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전후 업무 구분과 근로의 가치 평가 등 했어야"
[서울=뉴스핌] 김현구 기자 = 승진 전후 수행하는 업무에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승진 발령이 무효가 됐다면, 발령 이후부터 취소 이전까지 얻은 임금 상승분을 부당이득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부당이득 여부를 판단할 시 단지 직급 상승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내용과 보직의 차이 유무, 직급에 따른 권한 책임 정도를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한국농어촌공사 직원 A씨 등이 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0일 밝혔다.
대법원 [사진=뉴스핌 DB] |
앞서 공사는 2003~2011년 승진시험의 문제출제 및 채점 등을 B업체에 위탁했다. 2013년 일부 공사 직원이 사전에 시험문제와 답을 제공받아 시험에 합격하고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고, 공사는 이들의 승진발령을 취소하고 해고했다.
이후 공사는 A씨 등의 승진발령은 중대한 하자가 있어 무효라며, 이들이 승진일부터 승진취소일까지 승진으로 인해 수령한 급여는 법률상 원인 없이 수령한 '부당이득'에 해당한다고 보고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A씨 등은 승진발령이 무효라고 하더라도, 승진한 직급에 상응하는 근로를 제공했으므로 해당 기간 수령한 급여는 부당이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1심은 A씨 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비록 A씨 등이 부정한 방법으로 승진해 각 승진발령이 무효라고 하더라도, 이들이 3급 또는 5급 직원으로서 해당 업무를 수행하고 공사로부터 급여를 지급받은 이상, 법률상 원인 없이 공사의 재산으로 인해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거나 그로 인해 원고에게 어떠한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공사는 A씨 등이 부정한 방법으로 승진했음에도 직급에 따른 근로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급여 상승분이 부당이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며 항소했지만, 2심은 이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신의성실의 원칙은 법률관계의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를 행사하거나 의무를 이행해서는 안 된다는 추상적 규범"이라며 "공사의 주장은 청구원인 사실을 부인하는 진술에 불과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되는 권리의 행사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만약 A씨 등이 승급했음에도 직급에 따라 수행한 업무가 종전 직급에서 수행한 업무와 차이가 없다면 표준가산급과 관련해 단지 승진으로 직급이 상승했다는 이유만으로 급여가 상승한 것이 되고, 이는 승진가산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이어 "따라서 A씨 등의 승진이 중대한 하자로 취소돼 소급적으로 효력을 상실한 이 사건의 경우 A씨 등은 승진 전의 직급에 따른 표준가산급을 받아야 하고, 승진가산급도 받을 수 없게 된다"며 "A씨 등이 승진 후 받은 이 사건 급여상승분은 법률상 원인 없이 지급받은 부당이득으로서 원고에게 반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사의 연봉제규정 내용에 따르면 표준가산급은 직원이 1년 근속할 때마다 1년 근속한 자체에 대한 기여를 고려해 가산되는 임금이다.
공사 직원의 기본연봉은 연봉재산정사유 발생 이전 기본연봉에 표준가산급, 임금교섭에 따라 증감하는 금액, 직무급을 합산한 금액으로 하며, 직원이 상위 직급으로 승진한 때에는 발령일 직전에 지급받던 기본연봉에 승진한 직급에 따른 표준가산급과 승진가산급을 더해 결정한다.
재판부는 "원심은 A씨 등의 승진 전후 각 직급에 따른 업무에 구분이 있는지, 이들이 승진 후 종전 직급에서 수행했던 업무와 구분되는 업무를 수행함에 따라 제공한 근로의 가치가 실질적으로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살핀 다음, 그에 따라 이 사건 급여상승분이 부당이득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했어야 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원심은 급여상승분이 승진에 따른 업무를 수행한 데에 대한 대가로 지급됐으므로, A씨 등에게 귀속돼야 한다고 봐 공사가 부당이득으로 반환 청구를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원심 판단에는 부당이득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사건을 돌려보냈다.
hyun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