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업무상 재해 인정 어려워"...유족급여 '부지급'
재판부 "업무 과중해 뇌출혈 발병"
[서울=뉴스핌] 김신영 기자 = 업무 도중 질병으로 숨진 근로자의 발병 원인이 업무수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과로와 스트레스가 병을 악화시켰다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제3부(유환우 부장판사)는 굴 양식장에서 호이스트(소형의 화물을 들어 옮기는 장치)를 설치하다가 숨진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및장의비부지급처분취소 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뉴스핌] 윤창빈 기자 = 법원 로고. 2020.03.23 pangbin@newspim.com |
A씨는 2017년 12월 1일부터 굴 양식업체에 근무하면서 양식장 관리와 굴 채취를 담당했다. 2018년 8월 9일 양식장 내 호이스트 설치가 시작됐다. A씨는 설치 작업에 동원됐고, 작업을 시작한 지 한 달째 되던 때에 업무 도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급성 뇌출혈로 숨졌다.
유족은 A씨의 사망 원인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신청했다.
유족은 고인이 양식장에서 시설 관리와 굴 양식, 호이스트 설치 업무를 수행하면서 다른 직원 두 명까지 관리·감독해 하루 근무 시간이 11시간에 달하는 등 과로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특히 호이스트 제작의 육체적인 업무 강도가 높고 무더운 날씨에 야외에서 이뤄져 고인의 사망 원인이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에 기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단은 A씨의 업무시간과 업무량, 구체적인 업무내역 등을 검토한 결과 과로로 인해 숨졌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굴 양식업체의 사업주는 재해조사 과정에서 A씨가 평소 담배를 하루에 한 갑 피우고 음주를 주 5회 했으며 한 번 할 때마다 소주를 2병 마셨다고 밝혔다. 고인의 죽음이 과로 탓이 아닌 평소 건강과 관련이 있다는 취지의 진술을 내놓은 것이다.
공단의 처분 결과에 불복한 유족은 심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됐고 산업재해보상보험재심사위원회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켰다면 사망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의학적이나 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하지 않더라도 제반 사정을 고려해 추단되는 경우도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동료 근로자 B씨의 증언을 종합하면 A씨가 호이스트 설치 공사로 인한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급성 뇌출혈이 온 것으로 보인다"며 "고인의 사망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호이스트 설치에 쓰이는 부품이 무거운 데다 A씨가 작업하던 자리에서 유독 빠르게 돌아가 용접이 쉽지 않았다"며 "A씨가 퇴근시간인 오후 5시 이후에도 자주 근무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굴양식장을 운영하는 사업주가 산업재해보상보험을 가입하지 않은 점도 지적했다. 이에 A씨의 사망 원인을 뇌출혈에 의한 질병사로 기재하며 책임을 회피했다고 봤다.
그러면서 "2018년 8월 말에서 9월 초쯤 태풍으로 호이스트 설치 공사 일정이 예정보다 지연된 것으로 보인다"며 "공사를 굴 입판 시기 이전에 종료해야 해 A씨는 업무 책임자로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또 "A씨는 안전 장비도 없이 13~14t에 이르는 작업물 위치를 변경해가며 기중기 설치를 진행해 사고 위험에 대한 정신적인 긴장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A씨에게 평소 지병이 있거나 건강에 이상이 있었던 점을 찾을 수 없다"며 "사망 전까지 3일 연속 연장 근로로 체력이 소모된 상태에서 작업물을 회전시키기 위해 힘을 가하던 중 급성 뇌출혈이 발병했으므로 업무가 과중해 발병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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