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낵 경제 정책, 이르면 오는 31일 윤곽
증세·긴축으로 재정 손보기..."어려운 결정" 예고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전임 리즈 트러스의 성장 추구는 틀리지 않고 숭고한 목표이지만 몇 가지 잘못을 했다. 나는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당 대표와 당신의 총리로 선출됐다. 즉시 일을 시작하겠다"
25일(현지시간) 제57대 영국 총리로 취임한 리시 수낵이 첫 대국민 연설에서 한 발언이다.
수낵 총리 앞에 놓인 과제는 그야말로 산적해 있다. 그가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지난 2020년 2월부터 올해 7월까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천문학적인 재정을 풀던 초저금리 시대였다면 지금은 정반대다.
리시 수낵 신임 영국 총리가 총리실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첫 대국민 연설을 하고 있다. 2022.10.25 [사진=로이터 뉴스핌] |
그는 트러스가 일으킨 시장 혼란을 잠재워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10%가 넘는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에너지 위기도 대응해야 한다.
◆ '경제 전문가' 총리 취임에 시장 안도..."트러스 악몽 전으로"
리즈 트러스 전임 총리의 임기는 영국 정치 역사상 최단명인 불과 44일이었지만 그가 금융시장에 불러온 후폭풍은 상당했다. 재정 충당 계획이 없는 감세안 발표가 나오자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폭락했고 국채금리는 폭등했다.
현재 금융시장은 수낵의 총리 취임에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날 파운드 대비 달러 환율은 1.66% 상승한 1.147달러로 지난 9월 15일 이래 가장 강력한 수준으로 회복했다. 30년물 국채(길트 채권) 수익률은 3.67%로 트러스가 '미니' 감세안을 발표한 지난 9월 23일 기준 3.75%에서 0.08%포인트(p) 내렸다.
전문가들은 이번 시장 반등이 단기적인 현상이라고 일축한다. 콘베라의 선임 시장 분석가 조 마님보는 "파운드화는 짧은 '허니문' 반등 시기를 지나고 있다. 영국 경제 앞에 놓인 험로가 파운드화 가치 상승을 제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안다의 선임 시장 분석가 에드워드 모야는 "이번 길트채 수익률 하락은 미국 경제 지표가 악화한 것이 도움이 된 사례"라며 수낵 총리의 향후 경제 정책에 대한 기대감 보다는 8월 미국 주택가격이 두 달 연속 하락하면서 달러 강세가 주춤한 영향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영란은행(BOE) [사진=로이터 뉴스핌] |
이제 '트러스 악재'는 지나갔다며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영국의 자산운용사 애버딘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제임스 애시는 "지난 한 달 동안은 악몽 같았지만 지금은 트러스 이전으로 회복했다"며 "트러스가 촉발한 영국 금융기관의 신뢰 훼손 우려는 더 이상 시장의 초점이 아니다. 투자자들은 이제 경제 지표와 영란은행(BOE)로부터 길트채 향방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ING의 금리 전략가 앙투안 부베는 "금융시장은 수낵이 전직 재무장관으로써 증세 정책을 잘 설계해 국가재정 운영에 잘못을 범하지 않길 바라고 있다"고 발언했다.
◆ 트러스 감세안 전면 폐기...법인세 등 인상·국방예산 감축 가능성
수낵 정부의 경제 정책은 오는 31일로 예정된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의 하원 예산안 발표에서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수낵이 이날 제레미 헌트 재무장관과 예산안을 놓고 경제 정책을 논의한다고 보도했다.
수낵은 엎질러진 전임 총리의 정책을 바로 잡아야 하는 만큼 예산안 발표 일정 연기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다. 다만, 늦어도 내달 3일로 예정된 BOE 통화정책회의 전에는 예산안 발표가 있을 전망이다.
수낵 자신도 "어려운 결정들을 내려야 한다"며 "정부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 빚을 우리 아이와 손주 등 다음 세대에 떠넘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당장 허리띠를 졸라매 재정건전성을 우선 챙기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영국 정부가 2026~2027년까지 직면할 재정 부족은 400억파운드(65조원)로 추정된다.
영국 매체들이 수낵의 경선 공약들을 분석한 결과 수낵은 트러스 감세안을 전면 폐기하고 세금 인상과 긴축에 돌입, 국방부 예산을 줄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로이터는 "수낵이 지난 여름 보수당 경선 때 인플레이션에 통제되기 전까지 어떠한 감세도 없다고 했다"며 "당시에 그는 오는 2029년까지 소득세를 현행 20%에서 16%로 인하하겠다는 장기 계획만 내놨다"고 상기했다.
수낵은 지난 경선 당시 법인세율을 19%에서 25%로 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번에 이 공약을 지킬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영국 런던 다우닝가를 걷는 제러미 헌트 재무부 장관. 2022.10.25 [사진=로이터 뉴스핌] |
더타임스는 수낵이 국방예산 감축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전임 트러스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방위비 분담금을 오는 2030년까지 3%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는데 수낵 정부가 현행 2%를 유지한다면 향후 8년간 약 1570억파운드(약 258조원)의 재정을 아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재정긴축을 위해 병원, 철도와 같은 기간시설 사업과 복지 예산을 축소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 경선 때 그는 공공의료 재원 확충을 위해 국민보험 분담금 비율을 1.25%포인트(p) 인상하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
수낵은 천정지로 치솟은 에너지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도 전기요금 부가가치세(VAT)를 일시 면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 경선 때 그의 공약 중 하나였다. 당시 그의 지지자였던 그랜트 섑스 당시 교통부 장관은 VAT 면제가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다른 경선 후보들의 지적에 적극 변호한 바 있다. 섑스는 수낵 내각에서 사업·에너지·산업전략 장관으로 임명됐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