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실명화 판결문 열람...국민의 알권리 보호"
"사생활 침해 정도보다 공공의 이익이 더 커"
[서울=뉴스핌] 배정원 기자 = 당사자 동의 없이 형사사건의 판결문을 열람하고 이를 토대로 공익성이 인정되는 기사를 작성한 경우 기자에게 명예훼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A기자의 보도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B씨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앞서 A기자는 지난 2013년 3월 전주지방법원에서 피고인과 피해자의 이름이 모두 비실명 처리된 B씨 관련 형사사건 판결문을 열람하고 취재한 내용을 토대로 같은 해 8월 이 사건 기사를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는 '좋아하는 남성 몰래 혼인신고를 한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벌금 100만원이 선고됐다'며 'B씨는 2012년 6월 25일 경북 상주시청 민원실에 혼인동의를 받지 않은 채 C씨와 혼인신고서를 제출하고 호적전산기록에 혼인기록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B씨는 "공보판사가 원고의 동의 없이 판결문을 공개하여 기자들로 하여금 기사를 작성하도록 했고, 기자는 자극적인 제목을 사용하고 사건의 진실을 조작하는 등 불법행위를 하여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 사건 기사로 일반대중들로부터 모욕을 당하고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3억 7500만원 상당의 소를 제기했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서울 서초구 대법원의 모습. 2020.12.07 pangbin@newspim.com |
1심과 2심 재판부는 공보판사가 판결문을 공개한 부분과 관련해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2013년부터 일반인에게도 확정된 형사판결문에 대해 열람 및 복사 청구를 허용하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공보판사가 피고에게 비실명화 처리한 판결문을 열람시킨 행위에 위법이 있다거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또한 "이 사건 기사에는 피고인에 대해 B모(38, 피아노강사)씨라고만 했고 피해자에 대해서도 C모씨라고만 했다"며 "이 내용만으로는 일반인은 물론 원고의 지인이나 주변인이 기사 속 피고인이 원고임을 인식할 수 있었으리라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에 대한 피고의 명예훼손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그러면서 "원고가 이 사건 기사와 관련해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악성댓글에 시달리고 정신적 고통을 겪은 사실은 인정되나 댓글을 작성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를 피고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작이란 없는 것을 사실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꾸미는 행동을 의미한다"며 "이 사건 기사의 중요한 부분인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 혼인신고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은 객관적 사실과 합치되는 진실이므로 이 사건 문자메시지의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사정만으로 기사 내용이 허위이거나 조작된 것임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 사건 기사는 혼인신고를 할 때 상대방의 동의가 없으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는 시사성이 적지 않아 원고의 명예나 사생활 침해 정도보다 공공의 이익이 더 크다"며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대법원도 "원심 판결에 명예훼손에서 허위사실과 공익성에 관한 법리 등을 오해하거나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 사실을 오인하는 등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jeongwon10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