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패권 둔 美中간 전쟁...韓정부 '칩4동맹' 역할 무색
"정부와 기업 역할 구분해야"
[서울=뉴스핌] 김지나 기자 =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미국 지나 레이먼도 미국 상무장관 인터뷰 기사를 통해 한국에 투자를 검토하던 대만의 주요 반도체 업체가 레이먼도 상무장관의 설득으로 미국으로 투자처를 바꾼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투자 규모는 약 7조원. 미국 정부 입장에선 발 빠르게 움직여 7조원대 투자를 유치한 것이지만, 한국 정부 입장에선 순식간에 투자 유치할 기회를 뺏긴 것이다.
기술패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이 곳곳에서 마찰음을 내고 있는 사이, 자국 이익을 위한 각국 정부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미국은 기술패권의 핵심인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내로 끌어들이기 위해 인센티브를 미끼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을 움직이고 있다. 중국은 자국 내 테크 기업에 엄청난 돈을 쏫아부으며 무서운 속도로 타국 테크 기업들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고 있다.
그 안에서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반도체 기술력은 기술패권 전쟁의 핵심으로 떠올랐지만, 정작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보호하는 한국 정부의 역할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 대표적인 예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노림수로 여겨지는 '칩4동맹'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외관 사진. [사진=삼성전자] |
미국 정부는 우리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칩4동맹' 참여를 제안한 한편, 중국은 관영매체를 통해 한국의 '칩4동맹' 참여를 견제하며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그 안에서 한국 정부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는 말만 반복하며 양 국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 모습을 이어나갔다.
결국 불확실성에 대한 리스크는 반도체 기업들의 몫이었다. 지난 7일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칩4동맹'과 관련해 "저희 입장에선 칩4동맹을 할 때 예를 들어 중국에 먼저 이해를 구하고 미국과 협상을 했으면 좋겠지만, 우려를 전달할 뿐 어떻게 하자 말하는 것은 없다"면서 "정부가 해야 할 일과 기업이 해야 할 일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선 미국으로부터 장비를 납품받아 반도체를 생산해야 하는 한편 반도체 완제품은 중국에 팔아야 하는 만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그 어느 편에도 설수 없는 입장이다. 결국 미국과 중국의 외교, 정치가 복잡하게 얽힌 기술패권 전쟁에서 우리나라 기업에 방어막을 쳐 줄 주체는 한국 정부인데, 그 안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은 무색하기만 하다.
'칩4동맹' 첫 회의가 이번 달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을 둔 전쟁은 이제 서막을 올렸다. 그 안에서 반도체 강국의 명맥을 잇는 우리나라 기업에 보호막 역할을 해 줄 정부의 역할이 절실하다.
abc123@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