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133개 농가 쑥대밭...수확 앞두고 날벼락
충북 205곳 농가 76.2㏊ 피해...방역당국 확산 방지 안간힘
[충주=뉴스핌] 백운학 기자 = 16일 오전 충북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 한 사과 농장에는 굴삭기 2대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시각 60대의 한 농민이 철책 사이로 작업현장을 지켜보며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충주=뉴스핌] 백운학 기자 =정태갑씨가 16일 충주시 산척면 영덕리 자신의 과수농장에서 사과나무가 땅속을로 묻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2021.06.16 baek3413@newspim.com |
하지만 중장비는 무심하게 모든 나무를 뽑아내 농장 구석 깊이 묻었다.
그 위로 다시 흙이 덮이고 석회가 뿌려졌다.
굴착기 굉음속에 사과와 복숭아 나무가 땅속으로 묻히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듯 그는 고개를 숙였다.
이때 굴착기 기사들은 점심을 먹으러 간다며 공사를 멈추고 자리를 비웠다.
이들이 떠난 자리에 홀로 남은 농장주 정태갑(67) 씨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지난해 바로 아랫마을에 화상병이 번져 이 일대가 쑥대밭이 되더니 우리 농장도 몹쓸병을 피하지 못하는 구먼..."
이 농장은 지난달 화상병 판정을 받고 이날 사과 나무 70그루와 복숭아 나무 80그루를 이날 매몰 처리했다.
과수화상병은 세균병의 일종이다.
사과나무나 배나무가 불에 타 화상을 입은 듯 검게 그을린 증상을 보이다가 나무 전체가 말라 죽는 병이다.
뚜렷한 치료법이 없어 발생 농장 주변 100m 안에 있는 과수는 뿌리째 캐내 땅에 묻은 뒤 생석회 등으로 덮어 살균해야 한다.
[충주=뉴스핌] 백운학 기자 = 정씨의 농장에서 굴착기가 나무를 땅에 묻고 있다.2021.06.16 baek3413@newspim.com |
수확을 기대하던 정씨의 과수원은 파헤쳐져 나무가 매몰되면서 빈땅이 됐다.
"내가 농사를 시작한 것은 중학교를 막 졸업하던해야. 그땐 참 살기 힘들었지. 부모님 따라 논·밭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데로 일만하고 살았어. 산비탈을 일구며 틈틈이 사과나무와 복숭아 나무를 심어 오늘에 이르렀어. 많은 면적은 아니지만 이 곳에서 수확한 과일을 팔아 4남매를 키웠어. 올해도 수확의 부푼꿈을 키웠는데"
정 씨는 이곳에서 5000㎡ 규모로 사과와 복숭아 농사를 하고 있다.
소농이지만 지난해에는 부사 등 20㎏들이 300여상자와 복숭아 300여상자를 출하했다.
올해도 가지치기, 솎아내기 등 품이 많이 드는 작업들을 다 마치고 수확만 기다리던 터였다.
그는 지난 5월 초 가지치기를 하던 중 나뭇잎들에 이상이 있음을 발견했다.
새로 나는 잎이 끝에서부터 마르는 현상이었다.
증상이 다른 나무로 번지자 그는 농업기술센터로 신고했고 지난달 말 화상병 통보를 받았다.
"당장에 뭘 해야 할지 막막해. 나무를 심지도 못하잖아. 3년 뒤부터 할 수 있다는데 이 나이 먹고 다시 과수농사를 못할 것 같아"
농장에 나무를 심고 과일을 키우려면 지금부터 몇년의 세월이 필요한데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단다.
"70을 앞둔 지금 무엇을 하겠어. 그냥 되는데로 살다가 가는거지. 하지만 수확을 앞두고 이런일을 당해 너무 가슴이 아퍼"
정 씨는 젊음을 바친 과수농장의 나무가 통째로 매몰되면서 자신의 꿈도 사라졌다며 아픈 마음을 삼켰다.
[충주=뉴스핌] 백운학 기자 = 매몰작업이 끝난 정씨의 과수농장이 평지로 변했다.2021.06.16 baek3413@newspim.com |
충북에서는 4월 충주에서 올해 첫 과수화상병이 발병한 이후 이날까지 205곳 농가 76.2㏊에서 확진이 이어졌다.
충주 133곳, 제천 33곳, 음성 32곳,괴산 4곳, 단양 2곳, 진천 1곳 이다.
방역당국은 과수화상병이 발생한 이들 지역 과수원 69.5㏊(193곳)를 매몰했다.
과수원 8.8㏊(12곳)는 현재 매몰작업이 진행중이다.
과수화상병 발생 농가가 늘면서 방역당국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방역당국은 과수화상병 잠복균을 찾아내기 위한 선제적 집중 예찰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충북에서는 충주 348곳, 제천 139곳, 음성 16곳, 진천 3곳 등 506곳에서 과수화상병이 발생했다.
매몰처리 면적은 331㏊에 달했다.
baek3413@newspim.com