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금융사기 9월 피해액 316억원…4년만 최저
추적 피해 차량에 싣고 다니는 '인간 중계기'까지
[서울=뉴스핌] 이정윤 기자 =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범죄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되는 번호 '변작 중계기'가 최근 전국에서 1만대 가까이 적발됐다. 경찰이 변작 중계기 단속에 집중한 결과 보이스피싱 피해금액을 4년여 만에 최소 수준으로 낮췄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 4~6월까지 대포폰·번호 변작 중계기 등 전화금융사기에 주로 활용되는 8대 범행수단 특별단속을 통해 전국에서 중계기 총 9679대를 적발했다고 18일 밝혔다.
지난 한 달간 전화금융사기 피해 건수와 피해액이 1289건, 316억원을 각각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피해액은 2018년 6월(286억원) 이후 만 4년3개월 내 최소치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은 지난해부터 추진하고 있는 예방·검거·협업이란 세 가지 입체적 대응체계가 효과를 내고 있고 그 중에서도 예방적 수사에 집중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경찰은 중계기 단속이 보이스피싱 피해 감소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봤다.
(사진=경찰청) |
보이스피싱을 당하는 피해자들은 070으로 뜨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올 경우 사기나 스팸전화라고 생각해 받지 않지만, 이처럼 010으로 걸려오는 번호는 저장이 되지 않았더라도 일단 받는 경우가 많다. 번호 변작은 이 같은 심리를 악용하는 대표적 보이스피싱 범행 수법이다.
중계기는 해외에서 발신한 문자메시지가 중계기를 거쳐 010 문자메시지로 둔갑하는 문자금융사기에서도 핵심 수단으로 활용된다. 불특정 다수에게 문자메시지를 무차별 살포한 뒤 답장하는 사람에게 신분증 사진, 신용카드 사진을 요구하고 원격제어 앱 설치를 유도하는 수법이다. 흔히 발생하는 '엄마 나 휴대전화 액정 깨졌어'와 같은 메시지가 대표적인 문자금융사기 사례다.
최근에는 USB 포트 형식 중계기나 태양광 패널·무선 라우터·이동형 대형 배터리를 연결하는 등의 새로운 사례가 발견되고 있다. 범죄 조직에 중계기 공급·유통조직에 통신기술 분야의 전문가들이 포함돼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중계기를 은닉하는 장소나 방법도 계속 발전하는데 ▲산속 중턱이나 폐건물 옥상에 태양광 패널을 연결해서 설치 3배터리를 연결해 고가 밑 땅속에 파묻어 설치 ▲건설현장 배전 설비함 내 또는 건축 중인 아파트 환기구 내부 ▲아파트 소화전 내 ▲개집 내 ▲도로 충돌 방지벽 옆 수풀 속 등이 그 사례다.
더 나아가 아예 차량이나 오토바이에 중계기와 배터리를 싣고 다니거나, 가방 안에 휴대전화 다수를 넣고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속칭 '인간 중계기'까지 나오고 있다.
개집 내 중계기를 숨긴 사례. 평소에 살펴보지 않는 곳에 중계기를 설치하고 전원 공급을 위해 배터리 등과 연결했다. (사진=경찰청) |
이 때문에 중계기 단속은 쉽지 않다. 통신사로부터 의심 번호 위치값을 보내주면, 경찰관이 해당 지역에 출동해 오차를 좁혀가며 전파탐지기로 중계기를 적발해 내는 방식이다.
경찰은 적발한 중계기를 철거하면서 동시에 실시간으로 보이스피싱 피해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통화 상대방에게 직접 안내해 피해 발생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국민 대부분이 전화금융사기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은 10년 전과 완전히 다르다"며 "사투리를 쓰는 경우는 아예 없고 전화번호 변작, 악성 앱 등 최첨단 통신기술까지 사용하기 때문에 모르면 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j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