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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 시행] 총수도 구속된다…기업들 '살얼음판'

기사입력 : 2022년01월23일 06:32

최종수정 : 2022년01월24일 14:07

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발효
총수 처벌 가능…기업들 "규정 모호" 걱정

[편집자] 안전사고에 대한 사업주 및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오는 27일 시행된다. 관련법은 공사 및 시설 책임 담당자 뿐만 아니라 원청, 최고 경영자까지 처벌할 수 있는 법이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자칫 소홀해 질 수 있는 안전사고 방지에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하는 동시에 이에 따른 부담감을 껴안을 수밖에 없다. '예방이냐 처벌이냐'는 논란이 일고 있는 관련법 시행을 앞두고 뉴스핌은 기업들의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사고 없는 안전한 사업장'을 견인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 본다.

[서울=뉴스핌] 정경환 기자 = "하청업체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원청이 다 책임지라고 하는 건 좀 너무한 것 같다".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만난 재계 한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23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27일 발효되는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하는 기업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기업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으로, 지난해 1월 국회를 통과했다. 중대재해는 사망 1명 이상, 6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부상자 2명 이상, 동일한 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 1년 내 3명 이상이 발생한 산업재해를 말한다.

해당 법률은 '경영책임자'라는 개념을 도입,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재벌 총수 등에 대한 처벌이 가능케 한 것이 특징이다. 사망사고 등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와 '원청'에 대해 처벌을 부과하고 있는데, 안전조치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부상이나 질병이 발생하면 사업주·경영책임자에게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 벌금을 부과한다. 경영책임자엔 기업의 대표뿐 아니라 행정기관의 장도 포함된다.

법인에는 50억 원 이하 벌금을 매긴다. 징벌적 손해배상으로 손해액의 5배 이내 배상책임도 규정하고 있다. 시행 시기는 50인 이상 사업장은 이달 27일부터, 50인 미만은 2024년 1월 27일부터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난 11일 외벽이 붕괴된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전경훈 기자]

◆ 기업들 40%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구속으로 인한 경영 공백 및 폐업 우려

기업들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경우에 따라서 '총수'가 감옥에 가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부담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이날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는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규정에 대해 '과도하다'고 답한 비율이 77.5%였다. 4명 중 3명 이상이 처벌이 지나치게 무겁다고 본 것. '과도하지 않다'고 응답한 이들은 16.9%로 나타났다. 아울러 '과도하다'고 답한 응답자의 94.6%는 추후 법 개정 또는 보완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개정 또는 보완과 관련해서는 법적 모호성이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 이른바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인데, 구체적으로 예방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주체부터가 불명확하다는 지적이다. 누가 경영책임자가 돼야 하는지, 사업장이나 장소를 '지배'하는 자와 '운영'하는 자 그리고 '관리'하는 자가 서로 다를 경우에 누가 예방의무를 이행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고, 원청이 해야 하는지 아니면 하청이 해야 하는지가 불명확한 경우도 많다는 얘기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한 포럼에서 "중대재해법령이 가지고 있는 불명확성이 매우 크다"며 "의무주체 및 의무이행방법 등에 대한 정부의 자의적 해석이 횡행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점에 유의해 면밀하고 구체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법 시행은 이미 정해졌다. 기업들로선 무엇보다 '총수 구속'만은 피해야 한다는 지상과제가 생겼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상위 1000대 비금융기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중대재해처벌법이 기업경영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응답은 52%(다소 위축 39%·매우 위축 13%)에 달했다.

기업 활동에 미치는 영향 중 가장 걱정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사업주·경영책임자 구속으로 경영 공백 및 폐업 우려'(39.5%)가 1위를 기록했다. 이어 '도급·용역 등의 축소로 중소기업 수주 감소 및 경영 실적 악화'(24.5%), 인력 운용 제약으로 기업 경쟁력 약화'(22.4%), '국내 자본 해외 유출 및 외국인 국내 투자 감소'(13.6%) 등의 순이었다.

◆ 주요 기업들, CSO직 신설 등 중대재해처벌법 리스크 총력 대응

국내 주요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총력 대응,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전담조직과 직책을 신설하는 등 만전을 기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개발제조총괄이었던 기존 부서를 '안전개발제조총괄'로 확대·개편했고, LG전자는 '주요 리스크 관리 조직(CRO)'을 만들어 안전환경담당 지정을 마쳤다.

또, 포스코는 지난해 대표이사 사장 직속으로 '안전환경본부'를 새로 꾸린 데 이어 연말 조직개편에서 '보건기획실'을 신설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업무와 관련해 질병자가 발생한 경우에도 처벌을 명시한 만큼 안전사고 외에 건강까지 챙기겠다는 의도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8월 사장 직속으로 사업부급 안전보건총괄 부서를 새로 만들었고, 동국제강도 지난해 6월부터 대표이사 직속 안전총괄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잇따른 붕괴 사고로 할 말이 없게 된 건설업계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10월 300명 규모의 안전관리본부를 신설했고, GS건설은 대표이사 직속 최고안전책임자(CSO)에 안전보건 관련 최종 권한과 책임을 부여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 역시 CSO로 하여금 안전보건 관련 업무를 총괄토록 했으며, 롯데건설은 지난 연말 인사에서 안전보건부문을 대표 직속의 '안전보건경영실'로 격상시켰다. 지난해 6월과 올 1월, 광주에서 연이어 사고를 낸 HDC현대산업개발은 영업정지 위기에 처했다.

이외 삼성전자는 매월 협력사 최고경영자(CEO)와 간담회를 갖고 환경안전법규 동향 등을 공유하기로 했고, 현대차는 현장 안전 강화를 위해 조직 및 인원을 확충하고 조직별 핵심성과지표에 중대재해 예방 관련 비중을 확대했다. 현대중공업은 내부적으로 안전 프로세스 구축을 위한 공모전을 진행했다.

책임 회피 움직임도 있다. 기업 오너 등이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처벌을 피하기 위해 CEO 자리에서 물러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등으로 인해 산업재해 논란이 뜨거웠던 쿠팡의 창업자 김범석 전 의장은 2020년 12월 쿠팡 대표직을 사임한 데 이어 2021년 5월 한국 이사회 의장직과 등기이사직을 모두 내려놓았다.

다만, CSO직 신설 등 전담조직을 갖춘다고 해서 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고용노동부 측은 이와 관련, "안전담당자가 선임돼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사람의 의무가 면제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김경렬 K파트너스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법적 모호성 등으로 인해 시행 초반 어느 정도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며 "구체적인 판례가 하나씩 쌓이면서 자리를 잡아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hoa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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