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정화 기자 = "항상 생각하지만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학교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뛰어다녔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애초에 사질 않았더라면 병원에 있을 시간이 없었고 제 인생은 더 행복했을까요?" ('내 몸이 증거다' 박교진 가족 이야기 중)
"가해 기업들은 연달아 무죄를 선고받고 국회는 더 이상 진상규명을 하지 않기로 한 상황에서 우리 피해자들은 무슨 힘으로 이 난국을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이 나라 환경부 장관은 가습기살균제 문제가 다 끝났다고 발언했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부는 더 이상 비겁하게 뒤로 물러나서 남의 나라 국민의 일인양 뒷짐 지고 귀 틀어 막지 말고 가해 기업과 함께 피해자들에게 대책을 강구하여 하루빨리 피해 보상을 해주어야 한다." ('내 몸이 증거다' 김준형 가족 이야기 중)
[광주=뉴스핌] 전경훈 기자 =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광주환경연합 등이 12일 오전 광주 서구 이마트 광주점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1.05.12 kh10890@newspim.com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독성 간염, 암, 자가면역질환, 우울증 등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피해와 그 기록을 담은 '내 몸이 증거다'를 17일 출판했다.
'내 몸이 증거다'는 가습기살균제로 피해를 입었거나 건강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자 63명, 스물다섯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수기 모음집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여전히 많은 질병으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박수진 가족은 책에서 "난 살면서 열심히 아이들을 지켰지만 그 원인을 설명해야 했고 아이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 사과해야 했다"며 "몸의 이상에 대해서도 정확히 알려 주고 말이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고 했다.
이재성 가족은 책을 통해 "가족이 다 살균제에 노출되어 질환이 발생했는데 환경부는 피해자 인정을 아주 협소하게 만들어서 나와 같은 많은 피해자들의 울분을 사게 했고 가습기살균제 때문이 아닌 것으로 조사 판정한 폐 질환의 기준만 고집했다"며 "법과 정부의 제도가 있어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국민을 우선하는 의지가 없으면 한계에 부딪히는 게 살균제 참사였다"고 토로했다.
김동현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는 이 책 추천사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의미는 개인에서 가족으로, 피해의 범위는 신체에서 삶의 안녕감으로, 피해의 해결과 극복은 경제적 보상의 현실화에서 안전사회를 위한 장기적 연대로 확장돼 나가야 한다"며 "자신들의 몸을 던져 만들어 낸 질문지에 이제 우리 사회가 답을 내야 한다"고 했다.
가습기살균제 논란은 2011년 급성호흡부전으로 입원했던 임산부가 사망한 사건을 시작으로 원인 불명의 폐 질환 환자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불거졌다. 보건당국은 그 원인을 가습기 살균제로 특정했다.
검찰은 수사 끝에 2016년 PHMG·PGH 성분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한 옥시레킷벤키저 등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SK케미칼이 개발한 CMIT·MIT을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는 인체 유해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기소중지했다.
사건이 다시 불거진 건 2018년이다. 당시 환경부는 CMIT와 MIT 성분의 유해성을 입증할 유해성검토결과보고서를 제출했고, 피해자들이 재차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을 검찰에 고발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검찰은 2019년 7월 수사 끝에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현직 임직원 등을 무더기 기소했다.
하지만 1심은 CMIT와 MIT 성분이 폐 질환과 천식 등을 유발하거나 악화시켰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전원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이들에 대한 항소심이 서울고법에서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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