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준희 기자 = "일본이 도왔다." 반도체 검사 장비를 만드는 A기업을 보며 나오는 얘기다. 이 회사는 올해 초 한 대기업과 1200억 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3분기 누적 매출액(1193억 원)보다도 많다. 2년 전 일본의 수출 규제를 계기로 본격화된 국내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국산화가 이제서야 결실을 맺고 있다. 정부는 물론, 수급 불안을 느낀 대기업까지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국산화에 힘을 실어준 결과다.
김준희 자본시장부 기자 |
A기업의 행보는 국내 소부장 업체들의 '워너비'다. 소부장 기업들은 기술 자립만큼이나 수요처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진입 장벽이 높은 기술일수록 먼저 사용해주는 수요처가 있어야 그 판매 이력을 레퍼런스 삼아 수요처를 확장할 수 있다. A기업의 경우 대기업 투자로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하면서 매출 성장이 본격화됐다. 글로벌 기업과의 계약일수록 판매 이력을 내세우기 유리하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성장 기회였다면, 올해는 바이오 소부장 기업들이 국산화를 벼르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바이오소재 수급 불균형이 계기였다. 코로나19 백신쪽으로 공급이 쏠린 데다 운송 또한 원활치 않으면서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소재 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바이오의약품 특성 상 소재 하나만 부족해도 생산은 멈추게 된다. 해외의존도가 높았던 바이오소재의 국산화 수요가 커지게 된 계기다.
국내 바이오 소부장 기업들의 국산화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됐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바이오소부장 연대협력 협의체'를 발족했다. 정부 투자 시작의 가장 큰 수혜 기업으로는 아미코젠이 꼽힌다. 아미코젠은 '배지'와 '레진'이라는 바이오의약품 필수 소재 원천기술을 보유했다. 배지는 세포배양체를 키우는 영양물질이고, 레진은 정제작업에 쓰인다. 아미코젠은 '배지·레진 국산화' 과제를 안고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 국책과제 사업자로 두 차례 선정됐다. 정부출연금만 각각 231억 원, 73억 원(각각 컨소시엄 단위) 규모다.
아미코젠은 차근차근 소재 국산화 과제를 풀어가고 있다. 배지의 경우 지난해 9월 미국 아티아바이오사와 합자투자(JV) 계약을 통해 배지 제조 기술을 확보했다. 올 10월 말쯤 인천 송도에 공장 건설을 시작해 내후년 상반기부터 본격 생산에 나선다. 레진의 경우 지난 2월 스웨덴 바이오웍스사에서 아가로스 담체 기술을 도입했다. 올해 말 신공장 부지 확보를 시작으로 2023년 자체 생산을 목표로 한다.
다음 과제는 수요처 확보다. 자체기술을 확보하더라도 수요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아미코젠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 등 수요처를 찾아 제품 성능 평가를 의뢰하고 있다. 바이오 소부장 국산화라는 총대를 메고 시작했지만 확실한 수요처가 없는 현재로선 맨땅에 헤딩이나 마찬가지 상황이다. 그 사이 코로나19로 출렁였던 바이오소재 수급 상황도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2년, 3년 후 본격화될 국내산 바이오소재를 받아줄 기업이 필요하다.
국내 대형 바이오기업들이 마중물이 될 수 있다. 특히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은 '배지 국산화'를 위한 컨소시움에도 수요처로 참여했다. 바이오소재의 국산화 니즈에서 시작된 국책사업인 만큼 국내 대형사들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사업 자체가 밑 빠진 독이 될 수 있다. 또 국내 대형사에 판매 이력이 있어야만 해외로도 뻗어나갈 수 있는 현실이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그랬듯, 코로나19나 제3의 재앙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온다. 수급 안정화를 목표로 대형 바이오기업들의 중소 소부장 기업들과 상생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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