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위험' 안도감 속 '가격 변동 리스크'는 간과
미국 은행 자산 시가평가하면 절반이 자본 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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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이홍규 기자 = 2008년 이른바 '리먼 쇼크' 이후 세계 주요 은행은 자기자본을 강화했기 때문에 금융위기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불과 한 달 전까지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SVB와 시그니처뱅크의 파산, 크레디트스위스(CS)의 구제 합병에 이르기까지의 은행들의 '초고속 연쇄 붕괴'는 이런 상식을 뒤엎었다.
◆ 방아쇠는 SNS발 뱅크런, 발단은
정부와 중앙은행이 나서 은행권 경영 불안을 진화하려고 했지만 불안감은 다른 은행으로 옮겨붙는 분위기다. 투자자와 당국자가 안심하는 사이 물밑에서는 새 위기가 싹트고 있던 것일까.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새 위기의 서막이었을까. 최근 시그니처와 SVB, CS의 연쇄 붕괴 이면에 대한 분석으로 관련 물음의 답을 알아보고자 한다.
크레디트스위스 로고 [사진=블룸버그통신] |
최근 일련의 은행 붕괴극은 '서브프라임론'이라는 특정 상품이 진원지가 된 리먼 쇼크와는 다른 성격을 띤다. 사업에 대한 의구심 속에서 소셜미디어에서 불안감이 확산한 것이 '뱅크런'을 일으켜 순식간에 파국으로 몰아넣은 게 특징이다. 또 은행의 유동성 면에서 큰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있었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다.
특히 CS는 자기자본 비율이 당국의 기준보다 높은 데다가 업계에서도 상위권에 속해 재무적으로는 오히려 건전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번 연쇄 봉괴극은 정보가 빠르게 확산하는 소셜미디어 시대에서는 아무리 건전하다고해도 신뢰를 잃으면 초고속으로 몰락할 수 있는 은행업 위험성의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실 이번 붕괴극의 방아쇠는 소셜미디어발 뱅크런이었다지만 발단은 따로 있다. 보유 채권의 평가손실(SVB)과 경쟁력 확보에 실패에 따른 예금 감소(CS)다. 각기 다른 이유로 보이지만 현재 모두 은행권 직면한 위험과 과제라는 점에서 함의가 있다. 종전보다 은행권의 자본비율이 건전해졌다는 이유로 개별 문제로 국한해 볼 사안은 아니라는 얘기다.
◆ 미국 은행 절반이 자본 잠식?
SVB의 파산은 리먼 쇼크 이후 금융 규제로 '신용 리스크'가 작아졌다고 해도 '가격변동 리스크'는 여전하다는 점을 각인시켜준 사례다. 그동안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를 가지고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금리 상승에 의한 채권 가격 변동의 위험성은 간과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동안 잊혀진 불편한 진실이다.
그렇다면 다른 은행은 안전할까. 이달 24일 SSRN에 게재된 '2023년 통화긴축과 미국 은행의 취약성: 시가평가 손실과 비보험 예금자의 이탈?' 논문에 따르면 미국 은행 4800여곳의 자산(국채 등 보유 유가증권과 부동산 대출과 일반 대출 등 한정)을 시가평가하면 2조2000억달러의 손실이 발생하고 절반에 가까운 2315곳의 자기자본이 '마이너스' 상태(자본잠식)가 된다고 한다.
또 시가평가 손실액이 2조2000억달러인 반면 은행권의 자기자본은 2조2000억달러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 평가대로라면 미국 은행권은 시가평가 상 파산에 가까울 정도로 부실한 상태에 있는 셈이다. 논문 저자들은 "은행 대차대조표 상의 모든 자산이 아니라 부동산 대출과 기타 자산, 유가증권 및 대출의 가치만 하향 조정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우리의 추정치는 보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은행 다수가 이자율 헤지를 하고 있고 자산 모두가 시가평가 대상도 아니며 금리 상승기에는 손실만 일방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수익도 발생하는 만큼 관련 조사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관련 논문은 은행 자산이 그만큼 취약한 상태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SVB 사태에서도 시가평가 대상이 돼 평가손실이 발생한 채권 등 유가증권은 보유분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②편에서 계속
SVB 로고 [사진=블룸버그통신] |
bernard0202@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