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아파트 지하주차장서 9명 중 2명 생존 '기적'
천장 아래 배관‧계단 틈 사이 '에어포켓' 형성 추정
공간 크기, 날씨 조건 된다면 최대 '일주일'도 생존
"재난 과소평가…'재난 감수성' 높이는 교육 필요"
[서울=뉴스핌] 이정윤 기자 방보경·신정인·이태성 인턴기자 = 제11호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갔다가 실종된 주민 9명 중 2명이 생존해 구조됐다. 생존자들은 주차장 안의 배관을 붙잡거나 천장 틈 사이의 '에어포켓'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에어포켓에선 공간의 면적과 날씨 상황만 받쳐준다면 '최대 일주일'까지도 생존할 수 있을 것으로 진단했다.
◆ 배관‧계단 틈 사이 '에어포켓'서 두명 생존
소방당국이 6일 오후 '힌남노' 내습 피해 현장인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실종자들을 수색하고 있다.[사진=경북소방본부]2022.09.07 nulcheon@newspim.com |
7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15분부터 이날 0시 35분 사이 구조된 8명 가운데 39세 남성 A씨와 52세 여성 B씨는 생존한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영팔 경북소방본부장은 사고 현장 브리핑에서 "첫 번째 생존자인 39세 남성 A 씨는 지하 주차장 오수관을 붙잡고 있는 채 발견됐다"며 "두 번째 생존자인 52세 여성 B 씨는 지하 주차장 상부 배관 위 공간에 엎드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구조대 관계자는 "주민이 스스로 위에 파이프를 잡고 헤엄치며 나왔고 맨눈으로 보여서 구조했다"며 "어느 정도 입구에 나오니 자력으로 걸어 나왔고 육안으로 상태 좋아 보였다. 추측건대 물이 차 있었어도 내부에 숨을 쉴 수 있는 버블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소방 관계자는 "발견 장소는 지하주차장 내 에어포켓으로 추정되는 공간이다"고 밝혔다.
◆ 공간 크기‧날씨 조건 된다면 최대 '일주일'도 생존
[서울=뉴스핌]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6일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인덕동 인근 주차장에 자동차가 흙탕물에 잠겨 있다. [사진=독자제공] 2022.09.06 photo@newspim.com |
이번 포항 지하주차장 건은 계단이나 경사지대에서 형성된 에어포켓 덕분에 생존한 것으로 보여진다. 에어포켓은 액체나 기체의 흐름을 막는 각종 공기주머니를 말한다. 선박 침몰 시 방출되지 않은 공기가 남아있는 공간을 지칭하기도 하고, 비행 중 항공기가 수평상태로 급격히 고도가 낮아지는 현상 또는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장소를 말한다.
침수 사고가 난 포항 아파트는 1995년 준공돼 지하주차장 천장에 구간별로 보가 있어서, 에어포켓이 형성될 수 있는 구조로 알려졌다. 세대가 큰 만큼 지하 주차장의 면적 또한 넓어서 공기를 가둬두는 에어포켓의 공간도 크면서 생존 확률이 높아졌을 거란 분석이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안전관리과 교수는 "지하주차장은 건물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소한 3m 이상"이라며 "포항에서는 그 정도 세대가 (지하주차장에) 주차할 정도면 주차장이 상당한 면적일 것이고 따라서 에어포켓이 크게 형성돼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계단 부위는 대부분 사변으로 돼있기 때문에 삼각형의 공간들이 발생할 수 있다"며 "만약 바닥 높이가 일정하지 않다면 그 사이에 특정한 공간이 생기면서 에어포켓이 형성되면서 그쪽 공기를 마시면서 버텼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어포켓이 형성된다면 기본적으로 하루에서 이틀정도 생존은 가능하고, 공간의 크기와 날씨 등의 조건까지 갖춰진다면 길게는 일주일까지도 생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에어포켓 크기에 따라, 공기가 얼마나 들어있느냐에 따라 생존율은 달라진다"며 "보통 숨만 쉴 수 있다면 일주일도 버틴다는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재 교수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에어포켓 공간 크기가 크면 클수록 산소가 많고 생존율도 비례해 늘어난다"면서 "날씨도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은 동절기는 아니고 온도가 저온이 아니지만 에어포켓이 있다 하더라도 물의 온도가 너무 낮거나 추우면 저체온으로 사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최명기 교수는 "기본적으로 배가 뒤집어져도 배 속에서 이틀 내지 사흘까지도 생존한다는 보고도 있다"면서 "실제 공간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봐야겠지만 기본적으로 하루 이틀정도는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의 경우에도 발견된 희생자들이 에어포켓에서 하루에서 이틀정도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인위적 에어포켓 설립' 의견…"전기실 지상 이전해야"
[서울=뉴스핌]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린 6일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인덕동 인근 아파트에 흙탕물가득 차 있다. [사진=독자제공] 2022.09.06 photo@newspim.com |
이번 태풍에 따른 폭우 등 재난 상황에 대비해 지하에 인위적인 에어포켓을 만들어 표식을 해두는 것도 대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꼽았다.
공하성 교수는 "천장 부분을 오목하게 들어가도록 해서 물이 차도 숨을 쉴 수 있도록 에어포켓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며 "위급시에는 '여기 에어포켓이 있으니 이쪽으로 대피하라'는 자세한 설명과 위치가 담긴 표지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하에서 비가 많이 왔을 때 대처법에 대해 최명기 교수는 "우선적으로 무릎 밑에 물이 차 있을 경우 진입하지 않는 게 가장 좋고, 만약 들어갔다고 하면 벽을 짚으면서 탈출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지하에서 폭우가 일어나면 정전이 된다는 점을 탈출에 가장 방해 요소로 꼽으며, 전기실을 지하에 설치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최 교수는 "이번 포항같은 경우 아파트가 하천변, 저지대 상습침수지대에 있는 만큼 이런 지역은 전기실이 지하에 있으면 안 된다"며 "실질적으로 이제 전기실은 지하에 설치하는 것 원칙으로 금하고 있다. 지하보다는 지상으로 전기실을 옮길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차수벽이나 모래주머니를 이용해 전기실에 물이 들어오지 않게끔 해야 하고, 물을 빨리 빼낼 수 있도록 펌프 용량 확대 등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물이 찬 상황에서 차를 빼러 갔다는 자체가 굉장히 재난을 과소평가한 것이다"며 "재난 상황의 징후가 발생하면 빨리 대피를 해야 된다는 교육이 필요하고 '재난 감수성'도 많이 높여야 한다"고 했다.
j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