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고강도 대출규제에 내 집 마련 시기 지연 불가피
자금력 부족한 2030세대 및 서민에 더 큰 타격
대출 막히자 '갭투자' 확대 조짐...집값 하락은 제한적
가계대출 증가세 부담이지만 주택 실수요자에 혜택 늘려야
[편집자]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옥죄기에 나서면서 은행권의 대출 중단 및 축소가 잇따르고 있다. 단계적으로 확대 중인 차주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시기도 앞당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당장 가을철 이사를 앞둔 실수요자들이나 내 집 마련을 계획 중인 서민들이 느끼는 혼란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20~30세대 등 젊은층의 ′주거 사다리′를 걷어찼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종합뉴스통신사 뉴스핌에서 금융당국의 고강도 대출 규제 목적과 이에 따른 사회적 혼란과 부작용 등을 살펴본다.
[서울=뉴스핌] 이동훈 기자 = 금융당국이 고강도 대출 옥죄기에 나서면서 부동산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내 집 마련의 기회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주택 매입에 금융권 대출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최근 집값 폭등으로 서울지역 중위가격이 9억원에 육박해 보유 현금으로만 집을 사기 어려운 구조다. 눈 높을 낮춰도 금융권에서 수억원의 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르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현금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20~30세대와 서민들의 전세 탈출이 멀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패닉바잉에 2030세대 큰손으로 부각..대출규제시 자금마련 어려워
2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의 부동산 관련 대출규제로 젊은층의 내 집 마련 기회가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이 고강도 부동산 대출규제에 나설 경우 집을 살 수 있는 수요층이 현금 부자들로 한정돼 서민들의 주거 불안이 가중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지난 7월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강화로 대출에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추가적인 신규 대출규제에 나서기로 하면서 내 집을 마련하는 수요자들의 자금마련 부담이 커졌다"며 "특히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20~30세대와 서민들이 주택 매입을 포기하거니 시기를 늦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료=다방> |
이어 "임대차법 이후 전셋값 상승도 가파르게 나타난 만큼 전세자금마련 대출은 규제하기보단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집값 폭등으로 서울에서는 대출을 받지 않고 집을 사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930만원을 기록으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2년 1월 이후 최고치다. 중위가격은 9억4000만원으로 전월(8억9519만원)보다 4481만원 상승했다.
수도권으로 범위를 확대해도 수도권 주택 중위 매매가격은 지난 6월 5억9203만원보다 873만원 오른 6억76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9월 5억원대에 진입한 지 10개월 만에 1억원 올랐다. 현금 부자들이야 대출이 없어 내 집 마련이 가능하지만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한 서민들은 대출이 막히면 전월세 시장에 눌러앉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20~30세대는 주택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올랐다. 부동산 플랫폼 '다방'에 따르면 젊은층이 아파트값 부담에 단독·다가구, 다세대·연립 등 비(非)아파트로 눈을 돌리면서 올해 상반기 세대별 매입 비중에서 20~30대가 25%를 차지했다. 연령대별로 보면 50대(8326가구·19.2%)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컸지만,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20대 이하와 30대의 매수 비중은 각각 2.0%·3.1%P상승한 반면 50대 비중은 2.1%P 줄었다. 그만큼 젊은층의 패닉바잉(공황매수)이 두드러진 셈이다.
대출규제가 강화될수록 '갭투자'(전세끼고 매입) 현상이 확산될 것이란 의견도 있다. 주택 매입에 온전한 자금 마련이 어렵다보니 당장 입주는 못하더라도 전세를 끼고 주택을 매입하는 움직임이 늘어날 수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젊은층이나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대출 비중이 높은 상황에서 이를 규제하면 이들이 받는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며 "신규 대출이 쉽지 않아 전세보증을 이용한 갭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 전세자금 대출 규제에 반전세·월세 비중 확대 가능성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전세자금 대출도 규제한다는 방침이어서 전세시장에서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세입자가 추가적인 대출을 받지 못하면 전세 주택을 반전세나 월세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을 수 있다.
임대차법 이후 물량부족으로 전세난이 가중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7월 임대차법이 시행된 이후 1년 만에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 5억원에서 6억3000만원으로 상승했다. 2년치를 단순 계산하면 재계약에 필요한 자금이 2억원 이상이다. 더 큰 집이나 상위 입지로 들어가려면 추가적인 전세자금이 필요하다. 현금이 부족한 세입자는 반전세나 월세를 부담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이 리스크와 기회를 판단해 자금 운용을 할 자유가 있다"며 금융당국의 대출규제를 비판하는 청원 글까지 등장했다.
◆ 거래시장 위축 불가피...매도매물도 부족해 집값 조정은 제한적
대출규제가 강화되면 주택 거래량이 감소할 여지가 크지만 집값 하락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매수세가 줄긴 하겠지만 시장에 매도물량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양도소득세 중과가 시행된 이후 다주택자의 주택 처분이 사실상 중단된 데다 내년 대통령선거, 수도권광역급행철도로(GTX) 교통망 확대, 재건축 규제완화 등으로 집값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심리도 여전히 높다. 집값 하락을 제한하는 요소가 적지 않은 셈이다.
서울 여의도 일대 모습. 전문가들은 주택 매수세가 더 감소해도 집값이 폭락하는 현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사진=이동훈기자> |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대출규제로 매수 대기수요가 줄겠지만 시장에 매도물량도 부족해 집값 하락보다는 상승세가 둔화하는 현상이 나타날 공산이 크다"며 "투자심리 위축은 불가피해 지방보다는 수도권이, 수도권 안에서도 재건축 기대감, 교통망 개선 등 호재 지역을 중심으로 양극화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출규제가 강화되면 주택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투자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수요가 쏠리는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란 얘기다.
박원갑 전문위원은 "집값은 대출금리와 공급대책, 규제강화 등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대출을 규제하는 것만으로 집값 방향성을 정확히 예측하긴 쉽지 않다"며 "다만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히 높아 대출금리가 내 집 마련에 부담을 주긴 하겠지만 집값을 끌어내릴 정도의 파급력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leed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