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지난 2월 6명 퇴사 충격...10년 간 300명
핀테크‧가상자산‧IT‧스타트업으로 자리 옮겨
국책은행 지방 이전 추진…이직 가속화 우려
[서울=뉴스핌] 이정윤 기자= KDB산업은행,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내로라하는 국책금융기관 젊은 직원들의 퇴사가 급증하고 있다. 한 때 '신의 직장'으로 불리며 입사했던 고학력의 직원들이 시중은행, 핀테크, IT 기업 등으로 이직하고 있는 것이다. 동종업계 대비 낮은 임금과 수직적이고 보수적인 문화가 MZ세대들의 외면을 받는 것이란 분석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부터 최근까지 산업은행에서는 10명 가량의 직원이 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대부분은 5급 이하인 젊은 직원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은행 내부 게시판에는 'NH농협은행 채용 진행중인데 어떻게 갈수 있느냐'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다른 국책은행과 금융공기업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에선 지난 2월에만 6명의 직원이 퇴사했다.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한은을 중도 퇴직한 직원이 311명이다. 정년을 채우지 않고 떠나는 사람들이 매년 30명쯤 되는 셈이다. 연령대를 보면 20대가 36명, 30대가 99명, 40대 63명 등이다.
한은 내부에서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한은은 맥킨지, 머서 등 글로벌 컨설팅업체 여러 곳에 경영인사 혁신에 대한 의뢰를 했다. 지난달 말 퇴임한 이주열 총재는 "임금 수준과 관련해 직원들이 불만이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고 또 실제로 한은 직원들의 급여 수준이 비교가 가능한 여타 기관 대비 낮은 것도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자조적인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한은 A직원은 "어렵게 이직해서 한은에 들어왔지만 대우가 낮아 매우 후회 중"이라고 말했다. B직원은 "월급이나 올랐으면 좋겠다. 금융공기업 평균은 돼야 하는 데 우린 꼴지다"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본점. (사진=산업은행) |
금융당국인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서는 지난해 퇴직자 수가 93명을 기록했다. 2018년 70명에서 2019년(81명), 2020년(91명)에 이어 증가한 것이다. 3년새 20% 가량 늘어난 셈이다. 올해는 2월까지 이미 17명이 퇴사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허리급으로 여겨지는 5급 이하 직원들의 이탈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이 나와 이직한 곳은 자산운용사와 벤처캐피탈사(VC), IT기업, 핀테크 기업, 가상자산거래소와 같은 신생 금융권이 많았다. 또 금융 대기업, 로펌, 스타트업 등으로 옮기는 사례도 있었다.
금융 공기업은 보수가 후하고 복지 여건이 좋은데다 전문성을 쌓을 수 있어 금융권 취업준비생들에게 최고로 인기 있는 직장으로 여겨졌다. 몰리는 취업준비생들로 인해 금융공기업과 금융기관들은 우수한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매년 같은 날 필기시험을 실시해 '금융권 A매치'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젊은 직원들의 퇴사와 이직이 늘어난 것은 동종업계 대비 낮은 임금과 복지수준, 여전히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원인으로 꼽는다. 대부분의 금융공기업 평균 연봉이 1억원을 넘어섰지만 실제로는 고위직이 많아 '평균의 함정'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은 초임연봉은 4000만원대로 타 업권과 차이가 없거나 시중은행보다도 낮은 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처음 취직했을 때는 공기업에 대한 자부심도 크도 기대도 있었지만, 같은 대학을 나와 사기업 금융권으로 취직한 친구와 비교하면 연봉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는 걸 체감하게 된다"며 "특히 젊은 직원들은 조직이 정체돼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 자유로운 복장, 소통이 가능한 핀테크 기업 등으로 이직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산은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들을 지방으로 이전하려는 논의가 구체화 되면서 젊은층의 인력 유출이 가속화 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국책은행 부산 이전이 확정되고, 대상도 확대된다면 자연스럽게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이라며 "금융공기업에서는 소위 스펙 좋은 직원들이 많은데, 그들이 서울 생활을 포기하고 지방으로 가는 것보다 좋은 조건의 이직을 택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jyoo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