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구구식 행정...잇단 민원 묵살에 주민 불만 가중
서구청 "민원이 많아 나중에 해결하겠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아이고, 제대로 안내하는 곳이 하나도 없네"
차도로 걷더니 자동차 경적 소리에 놀라 다급히 다시 되돌아온다. 시각장애인 유인성(34·가명) 씨가 길을 걸을 때마다 겪는 일이다.
유씨는 지난 8월 3일 광주 서구 쌍촌동을 방문했다가 큰 봉변을 당할 뻔 했다. 시각장애인 보도블록이 차도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한 시각장애인이 지난 8월 3일 광주 서구청에 점자 보도블록 방향이 차도를 향하고 있다며 블록을 횡단보도로 방향으로 바꿔달라는 민원을 넣었지만 1달이 지난 9월 23일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2021.09.24 kh10890@newspim.com |
유씨는 다른 시각장애인도 자신과 똑같은 피해를 볼까봐 다른 것을 설치할 것도 없이 이미 설치된 시각장애인 점자 보도블록을 인도로 향하게 방향만 바꿔주라고 민원을 넣었다.
그렇게 민원을 넣은지 1달이 훌쩍 넘은 시간이 흐르고 유씨는 이번 추석에 같은 장소를 방문했을 땐 안심하고 걸었다. 점자 보도블록이 올바른 방향으로 고쳐졌을거라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유씨는 영문도 모른채 또 다시 차도로 향했다. 여전히 이 일대의 보도블록이 잘못된 방향으로 그대로 있었기 때문이었다.
왜 점자 보도블록 방향이 바뀌지 않은걸까.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23일 오후 광주 서구 쌍촌동 거리의 시각장애인 점자블록이 차도로 향하고 있다. 방향이 잘못된 점자블록이 많음에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21.09.24 kh10890@newspim.com |
보도블록을 담당하는 서구청 공무원의 무지에서부터 시작된다. 굵직한 민원 먼저 해결하겠다며 보도블록은 뒷전으로 두다 인사이동을 했고, 바뀐 담당자는 시각장애인 보도블록의 민원을 보고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몰라 오히려 민원인에 되묻는 상황이다.
서구청 관계자는 "보도블록이 어떻게 잘못됐다는 건지 알려달라"면서도 "다른 민원이 많아 먼저 해결할 것부터 하고 나중에 보도블록 문제는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문제는 민원인들의 불만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한 민원인은 에어라이트(풍선 광고물)가 보행공간을 침범하고 전기선 등으로 차량통행 방해, 빛 공해 등을 일으킨다며 이달 초부터 수 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23일 오후 여전히 에어라이트가 보행공간을 침범하고 있다. 2021.09.24 kh10890@newspim.com |
쌍촌동 주민 A씨는 지난 8~9월 안전신문고 앱을 통해 수 차례 에어라이트(풍선 광고물)가 보행공간을 침범하고 전기선 등으로 차량통행 방해, 빛 공해 등을 일으킨다며 민원을 넣었지만 '해당 업체 방문해 계도했다'고 답변이 돌아왔다.
A씨는 "같은 민원만 수 차례 넣었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해당 업체를 방문했다'라고만 답변이 왔다"며 "민원 답변을 받은 당일 날에도 이 일대에는 광고물이 인도를 점령하고 있었는데 정말 현장을 다녀온 것은 맞는지 의심이 간다. 당장 한달이 지난 오늘도 광고물이 그대로 있었다"고 지적했다.
치평동 주민 B씨도 다소 황당함을 겪었다. 소화전 주변 5m 이내에서 사유지처럼 이동도 하지 않고 주·정차하며 불법 영업하는 푸드트럭 차량에 대해 이달 초부터 10차례 넘는 민원을 넣었지만 달라진 것이 없었다.
소화전 5m 이내 주·정차시 8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해야 하지만 서구청은 과거 해당 차량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한 적이 있는 차량이라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했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민원인이 소화전 주변 5m 이내 주·정차하고 있는 푸드트럭을 신고했지만 과거 과태료를 부과한 적이 있는 차량이라고 서구청은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23일 오후에도 여전히 단속카메라 앞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2021.09.24 kh10890@newspim.com |
게다가 푸드트럭 위에는 버젓이 단속카메라가 '불법 주정차는 즉시 단속한다'는 문구가 떠있는데도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고 있는 것을 두고 해당 차량에 청탁을 받은 것은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주민 C씨도 치평동 유흥가 일대에 푸드트럭이 번호판을 종이와 의자 등으로 가린 채 소화전 앞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고 민원을 넣었지만 번호판이 보이지 않아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다며 푸드트럭이 아무런 제재 없이 불법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외에도 지난 6일 뉴스핌 보도 <'청탁받고 주·정차 과태료 면제' 논란 광주 서구청…주민신고에도 과태료 '미부과'> 이후 서구청은 소화전 불법 주·정차 과태료 부과 규정과 관련해서도 개선해 나가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공무원 임의대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광주 서구는 한 사람이 일일 민원 5회로 제한했다. 6회가 넘어가면 특별한 규정 없이 민원 신고를 받은 이들 중 담당자의 임의대로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2021.09.24 kh10890@newspim.com |
서구청은 하루 5회 신고가 넘으면 보복성 신고로 규정하고 6회분에 해당하는 민원부터는 과태료를 면제하고 있다. 하지만 1~5회까지 신고 접수된 순서가 아닌 공무원 편의에 맞게 임의대로 과태료를 부과하면서 여전히 청탁 받은 차량을 면제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서구 관계자는 "순번대로 5회분에 해당하는 차량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게 맞지만 왜 임의대로 부과됐는지 모르겠다"며 "시스템상에서 접수를 받다보니 혼동이 온 것 같다"고 해명했다.
kh1089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