮추고 상호 시너지 효과를 얻는 방안을 제시하는 등 미 정부 설득에 적극 나선다는 입장이기도 하다.
안덕근 본부장 역시 "미국의 반도체지원법 재정 인센티브의 세부 지원계획과 가드레일 조항이 우리 기업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지 않도록 우리 정부와 기업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노려할 것"이라며 "한·미 간 반도체 협력을 확대할 수 있도록 양국이 긴밀히 협의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다만 이같은 우리나라 정부의 요청 미 반도체지원법의 세부조항을 바꿀 수 있을 지에 대해 기대가 크지 않은 분위기다.
미국의 반도체지원법의 타깃 자체가 사실상 중국 견제이다보니 일부 조항을 수정할 경우, 미국 측 역시 당초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할 수 있어서다.
더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한국기업의 영업기밀까지 확보해 자국의 반도체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보태기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주력 수출 품목인 반도체마저 제동이 걸리면 한국 산업의 가장 큰 기둥이 흔들릴 수 있다"며 "반도체지원법 자체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내놓고 있는 미국의 생각을 바꾸고 다른 산업에도 후폭풍이 생기지 않도록 할 만한 묘안이 있을지가 의문"이라고 전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한국 산업을 맨 앞에서 이끌어가고 있는 반도체 산업 이외에 여지껏 이를 대체할 산업이 성장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칫 반도체 시장의 헤게모니를 모두 빼앗길 수 있다"며 "일방적인 요구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대응했다가는 산업 자체가 힘을 잃을 수 있는 만큼 필요한 모든 수를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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